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 "수십 년 반독재 항쟁 통해 단련"

"민주화 운동, 한국 정체성의 일부"

군 불법 동원한 윤의 권력 장악 시도

국회·시민 즉각 대응…3시간 내 좌절

국회, 윤석열 탄핵소추안 14일 표결

"한국 민주주의에 중대한 순간이다"

"지난주 약 3시간 만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전례 없는 정치적 위기를 마주했고 극복했다...그 대응은 신속하고 단호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아시아 전문가 다르시 드로-베자레는 11일 '한국의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어떻게 구했는가'란 글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5당 대표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대표들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석회의를 하고 있다. 2024.12.13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5당 대표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대표들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석회의를 하고 있다. 2024.12.13 연합뉴스

한국 민주주의 '수호 속도'에 주목

미 전문가 "반독재 항쟁 통해 단련"

드로-베자레는 "국회의원들이 군대의 의표를 찔러 국회가 계엄령을 무효로 만들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 장악 시도는 좌절됐다"고 썼다. 지난 3일 밤 10시 23분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령 선포, 이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과 계엄군 국회의사당 진입 저지, 그리고 4일 오전 1시쯤 께 국회의 계엄령 해제 결의를 두고 하는 얘기다.

그러나 드로-베자레는 "진짜로 입증된 건, 한국 민주주의의 힘은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이 민주제도를 지키고자, 그것도 심야에 그렇게 빨리 동원됐다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속한 대규모 시민의 동원을 통한 한국의 '민주주의 수호 속도'(speed of democratic defense)에 놀랐다면서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드로-베자레는 "이런 신속한 대응은 수십 년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항쟁을 통해 단련됐고 현대적 교육, 소셜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를 통해 유지되어온, 한국 사회에 내장된 민주주의 실천에서 비롯됐다"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인구의 90%가 넘는 약 4900만 명이 카카오톡 같은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들을 쓰면서 한국 사회가 거의 완전히 디지털로 연결돼 있다고 소개한 뒤 "이들 플랫폼은 여전히 뭣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소환하는 (한국) 사회를 연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 사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 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12 연합뉴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 사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 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12 연합뉴스

"민주화 운동, 한국 정체성의 일부"

"20세기 시민적 유산 여전히 활발"

드로-베자레는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은 역사일 뿐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상의 한국 공동체'를 접착시키는 요소로 △ 민족적 동질성 △ 시민의 강한 책임 의식 △ 정부, 학계, 시민사회 등에 포진한 민주화 운동 리더들의 공적 역할을 거론한 뒤 "이 세 요소가 결합해 대규모 동원에 필요한 역량과 콘텐츠를 지닌 특별히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80년대 노조, 농민, 학생, 중산층 지식인의 강력한 동맹은 군사독재를 물리쳤다"며 "이들은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도 자원과 정보, 조직 역량, 신뢰를 공유함으로써 집단적인 행동과 저항이 가능한 사회적, 조직적 커넥션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이런 20세기의 시민적 유산은 세계에서 가장 네트워크화된 사회 중 하나인 오늘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활성화돼 있다"고 평가했다.

드로-베자레는 한국 전쟁과 박정희의 쿠데타와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 독재, 광주학살 등 민주화 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한 전두환 군사독재,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의 수난사를 소환한 뒤 "한국은 아주 힘들게 제3의 민주화 물결의 가장 대단한 성공 스토리의 하나로 자리 매김을 했다"라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4.12.12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4.12.12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 야권 내 북한 동조자 의혹 거론

드로-베자레 "근거 없는 공포 부활"

그가 보기에, 최근의 위기는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정치 내의 단층선들을 드러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을 상대로 '종북 반국가세력'이란 틀을 씌우고 군부 통치 정당화에 사용했던 냉전 시대의 전술을 부활시켰지만, 오늘의 한국에선 별 소구력이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앞서 드로-베자레는 3일(미 현지시간) 글에선 윤석열이 계엄령 선포 이유 중 하나로 "야권 내의 북한 동조자 의혹"을 거론한 데 대해"20세기 중반 군사독재 정권이 사용했던 계엄령의 정당성, 즉 북한과의 전쟁과 남한 내의 간첩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를 부활시킨 것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드로-베자레는 또한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데도 불구, 윤 대통령에 대한 여당 국민의힘의 방어와 극우 세력의 야당 지도자들 체포 요구와 함께, 김용현 국방장관의 사임과 체포는 민주제도와 극심한 정치 대립 사이의 헌법을 둘러싼 투쟁이 깊어질 것임을 예고한다고 봤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4일 새벽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2024.12. 04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4일 새벽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2024.12. 04 연합뉴스

군 불법 동원한 윤의 권력 장악 시도

국회·시민 즉각 대응…3시간 내 좌절

드로-베자레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뤄낸 2016년의 촛불 혁명과 이번 윤석열의 불법 군 동원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을 비교했다. 그는 "박근혜는 부패 스캔들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오고 수개월의 촛불 시위 이후에 몰락했다"며 "반면에 윤석열의 권력 장악 시도는 국회의 행동과 시민사회의 즉각적 대응이 결합하면서 몇 시간 내에 좌절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의 민주주의 수호의 속도는 수십 년에 걸쳐 습득된 교훈들이 한국의 제도적 가드레일(난간)과 행정력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전국적으로 강화시켰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동원 네트워크들은 풀뿌리 운동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진보적인 민주당의 성장에게 깊게 영향을 주었다"면서 노조, 학생 그룹, 인권운동가, 전문가 단체 같은 조직들과 민주당과의 긴밀한 연계에 주목했다. 또한 민주노총이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몇 시간 안에 총파업을 선언했다"면서 "민주노총의 총파업 위협은 (윤석열의) 리더십에 실제로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한편, 시민과 학생 그룹의 전국적 동원과 결합하면서 한국의 정치 문화에 민주적 가치가 얼마나 깊이 내장돼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 사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 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찢고 있다. 2024.12.12 연합뉴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 사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 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찢고 있다. 2024.12.12 연합뉴스

국회, 윤석열 탄핵소추안 14일 표결

"한국 민주주의에 중대한 순간이다"

14일로 예고된 윤석열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과 관련해 그는 "보수 리더들은 이제 민주주의 원리와 당에 대한 충성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윤석열의 권위는 역사상 낮은 지지율과 극심한 당내 분열로 행정부가 마비되면서 심각하게 훼손된 듯하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 전개되는 위기는 윤석열의 정치적 미래나 국힘의 미래에 대한 시험일 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에 중대한 순간"이라며 "민주적 전통 수호와 최고 권력의 책임성에 대한 활발한 요구에 주로 힘입어 지난주의 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입증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의 민주주의도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제도에 대한 신뢰 약화, 당파적 이익을 위해 수사 무기화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로-베자레는 "한국의 민주주의 기반과 동원된 시민들이 지배해 나갈 것임을 역사가 보여준다"면서도 "앞으로 몇 주는 (윤석열의) 권력 장악 시도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사회와 기성 정치권의 결정적 승리로 나타날지, 아니면 더 광범위한 (여야) 대립의 위기로 인해 잘 지켜온 민주주의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될지를 시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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