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갈아엎는 4월에 빨갛게 변하는 대기층
토양이 머금은 탄소가 뿜어져 나온다는 증거
농경만이 아니라 '효율성 복음' 자체가 문제
토종 쥐이빨옥수수를 수확했다. 쥐이빨처럼 알이 작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토종 쥐이빨옥수수는 팝콘 옥수수로 사용되는 데 식감과 맛이 좋다. GMO 종자일지도 모르고, 농약의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수입 옥수수와 맛, 영양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 집 농장에서 씨앗을 받은 옥수수알을 마을에 공급해서 마을의 소득작물로 만들어 보려고 마을 이장님과 노력 중이다. 마을에서 심은 옥수수는 아직 수확을 하지 않았지만 첫 시도이니만큼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우리 농장 옥수수를 벤 자리는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일궜다. 나는 밭을 갈면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석유도 사용하지 않는다. 옥수수 뿌리도 캐지 않는다. 그 뿌리가 품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들 그리고 그 미생물과 흙이 품고 있는 탄소를 다시 대기로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얼마 전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을 보면 흙은 대기와 지표식물을 합친 것보다 두세 배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다. 탄소중립은 탄소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해 탄소의 실질 배출량이 0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후 어마어마하게 이미 배출된 탄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올해 우리가 겪은 폭염(9월 중순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덥다!), 폭우, 다행히 올해 우리나라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피해를 주진 않고 있지만 엄청나게 파괴력이 커진 태풍들의 원인은 바로 그 이미 배출된 대기 속 탄소들의 결과물들이다. 그 탄소들을 다시 잡아 가둬야 하고, 그 역할을 흙이 할 수 있고, 할 수 있도록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이 과학적 근거로 제기하는 주장이고, 이미 2015년 파리기후변화 국제회의에서 주목받았던 연구 결과다.
지난 7일 서울특별시 강남 일대에서 '907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열린 집회여서 더욱 관심이 갔다. 이 집회에서 크게 내건 구호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였다. 맞다. 세상을 바꿔 기후재앙으로 가는 길을 돌려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 제목이 있지만, 내가 귀촌해서 토종씨앗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대학교까지 다녔어도 못 배웠다는 사실이다. 탄소를 원래 있던 흙 속에 되돌려 놓으면 많은 기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내가 배우지 못한 사실이다. <대지에 입맞춤을> 다큐멘터리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자료를 통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래 화면에서 보듯 북반구에서 대규모 공업적 경운이 일어나는 4월 말경 엄청난 탄소가 배출됨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 속 빨강색과 보라색은 이산화탄소의 발생이 우려스러운 수준일 때의 색이다.
북반구가 땅을 갈아엎는 4월, 빨갛게 변하는 지구의 대기
지표 30~40센티의 흙을 갈아엎는 대규모 경운이 진행되는 4월에 그 흙이 머금고 있던 탄소가 엄청나게 배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토양에서 작물이 자라면서 광합성을 통해 탄소가 식물로 회수되는 6월에 대기 속 탄소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 식물이 죽고 분해되면 흙 속의 유기물이 되고, 이 유기물이 엄청난 양의 탄소를 저장하게 된다. 또 탄소가 풍부한 이 유기물은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물, 질소, 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영양에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규모 공장식 생산을 위해 무거운 장비로 그 흙을 갈아엎게 되면 탄소를 머금고 있던 유기물은 대기로 노출되고,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 물의 흡수를 어렵게 만들고, 박테리아, 균류, 지렁이 등 토양 속 유기체들의 생존도 어렵게 된다. 지역적으로 땅의 사막화가 이뤄지고,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화학비료와 제초제의 사용이 늘어나게 된다. 이 악순환 속에서 흙 속의 탄소 배출은 더 늘어나고 탄소 흡수는 줄어들게 된다.
이 악순환의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꾸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 그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런 갈증으로 최근에 찾아 읽은 책 <회복력 시대> (제러미 리프킨 저, 민음사 간)는 이 ‘기후재앙 시대’ – 리프킨의 표현으로는 ‘재야생화되는 지구’의 시대 - 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책이었다.
