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의 유착관계 넘어서는 일심동체 보여줘

 조선일보의 삼성 사랑은 실로 눈물겹다. 아니 삼성보다 이재용 일가에 대한 흠모인지도 모른다. 삼성을 위해서는 운명공동체로 지내던 검찰도 헌신짝처럼 내던진다. 물론 그들이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선일보와 검찰이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국민을 우롱하겠지만 일단 괴이쩍기는 하다. 조선일보 수중으로 돈만 들어온다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조선일보는 2월 4일에 ‘‘이재용 무죄’ 삼성 총수 10년 옭아맨 결과가 뭔가‘라는 사설을 냈다. 내용을 보면 검찰의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는 주장이다. 현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씨를 지목하며 죄가 아니라 사람을 표적으로 수사를 했다는 식의 주장을 이어간다. 한 사람에게 19개 혐의를 씌웠다는 것도 상식 밖이라고 강변한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검찰에서 죄를 만든 것이란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조선일보가 검찰에게 이런 도발을 하니 당황스럽다. 갑자기 현직 야당 대표의 모습이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일보의 삼성에 대한 애정 표현은 과도하다. 2심 결과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 비판을 넘어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의 항소 상고 남발 막을 제도 장치 필요하다‘. 2월 10일자 사설 제목이다.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이고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상식조차 조선일보의 삼성에 대한 낯 뜨거운 사랑 앞에는 빛을 잃는다. 그런 조선일보로부터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검찰은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윤석열 정권에서 검찰이 정치 편향을 일삼으며 법을 유린한 결과 해체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조선일보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검찰과 조선일보의 끈적끈적한 관계는 검언유착이라는 말로는 턱도 없다. 만일 조선일보와 같은 부패한 언론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검찰 조직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묻는 것조차 부질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질 만큼 그야말로 난형난제다. 차라리 그 둘의 관계는 일심동체라고 표현하는 적절할 것이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손발을 척척 맞춰가며 대한민국을 함부로 주물러 왔으니 말이다. 그런 형국에서 조선일보가 검찰을 나무라고 나섰으니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조선일보는 대법원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법률이 제대로 적용됐는가만 확인하기에 결론이 달라지기 어렵단다. 그러면서 검찰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굳이 상고를 하느냐고 꾸짖는다. 검찰의 상고 결정이 아집으로 비친다고도 썼다. 3심제도는 사법의 공정성과 판례를 통한 판결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국민을 넘어 세계인의 시선을 끈 이재용 사건에 대해 검찰에 상고를 포기하라는 요구는 위험한 비굴함이다.

  법원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한다. 아무리 범죄가 의심돼도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은 손을 써 볼 수가 없게 되는 셈이다. 이런 지경에서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조선일보가 고대하는 대로 국민들이 검찰의 탁월한 결단이라고 환영할까? 삼성이라는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대기업에 철저히 무릎 꿇는 대한민국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란한 마음을 조선일보는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본 적이 있을까? 하긴 조선일보에겐 대한민국의 자존감보다 삼성의 돈이 가까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검찰에 상고 포기를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심에서 나올 결과가 뻔하니 삼성에게 부담을 안겨주지 말고 빨리 재판 절차를 마무리하라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심판 절차에 대해서는 신중하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 대한민국에 먹구름을 드리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임에도 신중을 강변하는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신들의 잇속에 따라 이중잣대를 휘두르는 조선일보를 불편부당한 언론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래도 조선일보의 주장 가운데 들어 줄 말이 있다. 검찰의 태도가 무죄가 되도 아니면 말고 식이면 안 된단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항소·상고 남발에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마련해서 과하게 수사하고 기계적으로 기소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단다. 골백번 맞는 말이다. 조선일보가 검찰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을 보니 새 세상이 열릴 듯하다. 불행히도 거대 광고주인 삼성에게만 적용되기를 바라는 듯해서 진심을 느낄 수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의 지나친 아부를 이르기에 적절한 말이다. 거대 광고주인 삼성의 이익에 눈이 멀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정작 그들에게 더 커다란 짐을 안겨주게 되지는 않을까? 가뜩이나 국민으로부터 의혹에 찬 시선을 받는 검찰과 삼성에게 독배를 권하는 조선일보의 깊은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이른바 보수층에서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일어난다는 풍문이던데 상황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조선일보여, 이제 차라리 언론의 허울을 벗어던지는 것은 어떤가? 

그리하여 다시 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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