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시절 목숨 걸고 노동운동했던 김문수

YS 따라 호랑이 굴 갔다가 스스로 호랑이가

인정투쟁 이은 강자동일시 "나 김문순대…"

"나 노동부장관인데…" 어록 나오지 않으려면?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반노동이 뭔지 좀 묻고 싶습니다… 제가 노조 출신이고, 제 아내도 노조 출신이고, 우리 형님도 노조 출신이고…. 노동약자 보호에 중점을…, 노사정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노동부장관 후보로 지명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반노동적 성향이란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반응한 내용이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김 후보자 지명의 근거로 “입법부, 행정부를 두루 경험한 후보자야말로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노동 개혁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적임자”라 했다.

1970~80년대 박정희, 전두환 군부 정권 아래서의 노동운동, 그것도 민주노동운동은 거의 ‘간첩’ 취급을 받았다. 그러니 당시에 노조 운동을 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학력을 속이고) 노동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기득권의 과감한 포기를 넘어 자칫 (감옥은 물론)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엄중한 일이었다. 당시에 시대를 앞선 대학생들이 “(한자로 쓰인 근로기준법을 보며)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던 전태일 열사와 ‘친구’가 되어 스스로 노동자가 되고 노조 활동을 하고 노조 위원장까지 했던 사실 자체는 결코 감출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그 용기와 결단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정신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지키며 사는가 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소신을 총체적 삶 속에 잘 녹여내며 사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터!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30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남양주소방서에서 자신의 전화에 대해 해명한 뒤 오윤석 소방위(왼쪽)의 손을 잡고 있다. 남양주소방서의 오윤석 소방위와 윤경선 소방교는 지난 19일 김 지사의 전화를 장난전화로 판단해 응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문책성 전보조치를 당했다가 김 지사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지난 29일 원대 복귀했다. 2011.12.30.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30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남양주소방서에서 자신의 전화에 대해 해명한 뒤 오윤석 소방위(왼쪽)의 손을 잡고 있다. 남양주소방서의 오윤석 소방위와 윤경선 소방교는 지난 19일 김 지사의 전화를 장난전화로 판단해 응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문책성 전보조치를 당했다가 김 지사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지난 29일 원대 복귀했다. 2011.12.30.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문수는 순대’라는 별명 얻은 웃픈 119 갑질 해프닝

그러나 김문수는 그가 투쟁하며 맞서 싸웠던 정치세력인 극우보수 정당으로 ‘넘어갔고’, 거기서 국회의원을 3번이나 했으며 경기도지사도 2번이나 했다. 그 뒤엔 태극기부대나 전광훈 류의 극우 유튜버 활동도 했다. 그런 그의 ‘180도 바뀐’ 행보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지만, ‘순대’라는 별명까지 얻은 일화는 더 서글픈 코미디다. 2011년 12월, 당시 경기도지사 김문수는 남양주 119에 긴급 전화를 걸었다.

“네.” (당직자가 받았다.)

“도지사 김문숩니다.”

“예, 소방섭니다. 말씀하세요.”

“경기도지사 김문숩니다. 여보세요?” (도지사처럼 관등성명을 대야 하는데, 이상해서 다시 한 번!)

“…”

“경기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당직자가 ‘아, 도지사님이세요? 도지사님께서 직접 전화까지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충성!’ 이런 식의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김 지사가 크게 당황했다. 속으로 자존심이 상한 김 지사가 다시 관등성명을 밝혔다.) 

“예예.” (이 정도의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닌데, 당직자는 ‘장난전화에 대응하듯’ 무미건조하게 응했다.)

“어~~? 아니, 지금 내가 도지사라는데 그게 안 들려요?” (당장 당신의 관등성명을 대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당직자 반응은 ‘완전’ 뜻밖이었다.)

