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살인하는 언론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
“재판의 고통보다 부조리 눈감는 게 더 괴로워”
“이번 판결은 예술인은 물론 국민 재갈 물리기”
“마이크, 펜, 카메라로 인격 살인하는 언론들”
‘“가짜 뉴스’ 는 역사 왜곡…사회 경종 울려야”
“언론인은 국민 대신해 공공의 일기 쓰는 사람”
“고통 있지만 후회 없어…언론, 버릇 고쳐놔야”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피고 박찬우, 벌금 200만 원.”
2022년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하 서울민예총)은 서울, 울산, 광주에서 ‘언론개혁 전시회’(굿, 바이 전)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에서 전·현직 언론인 및 방송 정치인 100여 명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는 이유로 박찬우 작가는 2건의 형사 재판과 1건의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당시 한국기자협회는 한 개인인 박 작가의 작품을 두고 “예술인들이 언론인들을 탄압한다”는 ‘코미디’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박 작가는 지난달 22일 의정부지방법원 401호 법정에서 형사 1심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고 곧바로 항소했다. 아직 민사 2심과 형사 1건이 더 남아 있어 이제 겨우 형사 재판 1개의 1심이 끝난 것뿐이다. 그는 앞으로 2심, 대법원까지 갈 사건이라 긴 투쟁이 예상된다며 이번 기회에 언론개혁의 밀알이 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박 작가를 만나 현재 심경과 2년간 재판 전망 등에 대해 들어 봤다.
속보 경쟁, 클릭 장사에 눈 먼 언론들
재판보다 부조리 눈감는 게 더 괴로워
-당시 풍자화의 모델이 된 기자들과 언론사, 기자단체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들만 골라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거친 반발과 함께 소송을 했는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레기 풍자화를 그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세 분이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윤미향 의원, 손혜원 의원입니다. 당시 SBS에서 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PC에서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직인이 발견됐다는 방송이 나간 뒤 엄청난 기사가 쏟아졌지만 10개월 뒤 법정에서 오보로 판명이 났습니다. 그러나 정경심 교수는 단 한 차례의 조사도 받지 않고 바로 구속이 됐습니다. 또한 손혜원 의원을 부동산 투기꾼로 몰아 가족이나 보좌관까지 파헤쳐 괴롭히고, 윤미향 의원의 딸을 유학 간 미국 대학교 기숙사까지 따라가서 괴롭혔습니다. 언론들도 검찰이 하던 못된 방식을 수십 년간 봤으면서 속보 경쟁과 클릭 장사에 눈이 멀어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멸문지화를 시킨 거죠.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언론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정치·재벌·법조 기득권과 이미 카르텔을 형성한 막강한 언론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저는 개인이고 그들은 저와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과 힘을 가졌는데 저를 고소한 기자들은 ‘예술이 언론을 탄압한다’며 성명서를 냈습니다. 이전에도 언론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광고주를 압박하는 불매운동 등의 언론 교육 프로젝트가 많이 있었지만 큰 타격감은 없었습니다. 타격감이 없었다고 무의미한 건 아니지만, 저는 그들이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좀 더 진화된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레기 풍자화’를 그렸고 반응이 크게 왔습니다.”
-재판 때문에 일이 끊기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인정, 봉사(공공의 선), 희열 그리고 신과의 교감입니다. 예술가는 가진 돈은 없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금수저라고 생각합니다. 거저 얻은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제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탄압을 받을 거고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끊길 거고 소송까지도 당할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고도 눈 감는 게 오히려 자존심 상하고 부끄럽게 느껴져 더 고통스럽습니다. 육체적이나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소송 비용이 많이 들텐데요.
“어느 날 페이스북을 봤는데 ‘촛불행동’ 후원자분께서 자발적으로 저를 돕자는 운동을 하셨더라고요. 그분들의 도움으로 1심 변호사비를 냈는데 재판을 오래 하다보니 돈이 꽤 많이 듭니다. 민사 2심 때는 곽노현 교육감께서 김정환 변호사님을 소개해 주셨는데 감사하게도 형사, 민사 소송을 모두 무료로 변론해 주십니다. 몇달 전 ‘빨간 아재’라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인 박효석님께서 구독자 70만 돌파 기념으로 제가 소송을 당해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감사하게도 100만 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번 판결은 예술인과 국민 재갈 물리기
마이크·펜·카메라로 인격 살인하는 언론
-이번 판결에서 담당 판사는 그림이 쟁점이 아니라 댓글과 대댓글에서 모욕죄 부분이 유죄라는 선고를 했고 초범인데도 불구하고 감형 사유가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로 이런 선고를 내렸다고 생각하나요?
