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어머니의 호소, 돌아온 건 '차디찬 배신'

윤일병 어머니를 고소한 윤정부 '군인권 보호관'

화해는 그만두고 진정인과 싸우려는 '진실화해위'

나는 말한다, 당신들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 없다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이 발생한 때는 2023년 7월 19일이었다. 어느덧 사건 발생 만 1년이 지났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의 기일 한 달여를 앞둔 지난 6월 11일 ‘이례적인’ 편지 호소문을 발표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채 상병의 참담한 죽음 앞에 분노할 때도, 그 어머니는 무서우리만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30년 넘게 인권 운동을 해오면서 수많은 유족들을 만나 왔지만 자식 잃은 어머니가 그처럼 슬픈 감정을 절제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런 채 상병 어머니가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밝힌’ 편지 입장문은 참으로 절절했다.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 그러나 돌아온 건 ‘차디찬 배신’

‘고 채수근 엄마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글에서 어머니는 그동안 함께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그간 참아왔던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표현해야 살 것 같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아들이 떠난 후 (이듬해인) ‘24년도 초에는 진실이 밝혀질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고가 일어나던 그날, 유속도 빠르고 흙탕물인데 누가 아들에게 (가슴 장화를 신고) 물속에 투입시켜 실종자를 찾게 했는지 ‘사고 1주기가 지나가기 전에는’ 진실을 밝혀달라고 당부했다.

 

해병대 생존장병 어머니들이 31일 오전 국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TF와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지난해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탄원의 북'을 치고 있다. 2024.1.31. 연합뉴스
해병대 생존장병 어머니들이 31일 오전 국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TF와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지난해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탄원의 북'을 치고 있다. 2024.1.31. 연합뉴스

또한 국방부장관 등 관계당국을 향해서도 아들의 사인 진상규명을 위해 애쓰다 고통당하고 있는 박정훈 단장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이를 통해 다시는 장병들에게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아들 수근이가 좋아했던 해병대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는’ 글로 어머니의 편지는 마침표를 찍었다.

이러한 채 상병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윤석열 대통령과 신원식 국방부가 돌려준 답은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아시다시피 결론은 ‘차디찬 배신’이었다. 경북경찰청은 어처구니없게도 수사 심의위를 통해 핵심 의혹 당사자인 임성근 전 사단장을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다. 반면 유족이 명예회복을 요구했던 박정훈 전 단장은 임 전 사단장이 불송치 됨에 따라 ‘항명죄’ 군사 재판이 더욱 불리해져 가는 형국이다. 무엇 하나 유족이 요구한 사안 중 수용된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채 상병 어머니가 기대했던 ‘진상규명 후 아들을 추모하는 평온함’ 대신,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세상은 특검법 제정을 둘러싸고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한편 채 상병 어머니는 경북경찰청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지금까지 어떤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다. 과연 어머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군 인권 보호관’ 탄생시킨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어머니

그날이었다. 모 방송 사회부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군 수사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한다며 비슷한 피해 사례를 가진 군 유족을 소개받고 싶다는 도움 요청이었다.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유족 어머니 몇 분과 연락하던 중 나는 오랜만에 윤 일병 어머니와도 통화하게 되었다. 윤 일병은 2014년 자대 배치 받은 석 달 만에 행동반응이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선임병 세 명에게 지독한 구타, 가혹행위를 당했고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른바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바로 그 사건이다. 그리고 10년.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어머니는 그후 10년 동안 ‘아들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군 인권 개혁을 위해 정말 치열하게 싸워왔다.

1970년 ‘노동자의 예수’라 불리는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이소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윤 일병의 안미자 어머니 역시 “비록 나는 아들을 잃었지만 다른 엄마는 적어도 나 같은 그런 고통은 당하지 말라는 마음으로 싸웠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군 유족과 함께 싸워 만들어낸 결과물이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설치된 ‘군 인권 보호관’이었다. 단언컨대 이 어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아들 윤 일병의 참혹한 죽음이 없었다면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군 인권 보호관’은 지금까지도 출범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국방부가 도입을 반대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이 나라의 엄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군 인권 보호관’이 어처구니없게도 윤 일병의 어머니를 배신했다. 아니, 배신 정도가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애써온 이 어머니의 모든 노력을 근본부터 ‘뿌리째 뽑아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제2대 군 인권 보호관’ 김용원 상임위원이 벌인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14년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가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윤 일병 사건 국가배상소송 대법원 상고심 심리불속행기각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준비하며 안경을 만지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상고심을 본안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고 밝혔다. 2022.10.4. 연합뉴스
2014년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가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윤 일병 사건 국가배상소송 대법원 상고심 심리불속행기각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준비하며 안경을 만지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상고심을 본안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고 밝혔다. 2022.10.4. 연합뉴스

그 윤 일병 어머니를 고소한 현 정권의 ‘군 인권 보호관’

2023년 11월, 김용원 군 인권 보호관은 서울경찰청 앞으로 윤 일병의 어머니와 누나, 매형, 그리고 다른 군 유족 10여 명을 불법 건조물침입 및 특수감금,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의뢰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같은 해 10월 23일, 국가인권위로 찾아와 자신을 감금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송두환 인권위원장과 면담을 위한 방문이었고 김 위원을 감금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이들 유족 측 입장이다.

