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과 권력에 얽힌 은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상)]

2025년은 ‘푸른 뱀’의 해이자 38년 만에 윤6월 들어

진정한 1년의 시작은 동지일까, 입춘일까, 춘분일까?

지구 온난화 탓 자전 속도 빨라져 ‘윤초’ 문제 발생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새해가 밝았다. 벌써 나흘이 지났다. 작심삼일(作心三日)형 인간들은 이미 올해 목표나 신년 다짐을 포기했거나 까먹었을 테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달 29일 또 다른 새해가 시작되니 그때 다시 목표를 세우고 결심하면 되지 않을까? 설은 음력으로 쇠는 게 대세고, 간지(干支)의 태세(太歲)도 음력으로 따지는 게 원칙이라니까 말이다.

‘을씨년’스러웠던 건 1905년 아닌 1785 을사년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이다.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시작하는 10개 천간(天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로 나가는 12개의 지지(地支)를 조합한 육십갑자(六十甲子)의 42번째 간지다.

 

십이지신(十二支神) 가운데 푸른 뱀을 그린 민화
십이지신(十二支神) 가운데 푸른 뱀을 그린 민화

을(乙)은 오행(五行)으로는 목(木), 방위로는 동쪽, 빛깔은 청색을 뜻한다. 사(巳)는 뱀을 일컫는 한자이니 을사년을 ‘푸른 뱀’의 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육십갑자의 모든 해는 오색 빛깔의 12띠 동물 60가지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의 ‘백말’은 1930년이나 1990년인 ‘경오(庚午)년’을 일컫는다.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는 뜻의 단어 ‘을씨년스럽다’는 1905년 일제가 우리나라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이뤄진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1897년 편찬된 한영자전에도 등재된 단어여서 신빙성이 낮다. 어떤 학자는 1783~1784년 연거푸 큰 흉년이 든 직후 1785년이 을사년인 것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력 1월 1일은 천체 운행과 아무 상관없어

인류는 시간의 흐름을 해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계산했다.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하루로 하고, 태양이 남쪽 한가운데 올 때를 정오(正午·낮 12시)로 정해 24등분했다. 다만 나라마다 표준시를 정해 쓰기 때문에 태양의 남중 시간은 정오가 아닌 경우가 많다. 서울의 경우 낮 12시 32분경이다.

한 달은 말 그대로 달 모양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이 기준이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초하루(1일)이고 태양 반대편에 놓여 가장 크게 보일 때가 보름(15일)이다. 실제로는 달이 가장 커지는 날이 14일이나 16일일 때도 있다.

 

위치에 따른 달 모양의 변화를 나타낸 그림.
위치에 따른 달 모양의 변화를 나타낸 그림.

지구가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은 1년인데, 시작점은 문화권에 따라 달랐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민족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그날부터 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보통 12월 21일이나 22일인데,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한 풍습과 관련이 깊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도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가 기원전 1~2세기부터 동지와 춘분의 중간, 즉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오차가 있긴 하지만 음력 정월 초하루(구정)와 시기가 비슷하다. 양력 1월 1일(신정)은 천체의 운행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임의의 날짜일 뿐이다.

사주로 길흉 점치는 명리학의 학문적 기준은 음력 아닌 양력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강역이었던 중동, 중앙아시아, 발칸반도 동쪽, 카스피해 인근 캅카스 지역 등에서는 만물이 소생한다는 의미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치기도 한다. 그날부터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간지, 즉 사주(四柱)를 보고 길흉화복을 예측한다. 보통은 음력 생일을 근거로 삼는데, 학문적으로는 동지 혹은 입춘이 기준이다. 1년이란 단위가 지구의 공전주기이므로 음력보다는 양력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흔히 1년 열두 달, 한 달 30일, 하루 24시간이라고 하지만 딱 떨어지지 않고 우수리가 남는다. 그래서 한 달(윤달)이나 하루(윤년)를 끼워넣는 치윤법(置閏法)이 등장했다. 여기에다가 권력자들이 정치적·종교적 이유 등으로 달력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면서 혼선이 생겼고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다.

모자란 달의 시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윤달

계절 변화는 태양의 고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달의 운행은 만조와 간조 등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런데도 예전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음력이 우세했다. 태양의 모습은 1년 내내 똑같은 데다 남중고도나 밤낮의 길이 변화도 주기가 비교적 길어 측정하기 어려운 반면 달은 날마다 크기가 달라지고 주기도 짧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사막을 오가야 했던 중동 지역에서는 달과 훨씬 친숙했기에 음력을 중시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이슬람권 국기 가운데 초승달 그림이 많은 까닭이다.

달의 지구 공전주기는 항성월(恒星月)이라고 하는데 약 27.3일이다. 그런데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동안 지구도 태양을 중심으로 돌며 이동하기 때문에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는 약 29.5일이다. 이를 삭망월(朔望月)이라고 한다. 12번의 삭망월을 합치면 지구의 공전주기인 1년보다 11일가량 짧다.

둘을 맞추기 위해 19년에 7번, 약 2.7년 만에 한 번씩 윤달을 끼워넣었다. 우리가 흔히 음력이라고 부르는 역법인데, 양력 요소를 가미했다는 뜻으로 태음태양력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433년 이를 고안한 그리스 천문학자 이름을 따 메톤(Meton)주기법이라고 한다.

