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콰이어트 플레이스’ 파시즘 돌려까기

지구 점령한 ‘귀 큰 괴물’과 사투 벌이는 가족 1, 2편

3편은 괴물들이 지구 습격한 ‘첫째 날’ 그린 프리퀄

교감과 연대, 희생만이 ‘입틀막’ 시대 위협 이긴다

비명과 소리, 언론과 표현은 세상 살아가게 하는 힘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넷플릭스의 젊은 드라마 기획자들은, 성공하는 콘텐츠라면 시작한 지 2분 안에 뭔가를 터뜨려야 한다(시청자들 입에서 ‘What the fuck!이란 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져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된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은 9분이 넘어서야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다. 뭐 그리 늦은 건 아니다. 99분짜리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속도감이다. 영화는 9분이 지나면서부터는 조금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엔 나름 감동도 있다. 역시 영화는 희생의 스토리가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1편(2018년)과 2편(2021년)의 성공에 힘입어 그 프리퀄 형식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스핀오프는 (꼭은 아니지만) 대체로 본편으로 번 돈의 자투리로 만들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규모가 좀 작고 배우들도 톱스타보다는 개성있는 B급 연기자들이 맡는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런 대로 볼 만하거나, 예술성과 스타일이 돋보이는 경우일 때가 종종 있다. 이번 외전을 만든 이가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이다. 사노스키는 ‘피그’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예술영화였다. 그리 대중적인 감독은 아니다. 다만 기획과 제작을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가 했다. 이상한 결합이다. 하이브리드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포스터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포스터

지구 점령한 ‘귀 큰 괴물’과 사투 벌이는 가족 1, 2편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불시에 지구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마구 포식하는 외계 괴물에 대한 얘기이다. 어떤 사람들을 잡아 먹느냐 하면 소리를 내는 사람들, 생명체들, 존재들이다. 이 괴물은 귀가 엄청나게 크고, 발달해 있으며 조그마한 바스락 소리도 감지해 그 발신지(자)를 덮친다. 이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인류는 멸종 직전의 위기로 내몰린다, 까지가 1, 2편의 설정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리와 애벌린 부부(존 크래신스키와 에밀리 브런트)가 딸 리건과 아들 마커스(밀리센트 시몬스와 노아 주프)를 데리고 생존해 내는 이야기이다.

그 와중에 아내 애벌린은 애를 출산하기 직전이다. 애벌린은 1편에서 막내인 보(케이드 우드워드)가 눈앞에서 괴물에게 잡혀 먹히는 걸 지켜봐야 했고 그 상실감에 시달리다 또 한 명의 아이를 낳으려 한다.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울게 돼 있고 그 우렁찬 울음소리는 괴물을 끌어들이게 된다. 애벌린은 과연 어떻게 아이를 낳을 것인가, 또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 까지가 1, 2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번 신작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은 말 그대로 외계의 ‘귀 큰’ 괴물이 지구를 습격한 ‘그 첫 날’의 혼란을 그린다.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무참히 살해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슬기롭고 현명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게 영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스틸컷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스틸컷

‘입틀막’의 파시즘을 은근히 돌려까는 영화 설정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설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말라, 입도 뻥긋 하지 말라,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치도곤을 당할 뿐 아니라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는 애기는,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압되고 있는 지금 세상이 파시즘화 하고 있음을 은근히 ‘돌려까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1편은 2018년에 나왔고 트럼프 집권 중반기의 흉흉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가장 보장되는 미국이지만 트럼프 때 CNN과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 언론들이 트럼프의 탄압 아닌 탄압에 골머리를 싸안고 지내던 때였다. 멕시코 접경지대에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강한 미국, 제일 잘사는 미국을 복원한다는 트럼프의 슬로건은 가장 미국적인 곳이라는 텍사스, 오클라호마, 아칸소, 조지아 등 시골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반 트럼프식 발언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살고 싶으면 조용히 있으라’가 당시 트럼프 때의 시대적 화두였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스틸컷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스틸컷

교감과 연대, 희생만이 ‘입틀막’ 위협 이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영화는 한마디로 ‘입틀막’ 시대에 대한 비판과 냉소, 그 비관주의를 담은 작품이다. 입이 틀어 막혔을 때 사람들은 어떤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가. 소통이 막혔을 때 사람들은 (물리적, 정치적) 괴물로부터 쫓기는 재난 사항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 그 생존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은 말 그대로 이미 첫째 날부터 그 방식이 제시되어 있었다고 얘기하는 작품이다. 그 방법은 바로 교감과 희생이다.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해서 사람들에게서 공감 능력까지 제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어찌 됐든 교감과 연대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사람들이 서로 통하게 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교감하고 소통해서 연대하는 사람들에겐 태산도 맞들만큼 힘이 생긴다. 다만 거기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는 전제조건이 붙긴 하지만.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의 주인공 사미라(루피타 뇽오)는 말기암 환자이다. 흑인여성이다. 그녀의 시한부 삶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그녀는 프로도란 이름의 고양이를 키운다. 생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사미라는 매사에 냉소가 넘친다. 그녀는 어느 날 친절한 간호사의 권유로 공연을 보러 병원 밖 시내에 나갔다가 외계인의 재난 상황에 빠진다.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금방 붕괴된다. 사미라는 로스쿨 유학생이라는 영국인 에릭을 만나 함께 이 위기를 벗어나려 애쓴다.

죽어가는 사미라가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하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한부 환자들은 지구 멸망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것은 아이러니인가 비극인가. 사미라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흐름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오히려 몰살을 피한다. 그녀는 맨해튼 북쪽에 있는 펫시스 피자를 꼭 한 조각 먹어야 하는데 그 펫시스 피자집은 아버지가 연주하던 재즈클럽의 옆집에 있다. 사미라는 죽기 전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피자의 맛을 간직하려 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에서 생존하려 애쓰는 사람은 사미라 같은 유색인종이거나 에릭 같은 외부인이다. 아웃사이더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존재는 고양이 프로도이다. 백인 남성 중심의 와스프(WASP, 화이트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 세상이 붕괴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스틸컷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스틸컷

비명과 소리, 언론과 표현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

사미라가 당초 관람하러 간 공연은 꼭두각시 피노키오 인형극이다. 공연자의 줄에 매달려 마임연기를 하는 인형은 말이 없다. 인형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아버지의 재즈클럽에 도착한 사미라에게 에릭은 소리를 죽인 채 트럼프 마술을 보여 준다. 마임 공연만이 이들에게 남은 문화적 행동이다. 묵음의 공연, 무언의 마술.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소리의 가치가 새삼 중요해진다. 세상의 이치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속시원하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은 비바람이 치는 날, 폐건물에 숨어 든 사미라와 에릭이 번개와 천둥이 치는 것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모습이다. 번개가 번쩍 하면 하나 둘 셋을 세었다가 천둥소리에 맞춰 비명을 지른다. 외계 괴물은 이들의 비명을 천둥소리 때문에 듣지 못한다. 사람들에겐 비명을 지를 권리와 자유가 있다. 비명을 빼앗아가면 안 된다. 사람들이 죽고, 세상이 붕괴하고, 지구가 멸망해 가는 이유는 사람들에게서 비명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명과 소리, 언론과 표현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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