“이번 재판 최후 변론에서 머니투데이 구단비 기자가 소송단 대표로 나와서 최후진술을 했는데 제가 앞에 있으면 진술을 못 하겠다고 해서 저는 다른 방에 있었습니다. 구단비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박찬우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끔찍하게 그려서 일할 때 사람들을 만나면 그림으로 인해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봐서 정신적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호소를 하더군요. 저 같은 소위 ‘듣보잡’ 작가가 사적인 공간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림을 올리고 사용자들과 대화를 한 것으로 자신의 명예훼손이 된다고 말했는데 진정으로 언론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건 언론인들 스스로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들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그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바램으로 목소리를 낸 것뿐입니다. 판사에게 이 재판은 중범죄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재판이겠죠. 그러나 이 재판의 중요한 점은 댓글이나 대댓글까지 국가가 재단을 하기 시작하면 예술인들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넘어 국민 전체에 대한 ‘재갈 물리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기레기 풍자화’는 이제 더 이상 그리지 않을 건가요?
“지금 언론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 같습니다. 가짜 뉴스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잖아요. 이선균 배우나 정의기억연대 손영미 소장님이 언론에 의해 인격 살인을 당한 것처럼요. 언론이 마이크, 펜, 카메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마음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보니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언론사는 정부에서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아 자신들의 배 불리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진실을 원하지만 언론은 오히려 진실을 거짓으로 뒤바꿔버리고 있습니다. 리포액트나 시민언론 민들레 같은 참언론사만이 저 같은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 주지 그들은 권력과 돈으로 저를 짓밟아 다시는 목소리를 못 내게 하려고 기사화도 하지 않습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았고 벌어 놓은 돈을 다 써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후 작업한 ‘기레기 풍자화’를 아직 발표는 못하고 있지만 틈틈이 작업은 하고 있습니다.”
언론인은 국민 대신 공공의 일기 쓰는 사람
‘함께 툰(TOON)’은 시민들께 드리는 선물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있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중들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님이 입은 옷도 미술의 한 부분인데 그게 캔버스에 올라가고 인사동이나 평창동의 갤러리에 걸려서 작품이라고 불리는 순간 어려운 영역이 됩니다.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 보이면 예술이 어려워지는 거죠. 사람들은 애창곡이나 감명 깊게 읽은 책, 좋아하는 영화 하나씩은 다 꼽을 수 있지만 손에 꼽는 예술 작품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생각하다가 시민들이 남겨준 낙서를 이어받아 제가 작품으로 완성하는 시민 참여형 카툰인 ‘함께 툰(TOON)’이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 중에 미술이 삶과 가장 밀접한데도 어려워하는 대중들을 보면서 미술의 재미와 감동을 좀 더 쉽고, 친근하게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은 제가 시민분들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많은 고통이 따르는데 후회하지는 않나요?
“제 인생의 좌우명은 ‘후회 없이 살자’입니다. 물론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즐겁게 살 수는 있었겠죠. 저는 원래 따뜻한 작업을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통해서 인정을 받으면 희열도 느끼지만 동시에 공공의 선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목표도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언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인터뷰할 때마다 언론인은 국민들을 대신해 공공의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70년대 역사를 알려면 그 날짜에 쓴 기사를 찾아보는 게 가장 빠르잖아요. 그러다 보니 가짜 뉴스 생산은 역사 왜곡이라는 등식이 생깁니다.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을 막아야 합니다. 가짜 뉴스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경종을 울리고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언론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찬우 작가를 응원하고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관종입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비참합니다. 박찬우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제 인생도 불행하지만 사회 부조리에 당당히 항거할 수 있는 제2, 제3의 작가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회에 공헌한 작가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묻혀지는 것이 일명 ‘기레기’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시민분들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저와 같이 탄압받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담아주는 양질의 언론인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SNS를 통해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작가로서 유명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유명한 사람보다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저의 이런 행동이 밀알이 돼서 언론사가 자정되는 데 보탬이 되고 정치인들도 더 적극적으로 언론개혁에 힘을 실어 언론이 자유를 누리는 만큼의 책임도 뒤따랐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언론 버릇 고쳐놔야
인터뷰를 마치며 박찬우 작가는 “원래 이 재판은 누가 이기든 항소를 하는 재판이고 대법원까지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1심에서 벌금형이 나와서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칠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만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제가 다른 재판에서 승소를 하더라도 또 다른 기자들이 문제 제기하고 고소하는 상황이 반복될 겁니다”라며 “그렇게 되더라도 제 사건을 기회로 확실히 언론의 버릇을 고쳐놔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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