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 무너진 대한민국…윤석열 21번째 거부권

고민없는 윤석열 의사봉…거부권 행사 평균 4.1일

정부·여당 법안까지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 거부권

75세 총리 방패막이 삼아 본인·가족 수사까지 방탄

이대로면 독재자 이승만 거부권 45회 기록 넘길 듯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시작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4.7.3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시작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4.7.3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중 21번째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가운데, 거부권을 재가하는 데 평균 나흘밖에 소요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부권 행사는 입법권에 대한 제한으로 민주주의 원칙인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만큼 최대한 신중해야 하지만, 사실상 반자동으로 거부권을 남발한 셈이다.

16일 <시민언론 민들레>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21개 법안과 관련해 대통령실·국회·법제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데 법안 1개당 평균 4.1일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윤 대통령이 임기 중 거부한 법안이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거부권이 행사된 날까지 소요된 기간 전체(86일)를 법안 개수(21개)로 나눈 것으로, 대통령이 정부로 넘어온 법안에 대해 어느 정도 숙고 기간을 거쳐 거부권을 행사하는지 보여준다.

헌법 제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을 정부로 이송된 뒤 15일 이내에 공포해야 하며, 국회 재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 이송 다음 날부터 15일 이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뒤 15일 정도의 숙고 기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숙고 기간이 거의 없이 단 4일 만에 법안을 거부했다. 실제 21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기간, 대통령이 야당이나 시민사회와 토론, 협의 등을 가진 적도 전혀 없었다.

 

윤석열 거부권 행사 법안 1개당 평균 4.1일 소요. 2024.8.16. 김성진 기자
윤석열 거부권 행사 법안 1개당 평균 4.1일 소요. 2024.8.16. 김성진 기자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대한 거부권은 최대한 신중하게 사용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이승만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들도 거부권을 자제했다. 대통령이 국회까지 장악한 독재기간을 포함하더라도 박정희 5회, 전두환 0회, 노태우 7회, 김영삼 0회, 김대중 0회, 노무현 6회(6회 중 2회는 고건 직무대행), 이명박 1회, 박근혜 2회, 문재인 0회 등으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극도로 절제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에선 벌써 21번째 거부권 행사로 사실상 마구잡이로 권한이 남용되고 있다. 헌법이 정한 국회의 입법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셈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러 차례 여소야대 국면이 있었고 극한의 대립을 겪었지만, 대통령이 이토록 거부권을 남발한 사례가 없었다.

열흘 고민도 하지 않은 거부권도 수두룩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가운데 단 열흘의 숙고 기간도 거치지 않은 법안은 수두룩하다.

1호 거부권 행사 법안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가와 직결된 문제임에도 정부에 이송된 지 단 5일 만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김건희 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쌍특검법'은 가족 수사와 관련됐음에도 단 하루 만에 거부됐다.

21대 국회 국회 임기 만료를 하루 앞두고 본회의를 통과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민주유공자법 제정안,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안, 한우산업지원법 제정안 등은 통과 당일 정부로 긴급 이송돼 다음날 곧바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자동으로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절차조차 국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앞둔 지난 5월 21일 본인의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된 채 해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만큼 법률안 정부 이송 14일 만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 통과일을 기준으로 따지면 19일 만의 거부권 재가였다.

그러나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한 채 해병 특검법(2차)에 대해선 나흘 만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도 미국 순방 중 휴양지인 하와이에서 전자결재(전결) 방식으로 이뤄졌다. 국민의 관심이 높은 법안일 뿐 아니라, 순방 이후에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했지만 속전속결이었다.

순방 기간까지 고려해도 숙고 기간이 남았지만 해외 휴양지에서 전결로 처리한 것은 국정운영의 카운트 파트인 야당과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4월 총선 참패 뒤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농어업 회의소 법안. 하루 만인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 설명에는 여야 국회의원과 정부가 총 7개 법안을 발의해 이를 통합, 조정했다고 명시돼 있다. 2024.5.29.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농어업 회의소 법안. 하루 만인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 설명에는 여야 국회의원과 정부가 총 7개 법안을 발의해 이를 통합, 조정했다고 명시돼 있다. 2024.5.29.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막가는 대통령, 정부·여당 발의 법안도 거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별다른 숙고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거부한 법안 내용에서 명확해진다.

지난 5월 거부권을 행사한 농어업회의소법·한우산업지원법의 경우, 민들레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상임위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쟁점 법안이 아닌 정부·여당이 발의한 법안으로 나타났다. 여당이 자당 법안을 셀프 거부한 것이다.(☞5월 29일자, <막장 윤석열, 국힘 발의 법안도 거부권 행사>)

농어업회의소법은 농어업인 의견을 수렴하는 기구인 지역 농어업 회의소를 법제화해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한우산업지원법은 미국산 쇠고기 관세 철폐에 대비해 사료값 상승 등으로 생산기반이 약화된 한우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법이다.

