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퇴진시위에 진압복·헬멧 무장한 경찰
옛날 독재시대 더러운 기억들 떠올라
정권에 따라 몽둥이 지팡이 오가는 집단
집시법은 본디 시위대 보호가 목적
지난 11월 9일 개최된 ‘윤석열 정권 퇴진 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적 대응이 질타를 받았다. 알려진 것처럼 이날 경찰의 대응 방식은 최근의 매뉴얼과 완전히 달랐다. 경찰은 처음부터 ‘방검복’이라 불리는 진압복과 헬멧으로 중무장한 채 대규모로 배치되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날 경찰은 ‘집회에 참석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공격하는 행태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의원 신분을 미리 밝힌 후 안전 대책을 요구하던 야당 국회의원에게 매우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이어 참가자 11명을 연행한 경찰은 그중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다행히도 법원이 이를 전부 기각하기도 했다.
옛날의 기억 소환한 경찰의 독재시대 행태
이러한 결과에 대해 언론에서는 ‘무리한 경찰의 영장 청구를 법원이 막았다’고 썼다. 또한 일부에서는 ‘80년대 전두환 독재시대로 경찰이 회귀한 것 같다’는 말도 한다. 나 역시 그러한 비판 의견에 공감한다. 나는 그날 경찰의 터무니없는 위협적 태도를 ‘현장에서 직접 보며’ 과거 기억 속 한 장면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내가 서울 명동에 위치한 천주교 인권위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던 1998년 3월의 일이다.
경찰 정복을 입은 한 무리가 예고도 없이 인권위를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경찰 무리가 들이닥쳤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이 떼로 찾아와 좋을 일이 뭐가 있겠나. 하지만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데, 설마 우리를 압수수색하러 온 건가 싶었다.
잠시 후 그 경이로운 의문이 풀렸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니 “관내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하여 인권위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런 날도 다 있구나 싶었다. 찾아온 신임 경찰서장 일행에게 차를 대접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들은 말을 되살리면 대략 이러했다.
“그동안 우리 경찰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권위적인 정부 하에서 강요받아서 행했던 잘못된 일들을 진실로 반성합니다. 이제 인권을 중시하는 새 정부에서 인권경찰로 거듭날 것을 약속하며 그런 마음으로 서장 부임하는 첫날, 제일 먼저 인사드리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앞으로 변화된 인권 경찰로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탁치니 억하고… 고문살인도 조작했던 경찰
그랬다. 우리나라 경찰은 ‘치안 유지가 아니라’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손과 발 역할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가 살기를 내뿜던 그때가 대표적이지 않았나. 특히 87년 1월 14일 경찰은 서울대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하여 물고문 끝에 살해했다. 경찰은 이 사실을 숨기고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숨졌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국민 거짓말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해 6월 9일부터 시작된 6월 항쟁 속에서 이번엔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져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으나 경찰은 이후 들어선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잠시 어수선했으나 결이 다를 것 없는 정부에서 경찰은 시위에 나선 이들에게 최루탄을 쐈고 최루액을 쏟아부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6년 ‘연세대 범청학년 사건’이었다. 이때 경찰은 연행 과정에서 여대생들을 상대로 집단적 성추행을 했다. 이 사실이 당시 추미애 국회의원에 의해 국회 행정안전위 국감에서 폭로되어 큰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끝까지 부인했고 사과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잡아뗐다.
그 뒤에도 잇따른 용산참사, 명박산성,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랬던 경찰이 그간의 잘못을 반성한다며 스스로 찾아왔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야말로 여야 정권교체가 ‘이런 거구나’를 맛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찰이 또 태도를 바꾸는 것 역시, 정말 빨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경찰의 변신은 놀라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했다. 그러다가 터진 대형사고 몇 가지만 언급해도 참혹하다. 먼저 2009년 1월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용산참사다. 이 사건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경찰 지휘부의 무리한 진압 지시가 빚은 참사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경찰은 이른바 ‘명박산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시위대가 청와대 방면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광화문 일대에 쌓아올린 컨테이너박스 더미의 이름이었다. 참으로 별짓을 다 했다.
그러던 2015년 11월 14일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쌀 수매가 인상’을 이행하라는 집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그리고 이 집회에 참석했던 67세의 백남기 농민을 경찰은 고압의 물대포로 공격했다. 직사 물대포를 맞고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인데도 경찰은 그를 구하러 들어간 다른 사람까지 물대포 공격을 했다. 당시 무방비 상태로 의식을 잃은 노인을 계속 공격한 경찰은 ‘사실상 그를 살해한 것’과 다름이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때도 당시 경찰청장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조지호 경찰청장의 사과 거부는 윤석열에 대한 충성 맹세
그렇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역대 경찰 책임자들은 모두 사과도 거부했고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집회 참가자의 불법행위를 지적하며 ‘경찰의 해산 명령을 수용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은 집회를 통제하려고 제정된 법이 아니다. 경찰은 집시법을 악용해선 안 된다. 지난 9일 경찰은 신고된 범위를 초과하여 집회 공간을 차지했다고 하여 충돌을 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고 연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조 청장은 불법행위의 책임이 주최 측에 있다며 강변하고 있다. 과연 이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경찰의 주장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단순한 신고 범위 이탈만으로 집회 자체를 해산, 저지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공권력 행사이기에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이 이러한 대법원의 판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윤석열에게만 충성’에서 비롯된 억지인 것이다.
한편 참담한 심정으로 집회에서 귀가하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제보를 받았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현직 경찰로부터 온 제보였다. 자신도 오늘 현장에 동원되었다며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와 나눈 대화 내용을 캡처해서 보내줬는데 그 내용 중 의미 심장한 내용이 있었다.
정권 바뀌면 사과하는 경찰, 이젠 어림도 없다
‘의도적으로 폭력 시위를 유발하는 지휘부의 지시에 너무 화가 나는 근무였다… 근무복(완전 진압복) 입고 설치는 것도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말에 카톡 속 그의 동료 역시 공감하며 ‘그래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 일에 충실해야죠.’라고 동의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제를 한 현직 경찰에게 오히려 힘내라고 격려했다. 그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만약 다음에 정권이 바뀐다면 그땐 또 어떨까. 경찰은 늘 그때 가서야 반성했다. 용산참사가 그랬고, 백남기 농민 사건도 그랬다. 윤석열 권력이 영원할까? 조지호 경찰청장이 사과 안 하고 버티고 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 어림도 없다. 그때 가서 사과한다고 하지 마라. 지금 해라. 경찰이 잘못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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