경기도미술관 '한국현대목판화 70년:판을 뒤집다'
1980년대처럼 또 한번 판 뒤집기를 위한 도움닫기
“작가는 구도자처럼 작업에 자신의 체중을 싣고 평생 외로운 길을 걷는다. 목판화도 그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목판화 작가는 저주받은 운명처럼, 이 구석에서 또 저 변방에서 자신을 벼리면서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 어려운 조건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작업에 투신하는 이들에게, 목판화는 운명적인 장르다. 이들이 있는 한 목판화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여는 ‘한국현대목판화 70년 : 판版을 뒤집다’(2025 3. 20~6. 29.) 커미셔너를 맡은 김진하의 말이다. 목판화 작가이기도 한 그는 인사동에서 한국미술의 길목을 지키며 목판화의 역사를 천착해온 연구자다. 1958년 창립한 『한국판화협회』가 한국 현대판화의 새벽을 연 이래 70년을 조망하기에 그보다 나은 이가 없을 터이다. 미술관 쪽과 협업하여 펼쳐낸 ‘한국현대목판화 70년’은 외로운 연구자의 절절한 목소리려니와 “조형적 매력이 확연하고 탁월한 메시지의 송·수신 기능이 증명된 매체”임에도 “일품(一品)의 희소성이라야만 투자가치가 증폭하는 현대 미술시장의 생리와 괴리된” 저주받은 장르의 절규로 읽힌다.
무엇보다 모더니즘/리얼리즘, 구상/추상, 서정/실험/서사 등으로 분절된 한국현대목판화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끊어진 미학적 맥락을 잇고 동시에 그 판을 다시 뒤집어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도드라진다. 매주 탄핵촉구 광화문 집회에서 ‘미술행동’ 깃발 아래 김진하, 김준권, 이인철, 류연복, 손기환, 이동환 등 늙은 목판화가들이 깃발행진과 즉석그림으로 집회의 흥을 돋우는 행위 뒤에 잠복한 “응답하라! 젊은 목판화 작가들이여!”라는 목소리가 겹쳐진다.
전시를 돌아보면 판 뒤집기가 곧 판 잇기라는 커미셔너의 말은 어쩌면 희망사항에 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전시는 1부 자연과 서정성, 2부 실험과 현대성, 3부 서사1 비판성, 4부 서사2 실존성 등 4부로 나뉘는데, 1, 2부와 3, 4부 사이는 메워야 할, 하지만 메울 수 없는 엄청난 괴리를 보인다. 실제로 2개씩 짝지어진 군집 사이는 가느다란 통로로 겨우 연결돼 있다.
‘1부 자연과 서정성’에서는 구상적 판각법으로 전통적, 한국적 이미지를 시각화해 ‘마음의 고향’ ‘한국 현대판화의 원형’으로 인식되는 작가군을 다룬다. 정규, 박수근은 서민적인 정서의 전형성을, 유강열 최영림은 토속적 생명성을, 이상욱은 간결한 추상적 감성을 드러낸다. 모두 한국판화협회 창립전(1958년) 멤버. 1960~70년대 이항성은 내면의 추상적 표출, 강환섭은 초현실적 상징공간, 정택은은 실존적 고독, 강국진은 구상-비구상-추상 이미지의 직조를 보여주었다. 김상유는 선비의 고아한 세계를, 주정이는 설화적 상상력을 펼쳤다.
‘2부 실험과 현대성’에서는 서구의 이론과 테크닉을 수용하면서 모더니즘 미학을 구현한 작가군을 다룬다. 1968년 결성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바탕이 됐다. 이상욱은 순수추상, 이성자, 한용진, 김종학, 서승원은 세련된 현대성을, 이용길, 오세영, 송번수, 한운성 등은 다양한 형식과 기술의 실험을 보여준다. 이응노, 김상구는 대가적인 풍모를 보인다. 1980년대 안정민, 임영재, 김익모, 김석환, 임영길, 신장식 등은 도전적인 작업을, 1990년대 강행복, 이경희, 박영근, 천진규, 유근택, 배남경, 이원숙, 김동기 등은 이를 확장하고 개성을 드러낸다.
‘3~4부는 민중미술이 폭발한 1980년대 이후의 리얼리즘 목판화를 ‘정치경제적 현실비판’과 ‘변두리 삶의 진술’ 등 두 카테고리로 나눠 살핀다. 이들은 오윤을 필두로 당대 한국사회의 시각적 기호가 되었다. 조진호, 홍성담, 김진수, 김경주, 이상호, 전정호는 민중항쟁을 증언했으며 홍선웅, 김봉준, 이인철, 김준권, 손기환, 김억, 류연복, 최병수, 박경훈은 저항의 주역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이윤엽은 노동현장 활동으로, 이태호는 거리미술로 목판화의 새로운 소비방식을 선보였고 이동환, 이현숙은 독립운동가를 목판으로 호명했다. 김억과 김준권은 분단국토 또는 땅의 원형질을 파고들었다. 사회의 부조리와 변두리 소시민의 소외를 내면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이상국, 이상호, 이기정, 이섭, 정원철, 최경태가 있고 윤여걸, 강경구, 지용출, 유대수, 홍진숙 등은 삶과 죽음, 실존적 자아와 깊숙이 닿아있다.