두 법안 모두 민생 법안으로, 정부 또는 여당 의원이 발의하고, 야당 의원들도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상임위에서 여러 법안들을 통합 조정했고, 여당 의원들의 반대도 없었다. 법안 통합 과정에서도 여야간 이견이 거의 없어 모두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던 법안들이다.

그러나 회의소법·한우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반대하는 민주유공자법과 함께 상정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이들 법안까지 모두 거부권 행사 범주에 포함됐다. 법안 내용은 고려되지 않고 오로지 민주당이 국회에 상정한 자체가 반대 이유가 되다보니 여당 법안까지 거부하는 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회의에 참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여당 의원 중 일부는 야당 의원들에게 "당 방침 때문에 표결에 참여 못한다"면서, 두 법안의 찬성 표결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거부권 제안을 받자마자 다음 날 바로 정부·여당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간호사들이 간호법 촉구 기자회견이 끝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3.5.16.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간호사들이 간호법 촉구 기자회견이 끝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3.5.16. 연합뉴스

대통령이 공약하고 셀프 거부하고 재발의까지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거부권 행사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간호법 제정안이다. 간호법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과 처우 개선 등을 규정한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직역단체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자, 이들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셈이다. 그러나 당시 간호법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은 대선 공약이 아니라고 즉각 반박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2022년 1월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할 당시 간호법에 대해 "의원님들께 잘 부탁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윤 대통령 뒤로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라는 펼침막이 걸린 사진 등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다만 간호법의 상황은 최근 완전히 반전됐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파업 장기화 때문이다. 의료 공백으로 간호사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높아지면서 정부·여당이 먼저 나서서 1년 만에 거부한 간호사법 제정을 재추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법안 거부로 수많은 사회 갈등 비용을 지불하고 1년 여만에 다시 추진하는 상황을 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하와이 주지사 부부 등 영접 인사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7.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하와이 주지사 부부 등 영접 인사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7.9. 연합뉴스

본인·가족 관련 특검법도 거부하며 사적 남용

윤 대통령이 최대한 자제해서 사용해야 하는 거부권이 사적으로 남용되고 있는 점은 가장 문제다. 대통령 자신이나 가족, 측근의 범죄와 연관된 거부권은 사용해서도 안 되고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신중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을 두고 본인은 물론 배우자인 김건희 씨까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음에도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던 윤 대통령의 과거 대선 후보 시절 발언을 무색케하는 행보다.

지난 1월 김건희 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특검법의 경우, 법원에 제출한 검찰 의견서에 최은순·김건희 모녀가 23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내용이 있음에도, 단 하루 만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가족 비리 수사를 막은 대통령이 됐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나 설명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국무총리,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4. 07.16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국무총리,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4. 07.16 연합뉴스

75세 총리 방패막이 삼아 도의적 책임도 회피

아울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식 자체도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4월 양곡관리법과 간호사법을 거부할 당시 고위 당정협의회가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 본인이 국무회의에서 국민들에게 거부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 뒤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다. 본인이 나서는 경우가 없다.

지난해 11월 노란봉투법 및 방송3법(3~6호) 거부권 행사부터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열어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 대통령이 사후에 재가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75세 국무총리를 '방패막이'처럼 세워 자신에게 오는 정치적 책임을 최소화하는 모습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혹한의 겨울에 눈물을 흘리며 오체투지를 하고 대통령에게 10분 만이라도 만나주라고 호소했지만, 윤 대통령은 일절 대화도 없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에도 총대를 멘 한 총리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고, 대통령은 사후 재가만 하며 뒤로 숨었다.

지금 속도면 이승만 45회 기록도 넘을 듯

윤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12년 장기 독재한 이승만의 거부권 행사 기록 45회(역대 1위)도 얼마든지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임기 1826일 중 이날까지 830일째(45.5%)를 마쳤고, 이 기간 21개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탄핵·하야 및 유고 사태가 없다는 가정하에 남은 임기를 토대로 임기 말까지 거부권 행사 횟수를 추산해보면 임기 중 약 46.2회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이승만의 45회보다 많은 숫자다.

다만 이는 단일 법안을 가정한 것이므로, 법안을 복수로 거부하는 경우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승만의 기록을 더 빨리 뛰어넘을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규탄 야당·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채해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4.5.21.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규탄 야당·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채해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4.5.21. 연합뉴스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12년 독재자의 거부권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오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로 무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의 일상화로 피폐해진 정치의 단면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의 반성은 없어 보인다.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21번째 거부권 재가 사실을 밝힌 뒤, "사회적 공감대가 없는 야당의 법안 처리로 또다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거부권 행사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그러면서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이 위헌이나 위법 소지가 있는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건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정한 국회의 권한을 이렇게까지 무너뜨리는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자'라는 수식어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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