“선생님, 무슨 일 때문에 여기에 전화를 하셨는데요? 소방서 119에 지금 ‘긴급 전화’로 하셨잖아요?” (당직자는 매뉴얼대로 응했다. 도지사란 지위는 ‘긴급전화 119’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

아마 이 말에 김 지사는 ‘내가 경기도지사 김문순데, 나를 뭘로 보고 이렇게 응대하는 거야?’라고 ‘격노’했을 것이다. 해당 직원은 나중에 인사 불이익 조치까지 당했다 했다. (이 문제가 언론 보도로 ‘이상하게’ 돌아가자 김 지사는 급히 해당 소방서를 찾아 ‘화해’했고 인사조치도 원상복구했다 한다. 그러나 그걸로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른바 김문수 도지사의 ‘119 갑질’! “내가 경기도지사 김문순데…”에서 ‘순대’ 별명까지 나오게 된 경위다.

줄 잘 서서 국회의원도 세 번 한 김문수의 화려한 막말 잔치

하기사 ‘대통령실 전화’ 하나로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도 왜곡되고, (상부 지시로) 시가(時價) 수천 억 원에 이르는 마약(76킬로그램) 적발 수사도 망가질 정도이니, ‘도지사 전화’라면 그 정도는 아니라도 최소한 ‘관등성명’이라도 정확히 대며 ‘도지사 요청’에 잘 응했으면 좋았을 터! 또, 김 지사는 2020년 8월, 한창 코로나가 창궐할 때도 지하철역에서 (노인과 함께 가던 중) 코로나 검사와 자가격리 위반으로 일선 경찰이 보건소로 연행하려 하자 소란 도중에 “내가 김문순데…” “내가 국회의원 세 번 했어” 등의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흔히 한국 사회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비교적 줄을 잘 섰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여기서 말하는 ‘줄’이란 미국의 후광, 성공한 군사반란, 우익 보수의 계승, 그리고 검찰 권력의 네트워크로 요약된다. (혈연, 지연, 학연도 ‘줄’은 줄이다.) 그간 김문수의 ‘줄 서기’ 행보를 찬찬히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다스(DAS)’가 누구 꺼면 어떤데…”, “세월호처럼 저렇게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물러가라!”, “박근혜의 한과 저주, 이거 죄 없이 감옥 가 있는 거”, “좌익이 완전히 청와대를 점거해”, “문재인 이거는 당장 총살감” 등, ‘노조 출신’인 과거의 그를 아는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삶의 궤적을 꾸준히 남겼다.

게다가 만일 그에게 노동부장관 자리까지 올 줄 알았다면 평소에 그는 노동과 관련해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고 분별력을 가질 걸, 하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간 그의 발언이나 태도는 그가 노동부장관, 아니, 보통시민의 자격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품게 하기 때문! 일례로, “노조는 머리부터 세탁해야 한다.” “쌍용차노조는 자살 특공대” “민노총은 (북한) 김정은의 기쁨조” “병원의 낮은 경쟁력은 노조 때문” “화물연대 자체가 바로 북한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아” 등의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2022년 10월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직후 그는 “노란봉투법? 소유권 침해는 공산주의” “(고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 등 극우 발언을 예사로 했다. 이 모두는 한마디로, 노조 부정 논리, 대화 불가 논리, 적대 척결 논리, 극단적 흑백 논리다. 대한민국 헌법 33조에 나오는 노동3권(단결권, 교섭권, 행동권)도 정면 부정한다. 어불성설!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 ‘학생운동권의 황태자’ ‘노조 출신’ ‘노동운동의 대부’ 출신이 이런 ‘위헌적’ 논리와 철학을 갖게 된 경위도 심각한 의문이지만, 이런 철학을 가진 이가 민주공화국 노동부장관 후보라니 더욱 놀랍다. ‘이중의 미스테리’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1일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고용노동지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4.8.1. 연합뉴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1일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고용노동지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4.8.1. 연합뉴스

변절자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 “70~80년대 노동운동의 철학적 기반은 무엇이었나?”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단순히 개인-인간적 차원에서 김문수의 ‘변절’을 비난하고 한탄하는 정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성찰을 하고자 한다면 어떤 점을 깊이 살펴야 할까? 내가 보기에 ‘이중의 미스테리’를 가진 김문수 노동부장관 후보는 민주진보 진영의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첫째, 과연 1970~80년대의 노조운동 내지 노동운동은 어떤 논리와 철학 위에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한 전태일 열사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그 유언에 응답하기 위해 수많은 양심적이고도 용감한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우하기보다 기계나 그 부품 취급을 했고 장시간, 저임금, 무권리 노동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경찰, 검찰, 보안사, 치안본부, 중앙정보부(안기부, 국정원) 등은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노조나 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여차하면 조직 사건들이 터졌고 걸핏하면 ‘친북 공작단’ 같은 사건으로 수많은 이들이 고문과 옥살이를 당해야 했다.

