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체제가 단순궐위 아닌 탄핵소추 때문일 땐 더 심각
궐위자의 수하 국무총리와 내각은 정치적 정당성 상실
더구나 몇 달짜리 임시직이 권한행사하는 건 언어도단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거부권을 가질 자격이 전혀 없다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상태에서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는 문제가 더 크고 뚜렷하다.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권한대행이 자동적으로 그 권한행사를 대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통령권한대행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도 아니고, 대통령직을 승계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선거에서 국민의 신임을 받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의 최고위 공식수족일 뿐이다. 그래서 학설도 대통령권한대행은 위기관리와 현상유지에 필요한 대통령권한만 대행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한이나 사면권한, 대법원장과 대법관/헌재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임명권 등은 속성상 대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역시 지금까지 묵인돼온 감이 있지만 따져보면 권한대행에게 허용된 위기관리나 현상유지에 필요한 대통령권한으로 보기 어렵다. 먼저 거부권 대상 법안은 일정한 절차를 밟아 국회가 국회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국회의원의 과반수 찬성을 받은 국회통과법안을 거부하고 재의결을 요구할 대통령의 비상한 헌법권한은 오직 국민의 과반수 혹은 그에 근접한 국민의 신임을 받은 국민직선 대통령의 고유하고 비상한 권한으로 봐야 맞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회통과법안 거부권(재의결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분립 및 상호견제의 헌법원칙이 이를 요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소추로 국민신임과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직무를 정지당한 행정수반 대통령(권한대행)과 의회 사이에는 통상적인 권력분립과 견제균형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전혀 없다. 우리 헌법은 대선 당시의 국민표심에 토대를 둔 대통령의 정치권력이 역시 총선당시의 국민표심에 토대를 둔 국회과반수의 정치권력보다는 크다고 판단한다. 국회통과법안을 대통령이 뒤엎을 거부권을 인정하는 실체적 배경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정치권력이 국회 2/3의 정치권력보다는 작다는 판단아래 국회 2/3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엎을 국회의 재의결권도 인정한다. 우리 헌법이 보기에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 재적과반수와 재적 2/3 사이 크기의 대통령의 정치권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대통령권한이다.
대통령이 이만큼의 정치권력과 국민신임을 받아야 국회입법 거부권이 정당화될 수 있다. 국무총리와 내각은 대통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권력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탄핵소추시점부터는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권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정치적 관점에서는 국무총리와 내각이 그야말로 허수아비가 된다. 국회의 대통령탄핵소추는 대통령의 정치권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키기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는 상호견제균형 원칙을 깨는 결과를 낳는다.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마저 정당화할 수 없는 탄핵소추 이후상황에서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기간은 사실상 3,4개월을 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처음에 언급했던 네 가지 세부쟁점을 하나하나 다루면서 내 헌법해석의 설득력을 보강하고자 한다. 먼저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 가능기간이 짧은 것도 금지해석에 도움을 준다. 탄핵소추로 말미암은 대통령권한대행기간은 국회의 대통령탄핵소추시점부터 특단의 사정이 없는 이상 헌재의 탄핵심판기간으로 규정된 최장 6개월이다. 만약 탄핵이 인용되는 경우에는 탄핵결정시점부터 조기대선시점까지 다시 최장 2개월을 합해서 최장 8개월간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심판은 워낙 중대한 국민적 관심사라 헌재는 지금까지 세 차례 모두 집중심리를 통해 3,4개월 안에 신속하게 결론을 냈다. 최장 2개월의 후속대선기간 중에도 국무총리의 권한대행이 계속되지만 거대양당이 대선에 몰입하기 때문에 국회입법이 사실상 중단돼 권한대행이 거부권 행사기회를 갖기 어렵다.
대통령탄핵소추를 해낸 여소야대 국회가 일방적으로 법률안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서너 달에 지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짧은 이 기간 중에 허수아비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를 금지한다고 해서 헌법과 국민의 관점에서 손해날 일이 클 것 같지는 않다. 거부권 행사가 금지되면 여소야대 탄핵국회의 야당주도 입법이 법률로 효력을 갖겠지만 이 법률이 위헌이라면 헌재의 위헌판단이 기다릴 것이고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개폐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탄핵심판기간 중에 거부권이 행사돼도 대선결과에 따라서 정권이 교체되면 몇 개월 안에라도 얼마든지 재입법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이론상 정당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은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다. 내 판단으로는 현실적으로 서너 달에 불과한 헌재의 대통령탄핵심판 기간 중에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거부권을 대행하는 것은 헌법이론상 부적절할 뿐 아니라 헌법정책상 국회의 입법폭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다. 거부권을 허용하지 않아도 뒤에서 살펴보듯이 국회의 과반수야당은 탄핵심판기간 중 입법권 남용과 입법 폭주로 치닫지 않을 충분한 유인책과 억제책을 갖기 때문이다.
권한대행의 올바른 자세
대통령의 일시궐위 시 누가 권한대행을 맡을지를 대통령의 귀책사유 유무에 따라 따로 정하지 않은 헌법조항에 따라 탄핵심판기간이나 후속대선기간에 탄핵(소추)당한 대통령의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는 부조리극이 연출된다. 이때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탄핵당한 정치적 죄인으로 본인을 자리매김해야 맞다. 결과적으로 국민과 야당 앞에 철저하게 몸을 낮추고 현상유지와 위기관리에만 최선을 다할 뿐 더 이상의 행보는 철저하게 국회, 실질적으로는 국회재적 2/3 다수파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야 정상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직무정지당한 내각은 탄핵심판기간 중에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 국회(절대다수파)의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과 자세를 가져야 마땅하다.
