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경영권 불법 승계가 핵심

자본시장 공정성과 경제 정의에도 역행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검찰과 법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재벌 개혁 난망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 항소심 판결 다음날인 4일 시민단체들의 반응을 요약한 말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실체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 공정성과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도 걸림돌이 될 판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제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3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이 회장 등 이 사건과 관련한 삼성 임직원 모두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수사가 시작된 10년,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5개월여 만에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대법원 상고심이 남았으나 항소심 판결이 뒤집힐 확률은 높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5.2.3.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5.2.3. 연합뉴스

삼성물산 합병 이 회장 경영권 승계 노린 건 사실

삼성전자와 재계, 보수 언론은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으나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성 측면에서는 결코 반길 수 없는 판결이다. 이 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삼성물산 일반주주에게 손실을 입혔고, 이 과정에서 감행했던 회계 부정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준 셈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국민 노후 자금까지 위협했는데도 죄가 없다는 법원 판단은 상식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법원과 검찰의 실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번 사건의 1심과 항소심은 모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결과적으로 이 회장으로의 지배권 승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주요 목적 자체가 지배권 승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핵심 목적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G-프로젝트 문건’를 보면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핵심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있었다는 게 충분히 확인됐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부당한 합병비율과 회계부정 혐의도 무죄라니

지난 2015년 5월 결의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주에 삼성물산 0.35주였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을 약 23% 보유 중이었고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져 제일모직 주식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면 이 회장의 지배력은 높아진다. 삼성그룹은 또 제일모직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의 해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에 대해 나스닥 상장 등 허위 사실과 다름없는 정보를 공시, 유포하기도 했다.

회계 부정 혐의도 짙다. 로직스는 2012년경 미국계 제약회사인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에피스를 2014년까지 종속회사로 분류했다. 로직스가 삼성물산 합병 직후인 2015년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회계 처리한 건 에피스에 대해 대규모 평가이익을 반영하려는 불순한 목적이 있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로직스 분식회계 혐의가 정당하다고 허용된다면 투자자는 회계정보를 믿고 투자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삼성 당시 합병비율에 이의를 제기한 한화투자증권 보고서 발표를 막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검찰 수사 관련 주요 의혹. 연합뉴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검찰 수사 관련 주요 의혹. 연합뉴스  

국민연금 등 주주 피해 보상받을 길 막혀

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합병은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일반주주의 손해로 이어졌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 등 많은 삼성물산 주주가 합병에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했던 국민연금은 1600억 원 이상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연금도 당연히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에 외압을 가해 합병에 찬성하도록 강요했다. 이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로 불법으로 확인됐고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외국계 기관투자자인 엘리엇과 메이슨은 국제 중재 판정을 제기했고, 부당한 합병비율로 인해 입은 막대한 손해를 인정받았다. 합병비율이 정당했다면 국민연금에다 부당한 외압을 가할 필요도 없었고, 정부가 엘리엇이나 메이슨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1심과 항소심 법원은 이러한 실체적 진실을 애써 무시했다. 사업적 필요성에 따라 합병이 추진됐다는 이 회장 쪽 주장만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폐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이렇게 질타했다.

“국내외 투자자에게 한국은 지배주주인 재벌 가족이 자본시장은 물론이고 국민연금과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전횡을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나라로 보일 것이다. 나아가 재벌로 인해 부당한 손해를 입더라도 피해 회복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시장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도 요원해졌다.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민변 공익변론센터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들이 지난 2020년 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부당하다며 관련 주주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민변 공익변론센터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들이 지난 2020년 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부당하다며 관련 주주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기득권 카르텔 최정점 '재벌' 개혁의 시급성 일깨워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의 정점에 ‘재벌’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사건이다. 이재용 회장이 경영에 전념하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회장이 앞으로 보여줄 경영 성과나 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실체적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1심과 항소심에서 이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재판부의 판결은 역설적으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재벌 개혁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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