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딸이 보험금 노리고 장애인 아버지 살해?

"자신과 여동생 성추행하자 범행" 무기징역 판결

증거 없고 거액의 보험금도 처음부터 존재 안 해

김신혜 씨와 수없이 편지 주고받으며 진실 추적

"포기하지 말고 살아 있으라"…마침내 희망의 빛

박준영 변호사와 만남…2017년 재심 결정 '기적'

"손녀 살려달라" 울며 애원하던 할머니 세상 떠나

"꼭 무죄 밝혀내겠다" 약속 지키려 해남 법정으로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지난 6월 13일(목)이었습니다. 한 통의 문자가 휴대폰에 들어왔습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검찰청이 제 개인정보를 조회했다는 알림인데 '재판의 증인으로 소환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뭐지 싶어 의아해하던 그때, 이번엔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러면서 뜬 번호는 재심사건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2000년 3월 7일 새벽 5시, 전남 완도에서 발생한 '존속살인 여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과 관련해 잇따라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23살(1977년생)이던 딸이 거액의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장애인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먹여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차도에 유기했다는 사건.

경찰과 검찰, 그리고 1‧2심 법원은 '아버지가 자신에 이어 이복 여동생마저 성추행하자 이에 격분하여 살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신혜 씨는 이를 강력 부인했습니다. 오히려 '내 아버지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시민단체 활동가로 있던 저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때가 2000년 12월 24일, 그러니까 그녀가 사건 발생 후 2심 법정에서 다시 한번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오늘로 만 24년째 감옥에 있습니다. 특히 2001년 1월, 제가 처음 신혜 씨의 도움 요청을 받은 후 서울에서 전남 완도까지 여러 차례 내려가 사건 현장을 검증하고 '지금은 돌아가신' 그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사건 당일의 증언을 들었던 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김신혜 씨의 현장검증 당시 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14년 8월 2일 방송 '수면제 살인 미스터리, 무기수 김신혜의 14년' 화면 갈무리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김신혜 씨의 현장검증 당시 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14년 8월 2일 방송 '수면제 살인 미스터리, 무기수 김신혜의 14년' 화면 갈무리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김신혜 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는 기록이 담긴 현장검증 조서.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14년 8월 2일 방송 '수면제 살인 미스터리, 무기수 김신혜의 14년' 화면 갈무리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김신혜 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는 기록이 담긴 현장검증 조서.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14년 8월 2일 방송 '수면제 살인 미스터리, 무기수 김신혜의 14년' 화면 갈무리

살해 증거는 없고 범인이 필요했던 사건?

제가 이 사건에 의문을 품은 것은 무엇보다 현장을 살펴보고 관련자의 증언을 확인한 뒤였습니다. 이를 통해 수사기관과 법원의 결론이 실체적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김신혜 씨 혼자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사법당국은 신혜 씨가 수면제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하나 그 수면제를 어디서 구매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먹였다는 것인지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것을 혼합해서 먹였다는 술병과 술잔 역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더 중요한 살해 동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추행이 정말 있었는지도 의문인데다, 아버지 살해 후 수령한다던 거액의 보험금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감춘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사건은 처음부터 엉터리였고 진실은 왜곡되었습니다. 오히려 신혜 씨를 범인으로 경찰에 제보한 친인척의 시간대 행적에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추적하여 2003년 <니가 뭔데>라는 제목의 책에 '어느 존속살인 여 무기수의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주제로 최초 폭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법 체계상 재심을 청구해도 받아주지 않으니 훗날을 위해 정확히 기록하려 한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조사한 기록을 가지고 여러 인권 변호사를 찾아가 검토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랬습니다. 그저 소주만 사줄 뿐 아무도 제 기록을 읽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쓰린 가슴에 찬 소주만' 들이부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의 빛은 있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후 뜻밖의 곳에서 돌파구가 열린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여성지 기자에게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이번엔 모 월간지에서 "250매 분량인 기사를 100매로 압축해서 기고해 줄 수 있냐"는 제안이 왔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고한 월간지 글을 당시 2000년대 초반 인터넷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미스터리 카페 사이트가 복사하여 옮겨 갔다고 합니다. 이후 각 방송사 시사프로 작가들이 아이템을 선정하고자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이 카페에서 제가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하여 방송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분이 보게 된 방송이 2003년 두 차례나 방송된 SBS <뉴스 추적>과 MBC <PD 수첩> 등입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서 2014년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게 해 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는 신혜 씨에게 행운이었습니다.

