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들 '민주화 운동' 찬사와 칭송 일색

그러나 고인의 복합적 삶에 대한 왜곡과 모독

미화도 폄하도 아닌 굴절과 변신 제대로 살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2024.9.22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2024.9.22 연합뉴스

장기표 씨의 죽음에 대한 추모가 뜨겁다. 고인에 대해 '영원한 재야'라는 명예로운 별칭으로 드높이고, 최고의 학벌인 서울대 법대생이면서도 전태일 열사의 분신 등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한 후 수 차례 투옥과 석방, 장기간의 수배 생활을 하며 민주화를 위해 힘썼다고 애도한다.

그러나 어떤 추모는 오히려 모독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한 사람의 생애의 일부 측면만으로 그의 생전의 삶을 단순화할 때 모독은 시작된다. 그것은 먼저 그의 삶에 대한 왜곡과 모독이지만 한 시절을 '대표'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의 죽음이라면 그의 삶에 대한 평가에서의 왜곡은 그가 살던 시대, 그때를 살았던 이들의 한 시절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독은 그와 함께 한 시절을 보냈던 이들뿐만 아니라 고인과 직접적으로 무관한 이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부고의 글, 그 글들이 얘기하는 고인의 삶에 대한 평가는 고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는 이들을 향해 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죽은 이에 대한 미화는 어느 정도 피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장기표라는 이름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 이름이 불러 일으키는 애증과 양면성, 불가해함이 있다.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을 빠뜨리지 않고 함께 볼 때라야 제대로 된 평가와 추모가 나온다.

어느 곳보다 벅찬 추모의 마음이 가득한 조선일보의 추모 기사들은 과연 그 양면성, 복합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신문의 23일자 지면은 '거리의 혁명가' 별세 소식을 1면에서 2면 전면으로 이어지는 장문의 기사로 전하고 사설에서까지 그를 애도한다. 그를 평생 불의에 맞선 인물로,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평생을 독재·불의·특권에 맞서 싸워온 이"라고 쓰고 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보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뒤 돈키호테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서울대생 내란 음모 사건(1971년), 민청학련 사건(1974년), 청계 피복 노조 사건(1977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1980년), 5·3 인천 사태(1986년), 중부지역당 사건(1993년) 주요 시국 사건에 관계되지 않은 적이 없다."

조선일보는 70~90년대, 지금에도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과 냉소를 보내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고인의 생애를 '영웅적인 삶'으로 묘사한다. 서울법대 선후배 사이로 민주화 투쟁을 함께했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세상이 다 취해도 홀로 깨어 있으려는 그 지나친 순수함이 그의 병이요, 죄”라고 했던 생전의 말, 전태일 어머니 고(故) 이소선 여사의 “기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는 첫 사람이자 나에게는 영원한 스승이었다”고 했던 말까지 인용한다.

중앙일보도 사설 <장기표를 보내며 정치권의 특권 의식을 다시 생각한다>라고 애도하며 찬사와 칭송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 중앙일보에게는 '정치권력이 된 진보 진영과 귀족화된 노동계'를 ‘운동권 사쿠라’라고 질타한 것이나 “박근혜에게는 최순실이 한 명이지만 문재인에게는 최순실이 열 명이 될 것”이라 했고, “민주노총은 망국의 제일 적(敵)”이라 비판한 것이 장기표의 삶을 압축한 것으로 비쳤던 듯하다. '특권에 맞선 전사'로 그를 부르면서 그 특권의 화신으로 운동권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지목한다.  

조선일보가, 또 조선일보와 인식과 사고를 공유하는 이들이 장기표의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이 바로 이와 같은 식이다. 장기표라는 인물의 생애의 한 부분, 특히 그것은 대척점에 섰다고 볼 수 있는 두 부분 중의 한쪽 면으로써 전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두 부분 중의 어느 한쪽을 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공과(功過)의 양면, 명암의 양면을 균형 잡히게 봐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삶이든 그 생애에는 줄기와 본령이 있고 가지와 잎사귀가 있으며 근간이 있고 말단이 있다. 어떤 것은 본령인 반면 그 본령의 그림자와 같은 것, 복제물인 게 있다. 장기표의 삶의 '특수성'은 무엇보다 그 둘 간의 거리가 매우 컸다는 것에 있다. 이는 단지 차이의 크기의 양적 문제가 아니라 단절적인 차원이라는 질적인 문제다.  