그런 조건 속에서 노조나 노동운동은 ‘노동해방’과 ‘계급철폐’는커녕 헌법상의 단결권과 교섭권, 행동권(파업, 농성 등)을 지켜내기에도 버거웠다. 그러기에 노동운동은 대체로 노조 인정이나 임금인상, 복리향상 투쟁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실은 노조 하나 만드는 것도 ‘목숨’을 걸 정도였다. 법은 멀고 폭력은 가까웠다. 골방 세미나에서 이론적으로 중요시된 ‘노동해방’이나 ‘사회 혁명’ 같은 것은 이런 현실 앞에 언감생심! 마침내 한국 자본주의는 고율의 착취도를 기초로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등 ‘3저 호황’ 조건과 맞물려) 1980년대 후반 이후 고도성장을 달성하는데, 바로 그런 물적 토대를 기초로 서양과 유사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역으로, ‘노동해방’을 마음속에서나마 상상하던 모든 노동운동 세력까지 체제 속으로 통합해 낼 물적 토대였다. 노동의 생산성이 (자본과 권력을 매개로) 노동의 순치성을 드높이는 역설!

결국,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전태일 열사의 유언은 여전히 허공에 떠돌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회운동을 하건, 그 내용과 방향이 얼마나 건강하고 바른 것인지에 대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해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병권의 자본 강의>는 그 출발점으로 좋은 텍스트다). 전태일의 유언을 180도 배신하지 않으려면!

혼자만 인간다운 삶 찾아 호랑이가 된 변절자들

둘째, 그토록 엄혹하던 시절에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와 결단으로 노동운동에 발을 담갔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180도 전향’을 한 뒤에 그저 (부끄러운 마음에) 개인적으로 ‘조용히’ 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반대편의 앞잡이가 되어 목소리를 최대한 크게 하는 식으로 변신해 갔는가, 하는 문제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이런 문제 앞에 “그것은 당사자의 성격 문제”라고 치부하고 만다. 물론, 개인적 성향이나 성격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상호작용일 것이다. 다양한 노동운동가들 중엔 실로 다양한 철학과 논리가 있겠지만, 가장 공통된 철학 내지 구호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점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현실은 냉혹하다. 학습하고 조직하고 투쟁하고 외치지만 자본과 국가의 체계적 폭력 앞에 지치고 또 지친다. 작은 승리의 순간도 있지만 큰 패배의 시간이 훨씬 길고 더 깊다. 그런 현실 앞에 대체로 좌절하고 절망, 포기한다. 개인적, 집단적 트라우마가 심신을 덮친다. 깊은 패배의 슬픔 속에 파묻힌 노동운동가,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칠전팔기)하다 10년 이상 세월을 보내버린 노동운동가, 그 마음 깊은 곳에선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심리가 싹터 오른다. ‘나도, 우리도 힘센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단 힘센 자 옆에 줄을 잘 서야 한다!’ 이게 바로 ‘강자 동일시’ 심리 구조다. 김영삼이 그랬으며 김지하가 그랬고 김문수가 그랬다. (사실, 그 원조는 일본군에서 광복군으로, 남로당에서 공화당으로 180도 전향한 박정희다.)

김문수는 (1990년 1월, ‘3당 합당’을 이끈) 김영삼을 흉내 내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우익 보수 정당)로’ 갔다가 스스로 호랑이가 된 꼴이다. 김문수는 또 (1991년 4월, 죽음을 불사한 대학생들의 투쟁을 ‘죽음의 굿판’이라 한) 김지하를 흉내 내어 세월호 진실 규명 투쟁을 ‘죽음의 굿판’이라 낙인찍었다. ‘강자 동일시’ 심리 구조를 내면화한 자들은 강자 그룹에 줄을 서는 순간 스스로 강자로 착각한다. 그리하여 자신보다 더 강자에게는 굽실거리고 더 약자인 자들 앞에서는 스스로 강자가 된다. 이른바 ‘순대’ 별명을 낳은 김문수의 ‘119 갑질’ 해프닝은 그 전형이다.