 

윤달에는 부정 타지 않는다고 해서 이장이나 묘 단장 등을 많이 한다. 지난해 2월 설 명절을 맞아 성묘객들이 줄을 잇는 강원도 춘천시의 춘천안식공원. (연합뉴스 제공)
윤달에는 부정 타지 않는다고 해서 이장이나 묘 단장 등을 많이 한다. 지난해 2월 설 명절을 맞아 성묘객들이 줄을 잇는 강원도 춘천시의 춘천안식공원. (연합뉴스 제공)

귀신도 쉬는 윤달은 부정 타지 않는 달… 올해는 윤6월 있는 해

동양에서는 이보다 앞선 기원전 600년경부터 장법(章法)이란 이름으로 이 치윤법을 채택했다. 이와 함께 태양의 운행 주기를 정확히 알아야 농사를 짓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24절기라는 보완 장치를 더 마련했다.

그러나 곡우나 망종 등의 24절기가 중국 황하 중류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풍토에는 맞지 않는다. 조선 세종 때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독자적인 역법 칠정산(七政算)을 만들었다가 명나라와 외교적 문제를 우려해 폐기한 일도 있었다.

2025년은 음력으로 윤달이 드는 해다. 음력 6월 30일(양력 7월 24일) 다음날 7월이 오는 것이 아니라 윤6월이 또 시작돼 29일(양력 8월 22일) 끝난다. 윤6월은 1987년 이후 38년 만이다.

윤달 규칙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고 한다. 중기(입춘으로부터 따질 때 짝수 절기)가 없는 시기에 끼워넣는 것이다. 확률적으로는 윤4월과 윤5월이 가장 많고 윤3월과 윤6월이 그 다음이다. 겨울에는 극히 드물어서 “윤동지에 빚을 갚겠다”는 속담도 생겼다. 빌린 돈을 갚을 생각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윤달은 평년보다 덤으로 있는 달이어서 공달, 여벌 달, 썩은 달 등의 별칭을 얻었다. 귀신도 쉬는 달이어서 무슨 일을 해도 부정 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윤달에 수의(壽衣) 짓기, 이장(移葬), 무덤 꾸미기 등 귀신과 관계되거나 평소에는 꺼리던 일을 하는 풍습이 생겼다. 2023년에는 성묘를 많이 하는 한식(양력 4월 5일 전후)이 윤2월에 들어 개장(改葬) 수요가 폭증하기도 했다.

이집트는 나일강 범람 시기 관측하며 태양력 도입

중동 지역 중에서도 고대 이집트는 예외적으로 태양력을 썼다. 나일강 하류가 해마다 같은 시기에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은 큰개자리의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가 70일 동안 사라졌다가 동쪽 하늘에 떠오르면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리우스의 출현 주기를 1년으로 삼았다. 이 전통은 고대 로마로 도입돼 서양 역법의 토대가 됐다.

양력의 기준인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564일이어서 1년을 365일로 치면 4년에 하루꼴로 오차가 생긴다. 기원전 46년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지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4년마다 2월에 하루를 더하는 율리우스력을 제정해 이듬해부터 시행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한 카이사르의 흉상(왼쪽)과 그레고리력을 공포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 초상화.
율리우스력을 제정한 카이사르의 흉상(왼쪽)과 그레고리력을 공포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 초상화.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계산한 것이어서 128년에 하루씩 늦어진다. 오차가 10일 넘게 누적돼 혼선이 빚어지자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00으로 나뉘는 해는 평년으로 하되 4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삼는 그레고리력을 공포했다.

이 역법이 현재 전 세계에 보편화된 달력이다. 우리나라는 태음태양력을 쓰다가 갑오경장 3차 개혁안에 따라 그레고리력 기준의 태양력을 채택했다.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공포했다.

추가만 해왔던 ‘윤초’ 줄이면 컴퓨터에 문제 없을까?

그레고리력도 3000년마다 하루의 오차가 발생하나 당분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주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 세슘 원자의 진동수로 측정하는 원자시(原子時)와 지구의 자전·공전을 기준으로 하는 세계시(世界時)의 간격이 0.9초 이상 벌어지면 파리천문대에 설치된 국제시보국이 1초를 더하거나 빼는 윤초를 시행한다.

1972년 세계협정시(UTC)가 도입된 이래 27차례 윤초가 추가됐다. 마지막은 그리니치 표준시(GMT) 기준으로 2016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에서 2017년 1월 1일 0시 0분 0초로 넘어갈 때 1초를 더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2017년 1월 1일 8시 59분 59초와 9시 0분 0초 사이였다.

 

윤초를 결정하는 프랑스의 파리천문대.
윤초를 결정하는 프랑스의 파리천문대.

지금까지는 1초를 더하는 양의 윤초만 있었다. 달의 인력으로 바다가 끌리며 해저와 마찰이 생겨 지구 자전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기 때문이다. 1972년 이후 90년대까지는 거의 해마다 윤초를 더해야 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사정이 달라졌다. 극지방 얼음이 녹은 물이 지구 자전축에서 멀리 퍼지면서 해수와 지구 질량 분포에 영향을 준 것이다.

자전 속도가 빨라져 윤초가 뜸해졌고 오히려 1초를 줄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당초 예상은 2026년 말이었다가 2029년 말로 늦춰졌다.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 대다수는 음의 윤초를 상정하지 않아 적용 과정에서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 다음 주에 후속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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