1, 2부와 3, 4부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했는데, 작품의 제작방식에서도 차이가 확연하다. 후자에는 전자에 없는 소리가 들린다. 공동체 신명을 표현하거나 일깨우는 방식으로 동세를 추구하는 컴포지션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북과 꽹가리를 울리며 덩실덩실 물고 돌아가는 농악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 집회현장을 장식한 걸개그림은 지옥, 현실, 이상향을 상향으로 그린 감로도의 구도를 차용했다. 휴대용 가방에 넣어 언제라도 튈 준비를 갖춘 홍성담의 판화에는 시민군보다 밥푸는 아낙, 가난한 사람, 걸인, 장사치가 전면에 등장한다. 류연복의 싸움닭은 전신의 터럭을 세우고 날아오를 태세다. 김억의 국토는 상처투성이지만 구불구불 용틀임을 한다. 민중 목판화의 이러함은 1980년대 독재에 항거한 민중의 생명력을 표상한 것이기도 하고 사회로부터 등 돌린 모더니즘 아비로부터 다시 등 돌린 작가들의 강력한 원심력이기도 하다.
전시방식도 차이가 난다. 전자는 유명짜한 회화 작가들의 여기로서 액자, 병풍, 유리테이블에 박제되어 있다고 한다면 후자는 항쟁을 묘사한 작품들로 구성된 들머리의 밀폐공간을 지나 환하게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 벽과 천장에 난만하게 설치돼 꿈틀댄다. 전자가 주로 국립현대미술관 등 미술관에서 빌려온 작품이 많은 데 비해 후자는 작가들한테서 직접 빌려온 점도 대비된다.
80년대에 판을 뒤집었듯이 목판화가 맞닥뜨린 ‘운명적 저주’를 또 한 차례 뒤집기를 할 수 있을까. 운동성이 빛나던 시대를 넘어 작품성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충북 진천에서 열리는 ‘목판대학 판화교실’이 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준권, 류연복, 윤여걸, 김진하 판화작가들이 교수가 되어 1년에 걸쳐 작가, 일반인 과정 5명 내외의 제자를 길러내는 커리큘럼으로 지금까지 5차례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학에 판화과가 없어진 터, 배움에 목마른 이들한테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교수진 김준권 작가의 말에는 회한이 묻었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언젠가부터 판화 작품 구입이 중단됐다는 것. 통상 작품구입은 외부인으로 구성된 추천위원의 추천으로 결정되는데, 추천위원에 판화작가 혹은 전문가가 제외된 지 15년이 넘었단다. 학예연구사 중에도 판화 전문가가 없단다. 화랑은 값싼(?) 전시를 하지 않고, 미술관도 그 연장선에 있단다. 이번 전시는 판화작가들 쪽에서 제안서를 내고 미술관이 수용하는 형식이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목판화는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세계적으로 목판화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한국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온 작가군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198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 상당수가 살아남은 특이한 상황이라는 것. 한국 작가 특유의 회화적인 기법과 대형 작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게 김준권 작가의 말이다.
목판화가 반짝 관심을 끈 때가 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회담장에 김준권, 신장식, 민정기 등 통일 관련 미술작품이 걸렸다. 국토, 디엠젯 등을 소재로 한 그들의 작품은 회담장 분위기를 돋우는데 제격이었다. 동세가 강한 목판화와 급격한 해빙무드는 코드가 맞지 않았을까. 여기에 목판화의 나아갈 길의 일단이 보인다.
본디 한국 목판화는 불경의 변상도, 국책도서 <오륜행실도>의 삽화 등 문자, 특히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글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보조한데 뿌리를 두고 있다. 메시지 전파가 주목적이었다. 별도 장르로 독립한 것은 일본 유학생들이 박래문화 세례를 받은 개항기 이후다. 대부분 서양화가들이 판화작업을 겸하는 방식이 많은 것도 그런 연유다. 1980년대 판화를 주종으로 하는 작가들이 출현한 것은 반독재 메시지 전파라는 목적성이 신앙, 윤리를 고취하는 전통 목판화의 그것과 접맥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와 더불어 운동성이 감퇴하면서 작가주의로 나아간 것은 운명적이었다.
윤석열의 12.3 쿠데타 이후 거리에 넘쳐나는 민중의 열기. 거리의 메시지가 1980년대를 방불케 하는 요즘, 목판화의 중흥을 운위할 적기가 아닌가. 즉석에서 아이패드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이를 사회관계망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엠지세대에게도 판각과 인출의 긴(?) 과정을 거치는 목판화가 먹힐 수 있을까. 어쩌면 해답은 목판과 아이패드 사이, 혹은 제3의 지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있는 한 목판화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진하 커미셔너의 말에 한표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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