 

김신혜 씨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던 고상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의 모습. MBC 'PD수첩' 2003년 10월 21일 방송 '어느 무기수의 절규,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화면 갈무리
김신혜 씨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던 고상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의 모습. MBC 'PD수첩' 2003년 10월 21일 방송 '어느 무기수의 절규,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화면 갈무리
김신혜 씨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던 고상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의 모습. MBC 'PD수첩' 2003년 10월 21일 방송 '어느 무기수의 절규,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화면 갈무리
김신혜 씨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던 고상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의 모습. MBC 'PD수첩' 2003년 10월 21일 방송 '어느 무기수의 절규,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화면 갈무리

2017년, 재심 개시 재판 중 알게 된 사실

불현듯 그날이 기억납니다. 2014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라며 한 남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김신혜 씨 사건을 다시 한번 방송에서 다루고 싶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잠시 고심 끝에 협조를 거절했습니다. 뜻밖의 반응에 피디는 이유를 물어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숱하게 많은 방송과 보도를 했지만 정작 신혜 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저 1회성, 보여주기식 방송은 신혜 씨도 그렇고 나도 좀 지쳐서 그만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정말 귀가 확 트이는 놀라운 제안을 들었습니다. 이번엔 재심을 위한 변호사도 책임지고 구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분이 바로 박준영 변호사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은 방송사가 구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 변호사에게 그저 김신혜 씨를 한 번만 면회해 달라고 한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신혜 씨의 억울한 사연에 공감한 박 변호사의 선의, 그것이 전부였음을 뒤늦게 알고 그야말로 운명적인 인연이구나 싶었습니다.

여하간 이런 계기로 그저 꿈으로나 여겼던 재심이 기적과도 같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해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2000년 3월 7일 사건 발생 이후 2017년 재심 개시 공판이 열리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 속에서 제가 한 말의 메시지는 대부분 이것이었습니다.

'부디 죽지 말고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오직 살아 있으라. 언젠가 도둑처럼 찾아올 재심의 그날을 위해….'

그런데 마침내 그날이 거짓말처럼 찾아왔습니다. 재심 법정에 출석한 신혜 씨에게 박준영 변호사가 물었습니다. 지난 17년간의 수감 기간 중 감옥 밖 누군가에게 본인의 억울함을 전달한 사람이 있었냐고…. 그러자 신혜 씨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답변을 했습니다.

"네.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방청석에 앉아 문답을 들으면서 저는 '과연 그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17년이란 오랜 세월이었으니 여러 명을 언급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답이 신혜 씨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 답을 듣는 순간 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인권 운동하는… 고상만 씨였습니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신혜 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가 푹 숙여졌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간절하게 편지를 보냈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그녀의 지난 시간을 생각하니 과연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경청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간절함이 이뤄낸 기적 같은 재심이었습니다.

 

무기수 김신혜 씨가 고상만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에게 보냈던 편지. SBS 뉴스토리 화면 갈무리
무기수 김신혜 씨가 고상만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에게 보냈던 편지. SBS 뉴스토리 화면 갈무리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 씨가 2019년 3월 6일 오후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9.3.6.연합뉴스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 씨가 2019년 3월 6일 오후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9.3.6.연합뉴스

신혜 씨 할머니와의 23년 전 약속

한편 또 다른 기적의 힘은 바로 신혜 씨 조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신혜 씨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자랐습니다. 그런 손녀가 갑자기 아버지 살해 혐의로 구속되니, 조부모님의 상심은 말해 무엇할까요. 그런 지경에 서울에서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내려왔으니 고마운 마음이 깊었겠지요.

그분들이 사는 집을 방문해 보니 남루하기 짝이 없는 살림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일어서려고 할 때였습니다. 당시 8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곁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모종의 눈짓을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할머니가 머뭇머뭇하더니 옆자리 옷장 서랍 밑에서 다 헤진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언뜻 보니 만 원권 돈이 든 봉투 같았습니다.

"선생님. 이게… 저희가 가진 돈의 전부입니다. 제발 저희 손녀 좀 살려 주세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할머니가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담긴 애절한 눈으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난감한 상황 앞에서 저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잘 알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할머니 손녀가 살아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약속하겠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이 봉투를 끝까지 주시면… 저는 지금 여기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러니 이건 다시 넣어 두세요."

그렇게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봉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약속했습니다. 언제 이루겠다고 시간을 정할 수는 없지만, 설령 두 분이 이 세상에 없다 해도 오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할머니는 그날로부터 10여 년 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어 할아버지는 2017년 재심 개시 결정이 있고 얼마 후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지금은 두 분 다 이 세상에 안 계신 것입니다.

저는 이제 그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월 24일(월) 새벽 기차를 타고 전남 해남지방법원 법정으로 출발합니다. 만 23년 전 했던 약속, 두 분의 손녀가 '무죄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제가 직접 듣고 확인했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언하러 길을 나섭니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무기수 김신혜 씨의 진심이 법정에서 전해지기 바랍니다. 부디 진실의 종이 울리기를 함께 응원해 주세요.

 

2019년 3월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한 김신혜 씨(오른쪽)가 법정에서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2019.3.6.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2019년 3월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한 김신혜 씨(오른쪽)가 법정에서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2019.3.6.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2019년 3월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한 김신혜 씨(오른쪽)가 법정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2019.3.6.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2019년 3월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한 김신혜 씨(오른쪽)가 법정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2019.3.6.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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