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결집하며 힘을 키우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

소수자·이민자를 혐오하고 폭력을 선동한 부메랑

더욱더 걱정되는 트럼프 집권 2기의 ‘위대한 미국’

궁지 몰려 사퇴한 바이든과 불투명한 민주당 상황

바이든 기대 꺾이고 트럼프 부활한 것의 평가 필요

‘제노사이드 조’ 벗어나며 반트럼프 희망 제시 중요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은 놀랍게도 트럼프를 그토록 싫어하던 이들까지 트럼프의 생명과 안전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총에 맞은 사람이 누구든 살아남고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미국의 진보적 법철학자이며 사상가인 마사 누스바움은 아무리 반동적이고 악랄한 가해자라 하더라도 인간으로 존중할 필요를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를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 그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우리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는 일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정치적 폭력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이것은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틀렸다. 이제 트럼프 세력과 지지자들은 더욱 결집하고 극단화할 것이다. 과거 또다른 미국의 공화당 소속 강경 우파 대통령 레이건 암살 시도가 그의 권력 토대를 더 공고하게 했던 것처럼 암살범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 최고의 선물을 줬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대선 유세장에서 총격을 받은 뒤 비밀경호국 요원들에 둘러싸인 채 손을 흔들고 있다. 2024. 07. 13.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대선 유세장에서 총격을 받은 뒤 비밀경호국 요원들에 둘러싸인 채 손을 흔들고 있다. 2024. 07. 13. [AP=연합뉴스]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트럼프를 반드시 물리쳐야 할 파시스트로 악마화함으로써 테러를 유도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우파 정치인의 잘못된 행태에 분노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제거하자고 선동하는 것과 다르다.

정말로 상대를 혐오하고 악마화하며 폭력을 선동한 것은 트럼프였다. 특히 트럼프는 성소수자, 이민자, 무슬림을 악마화해 왔다. 이번 피격 시점에도 트럼프는 "수많은 이민자가 국경을 넘어와 미국을 더럽히고 있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던 중이었다. 트럼프의 논리는 항상 똑같다. "민주당이 국경을 열어서 피에 굶주린 강간범과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에 들어왔고 살인, 강간, 마약 판매를 하고 있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그들을 모조리 추방해야 한다."

이러한 반이민 선동과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악마화로 지난 트럼프 집권 기간 동안에 린치, 살해당하는 이민자, 무슬림들은 급증했다. 트럼프는 그렇게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는 신나치 그룹과 극우민병대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이번에도 암살범이 공화당원인 백인 남성으로 밝혀졌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건을 반이민 혐오와 폭력 선동에 이용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4년 전 대선에서 패배한 후에는 ‘민주당이 부정 선거를 했다’라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행동'을 촉구했고 그것이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의사당 폭동 사건’을 낳았다. 최근에도 트럼프는 “내가 낙선하면 피바다가 된다”라고 하고 있었다. 트럼프와 매우 가까운 공화당 정치인 마크 로빈슨은 바로 2주 전 연설에서 "죽여라! 어떤 진보주의자라면 끔찍한 소리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죽여야 합니다! 누군가 말할 때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트럼프는 파시스트’라며 반대해 왔던 것인데, 공화당은 이런 비판들에 ‘트럼프 암살 선동’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씌우고 있다. 그리고 암살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트럼프는 “지금 당장 대량 추방”이라는 슬로건과 현수막이 걸려있는 유세장에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추방을 하겠다”라며 더욱더 반이민 혐오 선동을 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4. 07 16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4. 07 16 [AP=연합뉴스]

따라서 국내외 보수언론들이 트럼프가 주먹을 쥐고 흔드는 사진을 '올해 최고의 사진'이라며 추켜세우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그들이 말하듯이 그는 ‘영웅적인 불사조’나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부추긴 혐오와 폭력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결과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제 거리에서 소수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트럼프 지지 극우민병대들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나설 수 있다.

정말 걱정되는 상황이고,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만들 ‘더욱 위대해진 미국’의 실체이다. 주먹을 쥐고 흔드는 쇼맨십으로 이것을 가릴 수 없다. 더구나 이번 암살 시도는 트럼프가 열렬히 옹호해 온 총기 소유 허가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에는 지금 인구보다도 훨씬 많은 3억 9천여만 개의 총기가 풀려있다. 그래서 매년 수백 건의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수백 명이 사망하고 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 중에서도 유독 미국에서 끔찍한 총기 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디언 원주민에 대한 대량 학살을 통해서 세워진 미국의 역사와 폭력의 문화가 바탕에 있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극단적 시장 논리 속에 빈곤, 실업, 소외가 만연한 미국 사회의 현실도 문제를 악화시켜 왔다.

이런 상황에서 불만의 화살을 소수자와 이민자들에게 돌리며 혐오하게 하는 극우파들의 선동은 끔찍한 참극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원 판사들은 오히려 총기 소유와 판매 제한 조처를 폐지했다. 혐오와 편견에 빠져든 사람이 언제든 살상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허용한 셈이다. 지난 대선에서만 전미총기협회(NRA)에서 3,0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은 트럼프는 이것을 막을 생각이 전혀 없다.

