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협상자 선정에 흥분하는 정부와 여당

수익성과 세부 조건 담길 본계약 더 중요

‘덤핑’ 아니라지만 저가 수주 논란은 여전

수주 욕심에 불리한 요구 수용 가능성도

뒷말 나오지 않게 투명한 정보 공개 필수

“수주 자체가 목적일 순 없고 수익성이 관건이겠지요. 장기간의 사업 관리에서 발생할 위험을 모두 고려하고도 남는 장사가 되도록 ‘좋은 가격’으로 낙찰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종갑 전 한국전력 사장이 원전 수출과 관련해 두 달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인 그는 한국전력 사장 시절 해외 원전 수주전을 진두지휘했던 전문가다. 그의 글은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체코 원전 건설 사업에도 해당하는 조언이다.

 

체코의 신규 원전 예정부지인 두코바니 전경 [대우건설 제공] 연합뉴스
체코의 신규 원전 예정부지인 두코바니 전경 [대우건설 제공] 연합뉴스

한국, 24조 규모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17일(현지시간) 체코 신규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진행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다. 일단 수주부터 해야 한다는 욕심에 너무 낮은 가격이나 파격적 조건의 자금 지원 같은 사족이 붙으면 ‘겉으로는 남지만 속으로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수주액이 천문학적이라 한국 원전 산업을 발전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는 논리에 밀려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원전 기업들 배만 불리고 국민 세금을 낭비하게 된다. 정부는 본계약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익성 등 중요한 사안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외신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체코 정부는 17일 각료회의를 열고 한수원을 자국 신규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본계약이 체결되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에 역대 두 번째 원전 수출로 기록될 것이다. 원전 선진국 프랑스가 있는 유럽에서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한 것도 최초다. 체코 정부에 따르면 수주액은 1기당 약 12조 원, 총 2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최종 금액은 협상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

한수원, 내년 3월까지 발주자와 본계약 협상

한수원은 최종 계약 체결을 위해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인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와 단독으로 협상할 지위를 확보했다. 한수원은 세부 협상을 거쳐 내년 3월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체코는 두코바니와 테멜린 지역 원전 단지에 각각 2기씩, 총 4기(각 1.2GW 이하)의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재 두 지역 원전 단지 두 곳에서 각각 4기, 2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데 새로 4기의 원전을 추가로 짓겠다는 것이다. 신규원전은 2029년 공사를 시작해 2036년부터 상업 운전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한수원은 "체코 정부가 향후 테멜린에 추가 원전 2기 건설을 결정하면 두코바니 2기에 이어 테멜린 3·4호기에 대해서도 발주사와 협상을 거친 후 추가로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수원이 주도하는 ‘팀코리아’에는 한국전력 그룹사인 한전기술·한전KPS·한전원자력연료와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 민간 기업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체코 원전 건설 사업 수주전에는 한수원 외에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참여했다. 웨스팅하우스가 먼저 탈락했고 EDF과 양자 대결에서 한수원이 승리했다. 한수원 측은 EDF보다 우수한 가격 경쟁력과 계획 기간 안에 원전을 완공하는 우수한 공기 관리 능력을 압축한 ‘온 타임 워딘 버짓’ 전략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을 바탕으로 체코 측 요구에 따라 설비용량을 1.4GW(기가와트)에서 1.0GW로 조정한 APR1000 노형의 원전을 공급할 방침이다.

 

  체코 원전 건설 지역. 연합뉴스
  체코 원전 건설 지역. 연합뉴스

당정·재계, 일제히 윤 대통령 세일즈 외교 찬양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와 국민의힘, 재계는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세일즈 외교의 결실이라고 강조했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전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8일 정부종합청사에서 브리핑을 자청해 자신이 대통령 친서를 갖고 체코를 비공개로 방문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를 만난 사실을 알렸다. 윤 대통령이 최근 미국 워싱턴DC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하는 동안 자신을 원전 세일즈 특사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사실상 (체코 원전) 4기 입찰이 (한국과 프랑스의) 2파전으로 굳어진 이후 제가 체코를 3번 다녀왔다”며 “막후에서 치열한 협상과 소통이 있었고 이걸 진두지휘한 것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체코 대통령과 협의하는 와중에 저는 친서를 가지고 프라하에 가서 (피알라 총리와) 산업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저가 수주로 수익성이 낮은 게 아니냐는 물음에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사업 관리 능력에 기반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는 부분이라 ‘덤핑’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답했다. 배석한 황주호 한수원 사장도 “체코 측이 우선 짓기로 한 원전 2기의 재원을 체코 정부 자체적으로 조달할 계획이고 한국 측에 별도의 금융지원 조건을 내건 사실이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산업 활성화 노력을 찬양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2030년 원전 10기 수출 달성 및 원전 산업 활성화를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정부의 망국적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고사 위기에 놓였던 국내 원전 산업이 이번 수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도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 확보” “우리 기업과 이를 지원한 정부가 하나가 돼 이뤄낸 결실” “우리 기술력과 건설 능력, 정부의 전방위 외교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팀코리아의 쾌거”라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2024.7.18. 연합뉴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2024.7.18. 연합뉴스

본계약 체결까지 ‘산 넘어 산’

하지만 원전 건설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협상의 시작 단계일 뿐이다. 체코 현지 언론들은 한국의 원전 건설단가가 프랑스보다 낮고 정해진 예산 내 적기 시공을 약속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는 우리 정부도 밝힌 내용이다. 실제로 한국이 제시한 원전 건설비는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나토 회의 참석 중에 만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에게 원전 건설 금융지원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이 프랑스와의 수주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거절할 수 없는 가격으로 제안했고 체코와 유럽 노동자들의 우선 채용도 약속했다는 일부 체코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전체 수주액이 아무리 많아도 체코 측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수익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건설 도중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중요한 사안이다.

UAE 바라카 원전 수출 때도 저가 수주·이면계약 논란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UAE 원전 수출 성공을 대대적 홍보를 했으나 저가 수주 의혹과 핵폐기물 처분 보증, 특전사 파병 약속, 100억 달러 규모의 저리 대출 등 이면계약이 폭로되며 논란이 됐다. 지난 2022년 폴란드 정부와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양국 기업 간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을 때도 너무 낮은 건설단가를 제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원전 수출은 막대한 건설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핵폐기물 처리와 원전 사고 위험성 등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국내 원전 산업 발전 측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도 본계약에 실패하는 일이 빈번하게 생기는 것도 변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 2017년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따냈으나 본계약을 포기했다. 영국 정부가 건설 비용을 원전 운영으로 충당하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게 원인이었다. “원전은 수주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정부와 여당, 재계는 “24조 원 수주 잭폿”이라며 흥분만 할 게 아니라 김종갑 전 한국전력 사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첫 해외 수출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의 첫 해외 수출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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