지난 7월 중순경, 윤 일병의 어머니와 통화하던 날 듣게 된 하소연은 그래서 더욱 참담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국장님. 내가 군에서 그렇게 아들 잃고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했나 돌아보니 참 허망합니다. 군 인권 보호관을 만들면 나 같은 엄마가 없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거 만들려고 정말 안 가본 곳이 없고, 여기저기 정당과 국회 찾아가서 사정하고 부탁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서 2022년에 군 인권 보호관 출범식 한다고 유족 대표로 축사하던 날을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윤 일병 어머니가 삼켜버린 그 뒷말은 비단 ‘군 인권 보호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이하 ‘진실화해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형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진실화해위에서 들리는 사례는 더욱 기가 차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진실화해위에서 일하는 ‘일부’ 고위 공무원들이 진정인에 대한 기본적 상식과 예의를 가진 자들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이 위원회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보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화해하자고 만들었는데 진정인과 싸우려는 ‘진실화해위’

2010년 12월 이명박 정부에서 멈춘 1기 진실화해위를 10년 만인 2020년 12월에 다시 구성하고자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이는 진실화해위 인터넷 누리집에서 위원회 출범 과정을 스스로 소개하고 있는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의 간절한 열망과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 2020년 12월 10일 재출범했습니다.”(진실화해위 인터넷 누리집 <위원회 개요> 인용)

노무현 정부가 출범시켰던 과거사 관련 조사위원회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종료시켰다. 기본활동 종료 후 법적으로 연장 가능한 조항이 있었지만 이명박 청와대가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원회를 종료시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5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다시 진실화해법을 제정해 달라”며 밤샘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해체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최승우 씨는 이전에도 900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는 등 이 법안 처리를 촉구해 왔다. 그럼에도 여야 간 갈등 속에 20대 회기 종료에 따라 법안이 폐기될 위기에 몰리자 최 씨가 극단적인 고공농성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당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무성 의원이 마지막 의정활동의 의미로 중재하면서 전격 타결에 이르게 된다.

그야말로 피해자 최승우 씨의 900일에 걸친 국회 앞 천막 농성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마지막 극단적인 고공농성이라는 처절한 절규가 없었다면 지금의 진실화해위 출범 역시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채 상병 특검법처럼 여야 간 이해를 둘러싸고 소모전만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에서 들려오는 소식 역시 앞서 군 인권 보호관과 마찬가지로 ‘진정인에 대한 수사의뢰’였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부터 집단 학살당한 피해 유족이 ‘진상 조사가 지연되는 것에 항의하고자’ 점거농성에 돌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상임위원 방에 들어가 고함을 쳐 이옥남 상임위원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기관 차원’에서 수사 의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유족회 관계자들은 억울하다며 부인하고 있다. “이옥남 상임위원과 마주친 적도 없고 방에 들어간 적도 없으며 다만 복도에서 구호를 외쳤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옥남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이옥남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유족들 수사의뢰하는 당신들, 그 자리 있을 자격이 없다”

피해자들이 싸워 만든 위원회가 다시 피해자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무엇보다 진실화해위의 설립 목적은 불행한 과거와 화해하자고 만든 것이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조속히 진실을 밝혀달라며 조사를 촉구하는 유족에게 수사를 의뢰할 일인가. 더구나 유족들은 이미 당해 본 트라우마가 있지 않은가.

진실화해위는 2021년 5월 27일, 조사개시 첫 결정을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2만 245건의 진정 사건을 접수받아 지난 3년 간 모두 1만 2143건(59.9%)을 해결했다고 2024년 5월 27일 발표했다. 그리고 1년 연장이 되어 내년 5월 27일 활동 마감을 앞둔 상태이다. 그렇다면 진실화해위는 남은 기간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40%를 조사 완료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성과로 보면 1년에 평균 20% 정도 완료 했으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조바심이 난 미해결 유족 입장에서 책임자를 찾아가 항의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에 대한 응답이 진심어린 사과 내지는 대안 제시가 아니라 수사의뢰였다니 기가 찰뿐이다. 혹여 또다시 1기 때처럼 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지 못한 채 위원회 문이 닫힐까봐 두려운 유족들에게 그렇게 하는게 최선일까. 그것조차 이해해 줄 인권 의식도 없는 자들이 무슨 진실과 화해를 말하나.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할 자격이 없다.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하겠다.

사방에서 ‘가해자보다 더욱 혹독한’ 인권기구의 대리자들이 있다. 그들이 인권 피해자들에게 더욱 상처가 되는 세상이다. 인권 피해자들을 위해 기능하라고 만들었는데 오히려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바뀌고, 여야가 바뀌어도,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국가인권위가 그렇고, 군 인권 보호관이 그렇고, 진실화해위가 그렇고, 앞으로 활동할 이태원 참사위가 그래야 한다. 더 이상 피해 유족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당사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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