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잘못이 아니라 김준혁의 표현만 문제 삼아

양문석, 공영운, 박은정만 파헤치는 취재와 보도

족벌 언론이 쟁점화, 그대로 따라가는 '진보' 언론

'객관적 사실 보도'가 낳는 불공정한 결과의 역설

가해자와 강자에 유리…성찰 없는 기계적 양비론

윤석열 정권 심판이 우선이라는 점 분명히 해야

경기도에서 출마한 민주당 김준혁 후보가 과거 유튜브 방송에서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일제와 독재에 부역한 것을 비판하며 “(김활란 여사가) 미군정 시기에 이화여자대 학생들 미군 장교들한테 성상납시키고 그랬잖아”라고 발언한 내용이 총선 막바지에 쟁점 중 하나가 됐다. 아무리 과거의 일이고 유튜브 방송이라는 특성을 감안해도, 김준혁 후보가 일부 부적절한 개념과 감수성 없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도 사과했지만, 그런 부분은 돌아봐야 하고 비판받을 점이 있다. 그러나 김활란 전 총장이 일제와 이승만 독재에 부역한 것도 사실이다. 김활란 전 총장은 일제에 부역해 징병과 징용 등을 독려했고, 이승만 독재 정부에서도 여성들을 동원해 미군 고위 간부들을 접대하는 ‘낙랑클럽’을 운영하는 데 관여했다. 이것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나 미군 방첩대 문서 등을 통해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중에 이화여대의 진보적 학생 활동가들이 김활란의 동상을 철거하려고 시도하고 시위를 벌이는 일이 거듭해서 벌어져 왔다. 한편에서는 엘리트 여성 지도자였던 김활란 전 총장의 이러한 과거는 성착취가 계급, 민족, 젠더의 교차와 결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것을 비판하는 관점과 표현의 적절성을 떠나서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보수적 족벌언론들이 독재자 박정희나 김활란 전 총장의 잘못들은 빼놓고 그것을 비판한 김준혁 후보의 표현만 주로 부각해서 선거에 악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많은 ‘진보’ 언론과 지식인들도 후자만을 지적하는 상황들은 납득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 재산 상위 10위 중에 9명이 국민의힘 쪽이다/ 출처- 뉴시스
국회의원 재산 상위 10위 중에 9명이 국민의힘 쪽이다/ 출처- 뉴시스

요즘 주요 언론들을 살펴보면 총선 후보에 대한 개별적 검증에서는 민주당의 양문석 후보와 공영운 후보, 조국혁신당의 박은정 후보 등에 대해서만 주로 취재와 보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양문석 후보의 편법 대출은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공영운 후보가 자녀에게 고가의 주택을 증여한 과정, 박은정 후보 남편의 변호사 고액 수임료도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이런 '사실'들을 족벌언론들과 종편 방송들은 과장과 왜곡, ‘아니면 말고’도 섞어서 정말로 열심히 정성스럽게 취재하고 보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사회적 쟁점화가 되면 다른 언론들과 한겨레와 경향같은 '진보' 언론들도 따라서 보도하고 있다.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과 쟁점을 ‘공정하게’ 보도하고 비판하는 것이니까 그것 자체는 문제라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총선 국면에서 국민의힘의 개별 후보들을 꼼꼼히 검증하며 어떤 비위나 잘못이 있었는지 취재하고 보도하는 곳은 찾기가 어렵다. <뉴스타파> 정도만이 열심히 탐사 취재해서 보도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오늘날 한국의 언론 지형에서 <뉴스타파>의 보도를 이어서 '받아쓰는' 언론은 별로 없다. 윤석열 정부가 <뉴스타파>를 표적 삼아 극심하게 탄압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처럼 족벌언론들은 오로지 야당 후보 검증과 이슈화만 열심이고, ‘진보’언론은 독자적 검증은 별로 못하면서 주로 이슈화가 되면 그것을 따라서 보도하니,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언론과 방송에서 야당 후보들의 비위나 결함만 주로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재산 상위 10위 중에 9명이나 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어떻게 그런 재산을 모았는지 등은 어느 언론도 제대로 파헤치지 않는 상황 속에 총선이 진행되고 있다.

김건희 일가의 부동산 재산만 253억 원이라는 사실도 주목받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언론 지형 속에서는 더 큰 비위와 투기를 저지른 정치 세력들이 오히려 득을 보게 된다. 이것이 한국 언론의 대표적 신화인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 보도'의 역설적 결과인 셈이다. 

 

김건희 일가의 부동산 재산만 253억 원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화면 갈무리
김건희 일가의 부동산 재산만 253억 원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화면 갈무리

이것은 민주당 조수진 후보가 언론의 충분한 검증 없는 보도에 의해 ‘어떻게 파렴치한 성폭력범들을 변호할 수 있냐’라는 비난 속에 사퇴했지만, 그 후 성폭력 가해자 변호라는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힘 다른 후보들에 대한 보도들은 이어지지 않는 데서도 보여졌다.