민주화 운동 동지이자 후배였던 장영달 전 의원이 비통한 심정을 담아 쓴 글은 “그토록 숱한 고난을 앞장서서 실천하던 민주투사 장기표가 어찌하여 수구 반동세력에 편승하게 되었는지가 가장 속 뒤집어지는 부분이다”라고, “그토록 총명하던 투사가 어찌하여 그토록 무지해졌다는 것인지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태극기부대’ 집회에 나와 전광훈 목사 같은 극우 반기독교적 목사와 함께 어울리는 장면을 보며 장 전 의원은 그런 '납득 불가'의 심정이 됐을 법하다.

장기표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은 그의 변신이 극적인 반전, 전향이라기보다는 '몰락'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것은 '장기표'에서 '장기표 아닌 것'으로의 변신이었고, 변신이라기보다는 추락이었고, 변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포기'였다. 그가 감당했던 한낮의 땡볕의 시간이 너무 뜨겁고 길었던 것인가. 아니면 혹한을 견디다 몸보다 정신이 먼저 무너졌던 것인가.

그는 삶의 마지막 몇 년간에 특권과의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민주화운동 이력 인사들의 몇몇이 권력의 자리에 들어간 것을 '특권'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가 하나의 특권에서 다른 특권으로, 무엇보다 특권의 본산으로 들어가려 문을 두드렸던 것, 그리고 “국민소득이 3만 5000달러인데도 다들 불행하다고 한다. 과도한 욕심, 과도한 소비로 환경이 파괴되고, 기후 재앙이 오고. 코로나 팬데믹이 이걸 경고한 건데 우리는 다 잊고 다시 바보들의 행진을 하고 있다”고 했던 그가 과도한 욕심의 발원지가 주로 어디인가를 몰랐다면 그것은 '그토록 총명했던' 장기표의 불행이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의 행로를 변신이라고 하든 몰락이라고 하든 그의 변화는 자신의 삶의 뿌리에 대한 부정인 것으로 인해 그의 불행인 것과 함께 자신의 시대, 그와 함께 그의 시대를 통과했던 많은 이들에 대한 부정, 그들의 불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기표의 부고를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이들 중의 한 명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고 한다. 김 장관이 고인에 대해 신속하게도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고 밝힌 것에서도 그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의 과거 행적은 많은 부분 겹친다는 점에서, 장기표에 대해 '영원한 재야'라고 부르듯 ‘노동운동의 대부’라는 한때의 영예로운 칭호를 김문수가 지금에도 여전히 누리고 있는 것과도 겹친다. 김문수가 “노조는 머리부터 세탁해야 한다”라든가 “쌍용차노조는 자살 특공대” “민노총은 (북한) 김정은의 기쁨조” “화물연대 자체가 바로 북한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아” “노란봉투법? 소유권 침해는 공산주의” “(고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 등 극우 발언을 쏟아내는, 반(反)노동 정도가 아닌 상식 이하, 양식 미달의 사고를 보는 것에서 갖게 되는 당혹감, 불가해함과도 겹친다.

한겨레는 고인에 대해 ‘시대와 불화’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가 불화한 것은 시대였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이었는가.

어느 쪽이든 간에 그를 떠나보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삶을 미화도 폄하도 아닌 그 비극성과 수수께끼를 제대로 풀어보는 것이다. 그의 굴절과 유전(流轉)을 그 개인의 삶을 떠나 그 같은 '특별한' 삶의 행로는 무엇에서 비롯됐는지에 대해 해명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장기표에 대한 찬사로써 실은 그를 모독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이며, 그와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수많은 이들을 모독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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