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인류 최초 달 상륙 성공에 얽힌 이야기
케네디 가꾼 열매 닉슨이 따먹은 과정 흥미롭게 그려
전체에 나오는 작은 검은 고양이 역할도 관전 포인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고 특이하며 정치사회적으로 사려가 깊은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에서 주인공 콜 데이비스(채이닝 테이텀)는 아폴로11호를 쏘아 올리기 전 NASA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은 오늘, 한 남자의 약속을 위해 4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지난 10년을 쏟아 부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할 것이다." 콜 데이비스가 말한 '한 남자'는 존 F. 케네디(JFK)이다. 62년 암살당한 비운의 미국 대통령. 그는 1960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미국이 우주 개발에 있어 소련에 뒤졌지만, 자신들이 반드시 달에 첫 발을 딛는 인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1960년대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앞서기도 했던 때이다. 미국 아폴로11호는 1969년 7월에 달에 착륙했고, 닐 암스트롱이 그 첫 발의 주인공이 됐다. 암스트롱의 우주 무선 대화는 이랬다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한 발짝일 뿐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유인 우주선 성공의 열매는 케네디가 아니라 닉슨이 따먹었다. 주인공 켈리 존스(스칼렛 요한슨)의 비서 루비(안나 가르시아)는 일이 잘못될 기미를 보이자 상관인 켈리에게 "이게 다 닉슨하고 일을 한 탓이다"라고 말한다.
실패할 경우 대비한 가짜 영상 만들기 '아르테미스 작전'
실제로 그럴 만한 것이, 켈리는 자칭 백악관 소속이라는 정체불명의 비밀요원 모 버커스(우디 해럴슨)에게 발탁돼, 아폴로11호가 달 착륙 후 영상 전송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플랜B를 만들 것을 명령받았기 때문이다. 달과 똑같은 세트에서 암스트롱으로 분장한 우주비행사 배우가 달 표면을 걸어 다니는 '가짜 영상'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이른바 '아르테미스 작전'이다.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이 아르테미스 음모론의 진상을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실제 그런 작전이 있었는가. 그 작전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 그 음모는 성공했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첫 달 착륙은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는 얘기인가. 얘기는 무겁지만 전개는 경쾌하다. 코믹스러운 면도 있다. 이런 류의 장르영화가 가져 가야 할 흥미로운 요소를 모두 잘 갖추고 있다. 웰 메이드 영화이다.
주인공 켈리 존스가 스카우트된 것은 마케팅 전문가이고 가짜 뉴스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사기꾼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모 버커스가 내린 지령이 추후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한다. 망설이는 그녀에게 남자는 호통치듯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달에 제일 먼저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오! 그 보다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승기를 잡느냐인 것이오!!" 1969년이라면 미국에서 정권이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간 지 채 1년이 안 됐을 때이며 냉전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막바지로 치닫던 때였다. 닉슨이 등소평을 만나 미-중 간 장벽을 깨고 핑퐁외교를 성사시킨 것은 1972년이다. 베트남전은 평화협정 국면에 들어가 있었다. 닉슨이 케네디의 위업을 이어받은 것은 베트남전에 쏠린 반정부 여론을 우주개발 계획의 성공으로 희석시킬 요량도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 버커스 같은 인물로서는 가짜 뉴스라도 시급한 때였다. 영화는 그 시대적 아우라를 보여 주려 애쓴다.
점차 하나로 좁혀져 나가는 대립과 대차와 대조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컨셉트는 한 마디로 '대립'이다. 대치와 대조이다. 미국과 소련이 대비되고, 케네디와 닉슨의 가치가 부딪히며, 진보와 보수가 싸운다. 우주에 대한 꿈과 현실의 이슈가 충돌하고, 종교와 과학, 이상과 현실, 미디어의 거짓과 진실의 가치,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이상적 사회로의 추구가 맞붙는 형국으로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의 사랑과 욕망이 겹쳐지기까지 한다. 과거와 현실은 오버 랩 되는 척, 어느 것이 옳았고 또 옳은지를 놓고 다투는 양상을 보인다. 가장 중요한 대립은 우주 비행 엔지니어가 표방하는 공학의 가치와 광고 마케터가 대신하는 듯이 보이는 인문학의 그것이 맞서는 때이다.
콜과 켈리는 극중 내내 줄곧 반목하며 일을 진행해 나간다. 켈리는 부족한 NASA의 예산을 위해 최고급 명품 시계를 닐 암스트롱 등 비행사에게 채워 PPL에 동원하려 하지만 콜은 그런 건 우주 비행 계획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켈리는 콜에게 "고집스런 성격으로 인류의 소망과 꿈을 짓밟는다"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한 동경을 공유하는 것이며 그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콜이 켈리와 꼭 싸우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미국 의회로부터 5억 달러의 예산을 승인 받기 위해, 케네디와 민주당의 우주개발 계획이야말로 신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며 앞장서서 반대하는 루이지애나 상원의원을 찾아 간다. 콜은 자신의 비행사들이 우주에 나갔다 오면 더욱 더 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며 의원을 설득한다. 우주개발 계획은 신의 위대한 의지를 더욱 더 실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영화 내내 보여지는 대립과 대조, 차이는 이렇게 하나 하나 좁혀져 나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시나리오의 디테일과 그 치밀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트럼프 시대에 대한 우려로도 읽히는 가짜 뉴스 고발
미국 할리우드가 안 그런 척 지난 시절 줄기차게 JFK 시절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어온 이유는, 소위 'JFK 이슈' 혹은 'JFK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현대사를 통틀어 짧았던 그 때의 몇 년이 자신들로서는 최고의 화양연화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록 부르주아적 가치관을 지녔고 획일적인 반공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존 F. 케네디는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다. 그의 동생으로 역시 1968년에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는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들이 내세웠던 정치적 슬로건이 프론티어 정신이었고 미국 사람들, 특히 영화적 지식인들은 이때의 미국이 가장 개혁적이었던 때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프론티어 정치사상의 핵심적 기반은 바로 우주개발 계획이었다. 인류 전체가 위대한 한 걸음을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주개발의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한 후 패닉에 빠져 우주개발을 서두른 미국은 1967년 아폴로 1호 발사 시험과정에서 우주 비행사 세 명 전원이 불에 타 죽는 비극을 겪는다.(데미안 셔젤 감독의 2018년 영화 '퍼스트 맨'에 상세하게 묘사된다.)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주인공 콜은 그 발사 과정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우주개발이 냉전에 휘둘리고 편협한 정치사상에 의해 짓눌려질 때 가짜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포될 수 있는지, 그 위험성을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꽤나 현실적 유의미성을 던져 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사려깊은' 작품이다. 우회적으로 트럼프 시대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족 : 영화에는 초반부터 거의 끝까지 작은 체구의 검은 고양이가 나온다. 이 고양이가 결국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나리오 상 괜히 나오는 존재가 아니다. 고양이가 어떤 일을 해내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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