총선 국면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 보도’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불공정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진보’ 언론들도 함께하는 상황의 바탕에는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별로 차이가 없으니 둘 다 똑같이 비판해야 한다’라는 ‘기계적 양비론’이 있다. 이러한 프레임은 한겨레와 경향의 지면 편집과 주요 필자들의 글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한겨레 ‘이진순 칼럼’은 “이번 선거는 ‘누가 더 구리고 더러운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비호감의 각축전’이다. …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가 서로를 비방하며 생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모양새”라고 썼다. 강희철 논설위원은 “조국의 내로남불이 오늘의 윤을 만들었다면, 이젠 윤의 내로남불이 조국을 부활시키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서로의 ‘구세주’”이고 “적대적 공생” 관계이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에도 ‘윤석열 정부가 검찰 독재라면 문재인 정부도 적폐 청산한다며 검찰에 의존했고, 종북이라고 낙인찍는 것과 친일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다를 게 없다’는 칼럼이 실렸다.

또, 경향신문의 ‘이대근 칼럼’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나 누가 이기든 “대화 정치가 아니라, 극한적 대결정치가 펼쳐지리라 짐작된다”고 전망하면서 “신구 권력 엘리트들 간의 구원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될 것이다. … 우리는 상호 적대와 혐오에 기반한 정치적 양극화에 지쳤다”는 양비론과 정치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진보 언론을 지배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를 게 없고 적대적 공생이라는 프레임/ 한겨레 기사 화면 갈무리
진보 언론을 지배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를 게 없고 적대적 공생이라는 프레임/ 한겨레 기사 화면 갈무리

이처럼 기계적 양비론의 관점에서 공정을 따지는 태도는 최근 대표적인 ‘친윤, 친검 지식인’ 인 진중권 교수가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라디오 생방송 도중에도 보여줬다. 진중권 교수는 ‘이재명 대표의 막말은 비판하지 않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막말만 비판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이런 방송 못하겠다. … 이건 공정하지 않다”라며 자진 하차를 선언했다.

이처럼 ‘종북 낙인도 문제이고 친일 낙인도 문제이다’, ‘국민의힘도 비판하고 민주당도 비판하겠다’는 태도는 언뜻보면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거나 평평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학살을 당하고 인권을 부정당해 온 것은 ‘종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고, 재벌-언론-검찰 기득권 카르텔과 더 긴밀히 연결된 정치세력은 국민의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분석이 빠진 기계적 양비론은 현실에서 더 큰 역사적 가해자와 사회적 강자를 편들고 돕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박용진 의원처럼 이 시점에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이재명 대표는 "공포"스럽고, 조국 대표는 "불공정의 표본"이고 진보당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심각하다. 이것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강조했던 이유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결코 ‘적대와 혐오에 기반한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 아니다. 

 

공식 선거 운동 시작과 함께 조선일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인터뷰한 박용진 의원/ 조선일보 온라인 헤드라인 화면 갈무리
공식 선거 운동 시작과 함께 조선일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인터뷰한 박용진 의원/ 조선일보 온라인 헤드라인 화면 갈무리

누가 정말로 상대방을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며 '극단적인 적대와 혐오의 정치'를 펼쳐왔는지는 최근 거의 3개월 만에 이재명 대표 살인미수범의 변명문과 최후진술서 등이 공개되면서 더 분명해졌다. 여기서 살인미수범은 자신이 “좌익 판사”와 “사법부 내 종북세력” 때문에 가로막힌 이재명의 사법적 단죄 실패를 보고서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직접 이재명 처단을 결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인간의 외피를 두른 사악한 뱀”의 “대가리를 쳐내”니, 이제 “콜레라균 같은 붉은 무리들을 해체시켜 무력화”시키는 일은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라는 말이다. 이것을 잘 읽어보면 그 표현이 훨씬 더 거칠고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극우 유튜버들이나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자처하는 자유통일당이 하는 주장과는 판박이처럼 똑같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게 공개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진영을 떠나서 거의 어느 주류 언론도 이것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변명문을 왜 공개하지 않느냐’고 지적하던 언론들조차 외면하고 있다. 마치 총선을 앞두고 이 사건을 존재하지 않았던 일처럼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필요한 것은 일부 언론들이 말하는 기계적 ‘양비론’과 허구적 ‘중립과 공정’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이태원 참사의 주범과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립’일 수 없다.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채 상병 유가족 같은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치유받고 속이 풀리는 결과가 반드시 나와야만 한다. 그것은 결코 ‘선거와 투표를 복수와 응징의 수단으로 퇴행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정의를 바로잡고 퇴행을 멈추며 다시 역사를 전진시키는 첫걸음이다. 

 

이재명 악마화와 종북몰이의 극단적 결과를 보여 준 살인미수 정치테러범의 변명문 중에서/ 주기자 라이브 화면 갈무리
이재명 악마화와 종북몰이의 극단적 결과를 보여 준 살인미수 정치테러범의 변명문 중에서/ 주기자 라이브 화면 갈무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