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효과 불확실…시범 실시 결과도 '미미'
어느 당 유리할지 장담 어려워…국힘서도 불만
내년 총선 도입 희박…윤 대통령 다목적 노림수?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를 통해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거론하자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장점과 함께 한계도 명확한 만큼 도입의 적절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부터 의견이 분분하고, 실제 선거에서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할 것인지를 두고서도 각 정당간, 의원들간 이해 관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법 개정 시한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아(법정시한 4월 10일) 과연 촉박한 시일 내에 여야 합의로 공직선거법 개정이 가능하겠느냐는 현실론 역시 만만치 않다. 애초에 윤 대통령이 순수한 정치개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화두로 던진 건지, 고도의 정치공학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정치개혁 효과 불확실…시범 실시 결과도 '미미'
기존 소선거구제 하의 지역구 몇 개를 묶어 단일 지역구에서 2~5명, 많게는 10명 안팎의 의원을 선출하자는 중대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승자 독식의 폐해를 막아 양당 체제의 정치 양극화, 지역주의 고착 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다. 그러나 소선거구제에서라면 낙선해야 할 낮은 득표의 후보자까지 나란히 당선돼 '물갈이'를 어렵게 하는 등 오히려 민의를 왜곡시킬 수 있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동반 당선'의 안전판 역할만 할 수 있다는 점, 유명인과 중진들에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는 점 등 단점도 뚜렷하다. 세계적으로도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쿠웨이트, 라오스, 레바논 등 극소수다.
무엇보다 군소정당 후보들의 원내 진입을 원활하게 해 거대 양당 구도를 해체하고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이론적 효과가 실제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난해 6‧1 지방선거 때 기초의회의원선거 지역구 1030곳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여야 합의로 시범 실시한 바 있다. 결과를 보니 전체 당선자 109명 가운데 소수정당 당선자는 4명(정의당 2명, 진보당 2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4명 중 3명이 진보적 성향이 강한 광주에서 당선돼 특정 지역 쏠림 현상을 보였다. 전체 선거구에서의 소수정당 후보 당선율 0.9%와 비교하면 시범 실시 지역에선 3.7%를 기록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론 높지만 전반적으로 기존 양대 정당으로의 집중은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미미한 효과를 끌어올리려면 한 지역구에 특정 정당이 여러 명의 후보를 공천하지 못하도록 '동일 선거구 내 복수 공천 금지' 조항을 필수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이 기득권을 순순히 포기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복수 공천을 허용할 경우 같은 정당 후보들끼리도 경쟁이 매우 치열해져 금권정치, 파벌정치가 심해질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어느 당에 유리할지 장담 어려워…국힘 내부서도 불만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대의명분보다 실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냐는 각 정당 및 의원들에게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지만 셈법이 간단치 않아 유불리를 단정하기 어렵다. 지난 2020년 4·15 총선 때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103석을 가져가 압승을 거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16석에 그쳤지만 양당 득표율은 12%p밖에 차이가 안 났다는 사실을 두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국민의힘 측에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치러졌던 전국단위 선거인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반대로 국민의힘 후보들이 박빙의 승부 끝에 수도권에서 당선된 사례가 많았고 그 이전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선을 포함해 국민의힘이 연전연승 추세에 있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할 수도 있다. 특히 국민의힘 텃밭인 영남권에서는 차점자인 민주당 후보가 대거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호남권에서는 국민의힘 후보들 득표율이 워낙 낮아 민주당 복수공천 후보들이나 정의당, 진보당, 무소속 후보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강민구 대구시당위원장은 3일 대구시당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내년 총선과 관련해 "중대선거구제로 개편되면 대구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득실을 따졌을 때 영남에서 잃게 될 몫을 수도권에서 그 이상 가져간다는 건 희망 사항일 뿐이고 오히려 국민의힘에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민의힘 전신인 과거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구도 완화를 위해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경우 책임총리제를 시행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아예 당론으로 소선구제 유지를 못박은 바 있고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로 중대선거구제에 반대했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에게 불리하다"고 잘라 말하며 "2015년도에 당시 김무성 당대표와 문재인 당대표가 추석 때 만나서 우리 선거제도 개혁을 하자, 중대선거구제와 석패율제 도입을 논의해 보자라고 했었는데 친박이라든지 대통령실 그리고 실무진에서 반대가 심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까 영남권에서 당시 새누리당이 가진 의석의 40%를 잃는데 호남에서 얻는 의석은 4% 정도밖에 안 됐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중대선거구제를 악수(惡手)라고 판단해 대놓고 반대는 못하지만 속은 떨떠름하거나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정당과 지역을 막론하고 소선거구제를 전제로 각 지역구에서 기반을 잡았거나 맹렬히 터를 닦아온 현역 기득권 의원 및 출마 준비자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선별적으로 특정 권역만 중대선거구제로 치르고 그 외 지역은 현행대로 소선거구제로 치르면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모든 선거구를 중대선거구제로 하기보다는 지역 특성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대도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 농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따로 실시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를 가리킨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밖에 선호투표제 도입 여부,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원 정수 조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및 완전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 문제, 헌법 개정 등 여러 사안이 맞물려 있어 여야 협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내년 총선 도입 가능성 낮아…윤석열 다목적 노림수?
이런 여러 가지 이론적, 현실적, 물리적 요인들로 인해 오는 4월 공직선거법 개정 시한까지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KBS 라디오에 나와 "내년에 당장 총선인데 지금 국회에 중대선거구제를 한다고 해서 과연 실현되겠느냐. 거의 불가능하다"며 "지금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에 결사 반대를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카드를 던진 것은 평소 소신 이외에 정치공학적 노림수가 깔린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올 법하다. 개헌 이슈만큼 파장이 클 수 있는 선거제 개편론을 정치권과 여론의 블랙홀로 삼아 갖가지 실정을 덮는 한편 정치개혁 어젠다를 주도함으로써 이미지 제고 효과까지 계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가뜩이나 친명-비명으로 갈린 민주당의 내부 분열 확대를 노리고 폭탄을 투척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공천에서 소외된 국민의힘 비윤계 인사들이 중대선거구제에 기대를 걸고 탈당 및 신당 창당에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의 정계 개편 효과가 윤 대통령에게 유리할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이 이렇다 할 복선을 깔지 않고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를 별 생각 없이 꺼낸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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