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를 걷어내고, 진실만을 따라가겠다"
검사직 임용 때 엄숙하게 다짐한 그 약속
선서하며 펼쳐들었던 그 손 부끄럽지 않나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22년 9월 13일, 최재영 목사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를 만나 명품 백을 건네주면서 시작된 이른바 ‘디올백 뇌물수수 사건’이 지난 10월 2일 검찰의 불기소 처리로 ‘일단’은 끝났다. 폭로 영상으로 디올백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개월 만이며, 우여곡절 많은 수사 5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납득할 국민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불기소 결정 사유를 설명하는 검찰의 옹색한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스로도 부끄러웠을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이란 말
검찰은 유치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현란한 수식어를 동원하여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 그리고 최재영 목사 등을 모두 무혐의 처분하면서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 기소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국민을 실소케 한 결정적 발언은 그 다음이었다.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른 결론”이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나는 과거에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5년의 일이다. 그때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등 5.18 쿠데타 학살자를 처벌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할 수 없다”고 하여 국민적 공분을 샀다. 수사를 하라고 했더니, 검찰이 정치를 한 것이다.
결국 정치를 한 검찰은 얼마 되지 않아 큰 망신을 샀다. 처벌할 수 없다던 전두환 등이 그 해가 가기 전, 모두 체포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런 망신을 사고도 이 나라 검찰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검찰의 김건희 씨 불기소 처리 발표를 접한 국민들의 분노는,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특히 임은정 대전지검 부장검사가 이번 불기소 결정을 매우 강하게 비판했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든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검찰이 디올백 사건을 무혐의 결정하면서 ‘법률가 양심’ 운운했다는 기사를 친구들이 제게 보내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위법한 줄 모르고 내린 위법한 지시는 징계 대상 아니다”라고?
그는 검사로서 과거 정부에서 자신이 경험한 여러 사례를 들며 진솔하게 검찰의 치부를 공개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간부의 감찰을 요구했으나 ‘계속해서 비위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담당 검사 간에 있었던 일화도 공개했다.
명백한 검찰 간부의 잘못을 처벌해 달라며 지속적으로 요청했음에도 감찰 담당 검사가 연이어 불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논리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궤변이었다. “간부가 위법한 줄 모르고 위법한 지시를 한 것이라 그 간부에게 위법성의 인식이 없었고, 따라서 징계할 수 없다”는 것.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담당 검사가 “검사로서 양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며 우기자 결국 임 부장검사가 “검사에게 양심이 어디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상명하복을 보았을 뿐, 검사의 양심과 용기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라며 일침을 가했다는 것. 그야말로 이번 디올백 뇌물수수 사건을 불기소 처리하면서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른 결론’ 운운한 서울중앙지검 김승호 부장검사에게 다시 들려 줄 명언이 아닌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판 언론 고발 사주’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 매체의 폭로 에 의하면 대통령실 소속 시민소통비서관실 선임 행정관이 보수 시민단체를 동원하여 비판 언론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들어 내 주변에서 사회 활동을 하는 지인들이 크고 작은 이유로 형사 고발된 사례가 적지 않다.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는데, 진실의 일부가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발 사주’ 의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0년 4월 손준성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국민의힘을 통해 최강욱 의원 등을 고발사주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2023년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류희림 위원장이 친인척을 동원한 ‘민원 사주’ 의혹도 있다.
경찰보다 못한 검사들의 신뢰도
누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고소 고발을 하는 건 현행법상 막을 수 없으니, 그건 두 번째 문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건의 최종 종착지라 할 수 있는 검찰의 검사가 이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냐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 문제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얼마나 검사들을 신뢰하고 있을까?
통계청이 2022년에 펴낸 한국행정연구원의 <2022년 사회통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검찰은 경찰에 비해서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구체적인 신뢰 수치 결과를 보면 경찰은 49.6%의 신뢰도를 얻었으나 검찰은 45.1%에 그쳤다. 왜 검찰은 경찰보다 국민의 신뢰도가 뒤처져 있을까.
사람들은 ‘의사’하면 떠올리는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이며 ‘간호사’하면 <나이팅게일 선서>를 연상한다. 그러면서 직업의 숭고한 존엄을 기억한다. 그런데 검사에게도 <대한민국 검사 선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09년에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령으로 시행된 <대한민국 검사 선서>는 검사로 취임할 때 선서하도록 ‘검사선서에 관한 규정’ 제2조에 명시되어 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뜻은 바르고 듣기에 달콤한 <대한민국 검사 선서>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 000’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검사들은 어떤가. 임은정 부장검사가 “검사에게 양심이 어디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상명하복을 보았을 뿐, 검사의 양심과 용기를 거의 보지 못했다”는 말에 국민들은 더 공감하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의 무소불위 권력인 검찰청을 해체하고, 대신 ‘수사권 없이 기소만 담당하는’ 기소청 신설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나 역시 그것이 올바른 검찰 개혁의 방향이라고 믿고 있다.
지난 30년 넘게 인권운동가로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차례 공직에서 일하는 경험을 가졌다. 그때마다 검찰에서 파견 나온 다양한 직위의 검사와 협업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만난 그들은 소위 ‘에이스’라 불러도 좋을 만큼 능력 있고 인성이 좋은 검사였다. 하지만 억울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진짜 검사는 아직까지 만나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용기있는 검사, 공평한 검사, 바른 검사 어디 없나”
영화 <더킹>에서 보는 그것처럼, 검사들이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의 편에 서서 농간을 부리면 나라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검사 선서에는 온갖 좋은 문구만 써 놓고, 정작 실천은 거꾸로만 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어떻게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의 잘못은 전부 불기소, 혐의 없음으로 처리 되고, 야당 대표는 있는 죄, 없는 죄 다 기소해서 일주일 내내 법원을 출입해야 하나. 이러면서 이것을 공정한 사법권 행사라고 주장할 수 있겠나.
검찰은 10월 2일 불기소 결정으로 ‘디올백 뇌물 수수사건’이 끝났다고 우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쉽게 거스르지 못한다. ‘일단은’ 끝난 듯 보이지만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4대강 물이 결국 자기 물줄기를 찾아가듯 진실은 순리대로 흘러 아무리 늦더라도 정의를 찾아간다. 단언컨대, 디올백 뇌물수수 사건은 분노를 기억하는 국민에 의해 ‘결국’ 심판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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