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직위 아닌 권한 승계일 뿐

12.3 내란사태로 인한 극심한 혼란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윤석열의 내란 국면에서 법률 규정이나 제도의 허점이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 제도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이주호 부총리,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서 현안 논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이주호 부총리,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서 현안 논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권한대행 탄핵소추는 대통령직 탄핵소추가 아니다

현재 한덕수 전 권한대행 탄핵소추의 국회 의결정족수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심판도 진행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는 대통령 탄핵이 아니라 일반 공직자 탄핵 소추 절차가 적용되어야 한다. 의결정족수는 대통령 탄핵소추에 적용되는 200명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 탄핵에 필요한 150명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대통령 권한대행 제도는, 부통령을 두어 대통령 궐위 시 대통령의 지위를 승계하는 미국과 달리 단지 대통령의 권한만을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덕수에게 잠시 주어졌던 권한대행이란 역할은 대통령직의 승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권한의 대행만을 상정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경우처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면, 후임 대통령을 선출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한마디로 지금의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부통령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권한대행의 대통령직의 승계가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단지 그 권한만을 임시로 대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덕수 탄핵 의결정족수는 결코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정족수일 수 없다.

임명직 국무위원이 권한대행? 민주적 정당성 없다

다시 강조하건대, 지금과 같이 선출되지 아니한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제도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임명직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제도는 근본적으로 민주적 정당성(democratic legitimacy)이 결여된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대통령직의 승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었다.

2공화국의 1960년 헌법은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 정부 형태를 취하는 한편으로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또는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는 참의원 의장, 민의원 의장, 국무총리의 순위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권한 대행자의 1순위를 참의원 의장으로 하고, 2순위는 민의원 의장, 3순위를 국무총리 순으로 정한 것이다. 이렇게 참의원 의장과 민의원 의장을 국무총리보다 선순위로 한 것은 이들이 국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 양원의 의장으로서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헌법정책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채택하는 경우에는 부통령을 선출하여 대통령의 궐위 시 부통령으로 하여금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하고 대통령이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시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 헌법을 제외하고는 모든 헌법이 이러한 법리를 무시하였다. 대통령제와는 부합할 수 없는 국무총리라는 직을 만들어내 단지 임명직에 불과한 국무총리로 하여금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제도이다. 1954년 헌법은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취하면서 부통령을 두고 종전에 있던 국무총리를 폐지하였는데, 형식적으로 볼 때 이러한 구조가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 가장 부합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 이 나라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국무총리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임명하는 것은 대통령 제도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현재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취하는 국가에서 이러한 국무총리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대통령 밑으로 부통령을 두게 된다. 그러나 헌법에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밑에 국무총리를 두고 있다. 본래 우리의 제헌의회에서 유진오 박사가 주도하여 작성한 대한민국 헌법 초안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국무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는 한편, 대통령은 단지 상징적인 위상인 의원내각제 국가를 예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초대 대통령으로 내정되어 있던 이승만은 대통령이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제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결국 의원내각제 형식 위에 대통령제를 가미하는 정부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 대한민국의 제헌 헌법이었다. 그렇게 하여 대통령도 내각제처럼 의회에서 선출하는 것으로 되었는데, 그 뒤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으로 국무총리직을 폐지했다.

이후 4.19 혁명으로 성립된 제2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면서 국무총리가 다시 부활했고, 당시 장면 총리는 내각수반으로서 윤보선 대통령 대신 실제 국정을 총괄하는 실권을 가졌었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가 제3공화국 헌법을 만들면서 대통령제의 기본 제도인 부통령은 두지 않으면서 국무총리를 대통령에 의한 임명직으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오늘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박정희에 의해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부통령을 폐지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대통령의 유고 시에 대응하는 장치를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상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직의 승계제도는 사라지게 되었고, 겨우 가능한 조치로 국무총리로 하여금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장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제 정부 형태와 원리나 체계에 전혀 부합할 수 없다.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현 국무총리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임명직에 불과한 국무총리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고 대통령제 원리에 부합하는 부통령을 두어야 한다. 역시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지니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처럼 총리제를 채택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지만 의회가 언제든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하게 된다. 허울 좋은 우리 국무총리와 달리 프랑스 총리는 외교, 국방 분야의 대통령 권한을 제외한 경제, 교육, 법무, 문화 등 일상적인 국정 업무 권한을 가진다. 아울러 현재 공백 상태에 있는 대통령 승계 제도도 향후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며, 지금처럼 임명직에 불과한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이 아니라 미국처럼 부통령직을 두거나 혹은 프랑스의 경우처럼 상원의장이 권한 대행을 수행해야 한다.

내란수괴 윤석열 일당에 의해 빚어지고 있는 작금의 극심한 혼란은 민주주의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금 환기한다. 현재 드러난 문제점들은 향후 반드시 하나하나 정확하게 바로잡아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핵심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