‘겸허한 연대’ 향한 개인적, 집단적 성찰이 대안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강자 동일시’ 심리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개인적, 집단적 성찰을 지속해야 한다. ‘겸허한 연대’가 그 대안이다. 다른 편으로 우리는, 그 어떤 사회운동을 하더라도 결코 ‘보상 심리’나 ‘인정 욕망’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또는 ‘아무도 나의 공적을 알아주지 않네…’ 식의 마음이 바로 그런 심리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이런 심리야말로 윤석열식 ‘공정과 상식’이며 이것은 결국 ‘자본의 공정성’과 통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을 예사로 하며, ‘노력과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경영합리화의 방편으로 곧잘 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진정한 혁명가는 (진리, 진실,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에 의해 인도된다”던 체 게바라(1928~1967)의 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사랑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력에 따른 차별적 보상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아이의 학교 성적과 무관하게 따뜻한 밥을 챙겨주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아무도 자신의 헌신이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서운해 하지도 않을 것(선생님이 보건 안 보건 자신이 맡은 청소 구역을 깨끗이 하는 책임감 있는 학생 또는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민중이 진정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기를 바라며 쿠바 혁명 이후 맡았던 장관직을 버린 뒤 볼리비아 혁명에 목숨까지 바친 체 게바라)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결코 ‘119 갑질’ 따위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강자 동일시’에 대한 사랑의 대안은 ‘겸허한 연대’다.

‘쇠귀에 경 읽기’로 끝나선 안 될 노동철학 8개 조(條)

셋째, 과연 2024년 오늘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노동부장관이란 어떤 철학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과 관련해서도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스스로 ‘공정과 상식’의 규칙을 저버린 윤석열 정부에서 새삼 노동의 철학이나 장관의 철학을 말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고 사치스럽다. 이미 윤석열은 김문수와 함께 ‘반노동’의 철학(정확히는, 자본주의 추상노동 비판에 기초한 반노동이 아닌, 자본주의 찬양을 위한 반노동자 철학)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야말로 ‘코드 인사’를 한 셈이다. 유유상종!

그러나 향후 ‘탄핵’ 정국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지만, 그와 무관하게 내가 생각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노동부장관이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시대적 과제는 다음과 같다. ①사람의 노동 없이 우리 삶은 하루도 유지하기 어렵기에 노동자와 농민을 존중한다. ②사회 전체적으로 한편엔 실업, 다른 편엔 과로가 공존하는 현실은 엄청난 모순이기에 ‘모두 일하되 조금씩 일하기’를 통해 일자리를 고루 나눈다. ③모든 직장에서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 ④아이들이 ‘개성 있는 평등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비슷한 대접을 받게 한다. ⑤노동 생산성이 오르면 정리해고를 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삶의 여유를 즐기도록 만든다. ⑥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 저하를 막으려면 주거, 출산, 교육, 의료, 노후 문제를 사회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한다. ⑦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그리고 생명평화는 21세기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시대적 화두다. 이는 단순히 ‘지구온난화’ 내지 ‘탄소 중립’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지방 농어촌부터 서울 수도권에 이르기까지, 일반 가정부터 기업과 직장, 농장, 그리고 국가 기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의로운 전환’에 나서야 한다. ⑧이 모든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토지개혁, 언론개혁, 검찰개혁, 행정개혁, 조세개혁이 필수다.

만일 이런 정도의 철학이 없이 그저 ‘노조 순치’ 내지 ‘노동 약자 보호’ 정도로 노동부장관 내지 국정 수행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배신이다. 또다시 “내가 노동부장관 OOO인데…”라는 어록이 나올지 모른다. 나아가 이런 성찰은 비단 윤석열 정부나 (보수) 국민의힘 정당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차후에 들어설 그 어떤 정당(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등) 역시 이런 비판적 성찰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야말로 ‘용두사미’ 내지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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