노무현대통령 탄핵소추처럼 국회와 정치권, 그들만의 탄핵소추가 아니고 박근혜 탄핵이나 윤석열 탄핵처럼 국민 대다수의 요구와 지지에 의해 국민탄핵이 국회탄핵을 선행하고 이끈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볼 때 한덕수(한동안 최상목) 권한대행이 걸핏하면 국회통과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거듭된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마은혁 헌재재판관 임명을 끝까지 보류하는 등 오만방자한 작태는 그 자체로 탄핵사유를 구성하는 중대한 위헌적 작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내가 보기에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한은 탄핵심판기간 중의 대통령권한대행이 대행할 수 있는 통상적인 대통령권한이 아니고 오직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의 비상한 고유권한이다.
거부권 행사를 허용하지 않아도 민주헌정에 문제가 없다
혹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금지되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민주헌정과 국정운영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 더 맥락적으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단박에 드러난다. 헌재심판기간 중에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한 야권주도 법안에 대해 대통령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해석해도 국회통과입법의 집행과정에서 예상했던 문제들이 드러나면 개폐입법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만약 위헌성이 드러나면 법원이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할 수 있고 개인은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헌재가 개입해서 위헌성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만약 향후 직접민주주의 개헌으로 국민발안권과 국민거부권이 도입되면 국민거부권이나 국민발안권을 행사해서 탄핵심판기간 중의 야당주도입법을 얼마든지 개폐할 수 있다.
실은 대통령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죽인 법안도 국민과 국회가 얼마든지 재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 야당주도 대통령탄핵이 성공할 경우 즉각 진행될 대선국면에서 여당후보의 승리는 현실정치세계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권한대행에게 거부권행사를 인정해도 그 효력이 오래 지나지 않아 개폐입법을 만나서 실효성을 잃는다. 국회가 재적 2/3 이상 찬성으로 탄핵소추한 대통령이 국민 대다수의 뜻과 헌재의 기각결정에 따라 다시 돌아오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는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가 계속 입법봉쇄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파고들면 국민 대다수가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지 않는 법률은 서너 달 지속될 탄핵심판기간 중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를 금지해도, 대선결과와 상관없이, 조만간 개폐될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에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법률은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를 금지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렇다면 탄핵심판기간 중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는 금지된다고 해석해도 민주헌정과 국정운영에 지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실은 내각책임제 국가의 경우 의회입법 거부권이 사실상 사문화돼 오랫동안 행사되지 않았지만 민주헌정과 국정운영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다. 하물며 3,4개월 권한대행기간 중에 허수아비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금지한다고 민주헌정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입법권남용과 입법폭주 가능성, 크지 않다
대통령 탄핵심판기간 중에는 야권도 무리하게 일방적 입법을 밀어붙일 유인이 크지 않다.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탄핵을 원하는 이상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조기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거대양당을 위시한 모든 정치행위자들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정치적으로 대비한다. 대통령탄핵에 앞장선 여소야대 국회의 다수파 야당도 다가오는 대선에서 중도층의 감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일방적이고 논란 많은 입법은 최대한 삼갈 수밖에 없다. 야당의 일방적 입법폭주를 걱정해서 권한대행의 거부권을 인정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는 셈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대통령의 거부권은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신임에 의한 정치권력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이론으로는 정당화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제왕적 특권이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위의 정당성 조건을 전혀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거부권행사를 금지해야 맞다. 더욱이 거부권행사를 금지해도 민주헌정과 국정운영에 주름살을 늘리지 않고 야당의 입법권남용/입법폭주 유인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 국회의장은 하루바삐 헌재에 거부권행사 관련 권한쟁의소송을 내고 헌재는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과연 헌법이론과 헌법정책상 필요하고 바람직한지를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 국회도 하루바삐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 금지법을 만들어서 지금과 같은 허수아비 권한대행의 거부권 남용과 폭주를 막아야 한다.
요약과 결론
결론삼아 지금까지 전개된 주장을 요약하자면, 첫째, 국민직선 대통령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법률안 거부권은 1인1표 민주주의의 다수파지배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직선 대통령을 사실상 임기 있는 제왕으로 보고 제왕적 비상대권을 부여한 결과이다, 둘째, 국회입법 거부권은 국민직선을 통해서 국민의 신임과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셋째,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민주헌정운영에 별다른 차질이 없다, 넷째, 탄핵인용 후 뒤따를 대선에서 중도표심을 의식하는 여소야대 국회의 다수파야당이 입법권을 남용하며 입법폭주로 치달을 우려도 크지 않다, 다섯째, 지금도 헌재의 위헌심판과 국민의 여론향배에 따라서, 나아가서 향후 국민거부권과 국민발안권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국민거부권이나 국민발안권 행사에 따라서, 얼마든지 개폐입법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올바른 헌법해석은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거부권 행사를 허용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 사족. 궁극적으로는 대통령탄핵소추가 이뤄졌을 때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삼는 현행 헌법의 규정을 바꿔야한다. 헌재의 탄핵심판기간과 탄핵인용으로 인한 대선기간 중에는 국무총리가 아니라 국회의장을 권한대행 1순위자로 규정해서 국무총리 이하 내각이 국회의장의 명을 받아 위기관리와 현상유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의장은 국민의 선거와 국회의 선출에 힘입어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가 없다는 점 외에도 입법조사처와 예산심사처 등을 거느리는 국회수장이라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보좌를 받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국회의장이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국무총리와 내각을 제대로 지휘감독하려면 행정부에 대한 관리감독역량이 필수적인데 국회조직은 모두 행정부 관리감독업무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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