 

2019년 8월의 '타임' 표지 - 당시까지 8개월 동안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도시 253개로 가득찼다.  
2019년 8월의 '타임' 표지 - 당시까지 8개월 동안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도시 253개로 가득찼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군사주의적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는 이번에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다”라고 했지만 요인 암살, 정치 테러는 제3세계에서 미국이 적용하고 지지해온 정책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이나 이라크 등에서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던 시기에 미국 국내에서도 총기 사고가 늘어난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지금도 미국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대량 학살과 인종청소를 지지하며 돕고 있다. 이번에 트럼프는 귀가 찢어졌지만,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매일 수십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시민과 어린이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팔다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죽어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어떻게 암살범의 총알이 트럼프의 머리를 살짝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분석과 감탄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어떻게 이스라엘군의 폭탄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정확하게 폭격해서 10개월 동안 4만 명이나 학살할 수 있었는지, 왜 무고한 팔레스타인 어린이 2만여 명이 죽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서방 정권들과 주류언론들은 팔레스타인에서 폭격과 학살의 끔찍한 광경에는 별로 보이지 않던 충격, 관심, 걱정, 연민을 트럼프를 향해서만 쏟아냈다.

그러면서 바이든, 트럼프, 민주당, 공화당 모두 ‘우리는 모든 정치적 폭력을 반대한다’라고 합창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도 “끔찍한 트럼프 암살 시도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극단적인 유체 이탈의 장면들이야말로 정말로 ‘충격’적이다.

결국, 이번 트럼프 암살 시도는 미국 사회와 역사가 쌓아 온 모순 속에서 잉태됐고, 트럼프 자신이 부추긴 혐오와 폭력 속에서 불거진 사건인 셈이다. 그럼에도 암살 사건이 터지자마자 전문가들은 ‘이제 대선은 트럼프의 승리’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트럼프는 이 사건을 대선 승리의 카드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더욱 결집했고 자신감도 높아졌다.

 

트럼프가 어떻게 암살범의 총알을 피했는지 분석하고 감탄하는 '조선일보' - 이런 언론들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어떻게 이스라엘군의 폭탄을 피하지 못하고 죽어갔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트럼프가 어떻게 암살범의 총알을 피했는지 분석하고 감탄하는 '조선일보' - 이런 언론들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어떻게 이스라엘군의 폭탄을 피하지 못하고 죽어갔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반면, 이미 TV 토론에서 고령과 말실수 등으로 코너에 몰려있던 민주당 바이든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민주당의 주요 리더와 고액 후원자들, 지지자들까지 모두 사퇴를 압박하는 가운데, 결국 바이든은 후보를 사퇴했다. 이제 누가 바이든을 대신해서 민주당의 후보가 될 것인지가 주목받고 있고, 현재로서는 바이든의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가장 유력하다.  

다만 누가 후보가 되든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사실 4년 전에 트럼프를 꺾고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만 해도 기대감은 컸다. 트럼프가 망쳐놓은 것들을 되돌려 놓는 바이든의 조치들은 환영과 박수를 받았다. 특히 바이든이 제시한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은 루즈벨트의 뉴딜과 비교되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가 상원 예산위원장이 되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같은 청년 여성 의원들이 부각되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지난 4년간 핵심 정책과 법안들은 지지부진했고, 사회복지 예산안은 계속 깎이다가 절반이 됐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계속 추락했고, 대선 패배 후 사라지는 듯하던 트럼프는 이렇게 다시 부활했다.

바이든 정부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조건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었다. 트럼프가 임명해 놓은 자들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과 다수당으로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계속 바이든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진보적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민주당 주류는 월스트리트와 대기업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이어서 또다시 보수적 압력에 타협하여 이민자를 추방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과 포위 속에 냉전적 경쟁에 매달렸다. 무엇보다 작년 연말부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서 대량 학살과 인종청소를 시작했을 때, 바이든은 네타냐후의 전쟁범죄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점거 농성이 들불처럼 번지는 상황에서도 바이든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그는 ‘제노사이드 조’라는 최악의 악명을 얻었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대학생과 청년들, 유색인과 아랍계 미국인, 무슬림 속에서 급속히 추락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트럼프가 싫어도 제노사이드 조에게 투표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바이든을 비판하던 미국 반전평화 시위 포스터 - 여론조사에서 미국 18~29세 청년의 70%가 바이든의 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했다. 
바이든을 비판하던 미국 반전평화 시위 포스터 - 여론조사에서 미국 18~29세 청년의 70%가 바이든의 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했다. 

그렇다고 민주당 밖에서 의미있는 제3의 진보적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은 당장 현실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다가오는 속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는 딜레마는 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TV 토론 이후의 바이든 사퇴 논란과 트럼프 암살 시도가 낳은 혼란 속에서 마침내 바이든이 사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난 셈이다.

이것은 미국에서 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회일 수 있다. 미국 사회에는 트럼프 집권 4년을 직접 겪으면서 형성된 강력한 반트럼프 여론과 세력이 존재한다. 트럼프를 거부하는 여론이 언제나 절반에 달한다. 필요한 것은 미국 사회의 절반에 달하는 이들을 묶어 세울 구심점이었다. 바이든은 그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

단지 그가 너무 나이가 많고 기력이 없고 말을 더듬어서가 아니었다. 바이든으로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 반이민 정책을 막고 싶은 사람들, 이스라엘의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들, 더 정의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미국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었다. 이제 바이든이 물러난 자리에 그 희망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우리 모두에게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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