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한류(韓流) 대신 한류(韓留)
일시유행 아닌 세계인 가슴에 머무를 그것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항간에 연예계를 중심으로, 한류의 확산이 정점에 이르렀으며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한류’라는 단어의 의미를 짚어보면, 한류의 ‘류’는 ‘흐르는 유행’이라는 의미의 류(流’)로서, 흔히들 영문으로 ‘Korean Wave’라고 표기한다. 이는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파도 또는 조류라는 뜻으로 여겨질 소지가 있는 용어다.
‘한류’를 자꾸만 한국 연예계의 권역 국가별 진출이라는 소극적 측면에 국한시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걱정이었다.
‘영미계의 팝송’ 또는 ‘프랑스의 샹송’ 내지는 ‘이탈리아의 칸초네’ 등과 같이 세계인들이 시공을 초월해 구가해 나갈 대중문화의 커다란 장르로 한류가 자리잡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국인들을 주축 삼은 일시적 유행가 가수들의 움직임처럼 보는 시각 또한 한류의 장래를 불안케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한류 운동에너지를 자꾸만 연예 한류 변속선의 한 정점으로 해석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운동에너지의 총합은 일정하다는 일종의 에너지 보존법칙’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도 있다.
즉, ‘한류의 총 에너지가 지속적인 에너지 총합으로 지구상에 머무르며 역동케 해야 한다’는 관점인데, 한류는 우리나라의 경제력, 외교력, 민주화 성숙도의 진전과 함께 생성되어진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나 중남미의 저개발국가들도 시기적으로 유명해진 대중가수들이 많고, 국민성 자체가 대중문화 예술을 유난히 즐기기도 하지만 ‘동남아류’라든가 ‘중남미류’ 같은 것이 형성된 바가 없다. 그렇지만 한류는, 저간의 우리나라 국력 융성이 있었기에 그 괘를 같이하며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지구촌 중심축 국가의 문화양상으로서의 ‘한류’가 차디찬 한류(寒流)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세계인이 즐겨 쓸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 및 보유할 수 있는 산업경제력’ 유지가 요구된다.
둘째 ‘브랜드 파워’로서 한국의 외교력과 군사력이 융성해야 함이고,
셋째, 한국 국민들이 다른 국가의 사람들과 포괄적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할 수 있는 영향력과 여론 지배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질 때 국격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각종 공연기획사나 개별 대중 연예인들이 창출해 내는 문화예술 디테일링과 그 구성원들의 탁월한 재능이 한층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임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제 한류는 어떤 특정 연예문화집단의 몇몇 지역에 대한 일시적 트렌드 셋팅(Trend Setting)이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온전히 자리매김하는 과정의 일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한류의 근원적 뿌리를 뒤흔드는 정치외교와 경제, 사회문화뿐 아니라 교육과 스포츠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악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는 판국이다.
대한민국의 흥망성쇄와 연계된 사회구조와 맥을 함께하는 ‘한류(韓流)’가, 한시적인 유행 류자의 한류가 아닌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머무르는 머무를 류자 한류(韓留?)로 고착되며 지속적으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제반 국가발전의 구조개혁과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류의 흐름에 크게 엇박자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어지러운 판세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속에서, 세계인이 인정하고 크게 주목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류의 발전적 변모를 향해 커다란 한 획을 그어준 대한민국의 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현대·기아차가 지구촌을 내달리며, 삼성·LG의 옥외광고가 세계 곳곳에서 번득이고, BTS와 손흥민을 세계인이 연호하는 가운데, 버젓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니 말이다.
앞으로의 한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로 대별되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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