인간의 모든 삶에 파고 든 ‘테일러주의’를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책의 관점에 대해 얘기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은 ‘효율성의 복음’을 멈출 수 있느냐의 질문이 된다. 우리 인간이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서 과연 효율성을 배제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내가 생태친화적 농사를 지으면서 이미 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순환주기가 긴 농사를 효율성의 관점에서 공장식 생산 시스템으로 만들고, 그 폐해로 인해 떨어지는 생산성을 화학 농경으로 높이고, 그래서 망가지는 생태환경을 유전자조작 농경으로 덧칠해 가며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면서 ‘효율성의 복음’은 농경의 모습을 바꿔왔다. 이 와중에 지구 생명체의 젖줄이자 탄소의 저장고인 표토층은 심각하게 유실되었다.
‘효율적’인 농경만이 토양 유실의 주범은 아니다. 이번 ‘907 기후정의행진’이 열린 강남 일대의 대기업들은 ‘효율성의 복음’에 세뇌돼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하는 산업들을 이끌어 온 기업들이고, 그 기업들이 모여있는 강남은 바로 ‘효율성의 복음’이 만들어낸 바벨탑과 같은 곳이다. 리프킨은 ‘효율성의 복음’을 만든 창시자로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를 꼽는다. 찰리 채플린이 나온 <모던타임스> 영화 속에서 사람을 기계의 부품처럼 만드는, 공장 생산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분업시스템인 ‘테일러주의’를 만들어 낸 그 테일러다.
테일러는 기계의 성능에 대해 사용되던 공학 용어였던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인간의 모든 삶에 적용하는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 테일러주의는 가정을 파고들고 학교를 파고들었다.
친일매판세력의 후안무치 작태도 테일러주의가 파괴한 교육 때문
“새로운 교육 방안에서 교육감은 회사의 경영자와 유사했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수법에 대한 자세한 지침을 토대로 표준화된 특정 과제만 수행하는 공장노동자와 유사했다. 지식은 암기한 뒤 시험에서 다시 뱉어 내기 쉽도록 소화할 수 있는 사실의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야 했다. 표준화된 시험과 점수로 성적을 매기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사물의 ‘이유’에 대해 숙고하던 오래된 지적 전통은 밀려나고 그 자리를 거의 복음처럼 수용한 ‘방법’에 대한 최적화가 채웠다. 이렇게 효율성이 성과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되었다.” - <회복력 시대> 38p
‘이유’는 사라지고 ‘방법’만이 남은 세상.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 친일매판세력의 후안무치한 작태들을 보노라면, 혐오와 증오의 언어들이 득세하고, 돈을 버는 세상을 보고 있자면, ‘이유’는 사라지고 ‘방법’에만 능숙한 세상이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렇게 ‘효율성의 복음’을 주입 당하며 성장했는데 어찌 그렇게 안 되겠는가. 또 그런 세상에서 1등을 해온 자들이라면 어찌 더 ‘방법’에 능통하지 않겠는가.
“건강한 토양 한 줌 속에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의 수보다 많은 생물(organisms)이 살고 있다.” - <대지에 입맞춤을> 중
“토양 알갱이 하나에 10억 개의 박테리아가 있을 수 있는데 그중 5퍼센트만 발견되었다.” - <회복력 시대> 98p
“우리 몸속의 4X10의27제곱 개의 수소 원자와 2X10의27제곱 개의 산소 원자 중에는 분명 선대의 인간을 비롯해 지구상 여타 생명체의 몸 안에 있었을 수소와 산소 원자가 있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한 때 우리 몸에 있던 수소와 산소 원자의 일부는 우리 후대의 인간과 동료 생명체의 몸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우리 몸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자율적 주체라기보다는 개방적인 소산 시스템이다… 그래서 우리 몸은 지구 원소를 수용하는 수많은 매개체 중 하나일 뿐이다.” - <회복력 시대> 180~181p
이런 사실들을 접하게 되면 내가 정말로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 중에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모르면서 ‘효율성의 복음’에 취한 꼭두각시가 되어 뭔가를 취사선택해 왔다는 것에 공포심이 들기도 한다. 무식하고 용감한 선무당이 사람잡는 짓을 인류가 해 온 것 같다.
수구세력이 짓눌렀던 곽노현의 회복력 충만한 교육, 다시 볼 수 있을까?
“지구야 그만 변해, 이제 내가 변할게.” 이 역시 ‘907 기후정의행진’에 나왔던 구호 중 하나다. 그렇다. 지금껏 ‘효율성의 복음’에 충만했던 내가 변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효율성의 복음’이 중단되어야 한다. 그때 ‘기후정의행진’에서 보았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10월 16일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선거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는 소식이 반갑다.
그는 ‘사후매수죄’라는 기상천외한 죄목으로 벌을 받을 정도로 효율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지금의 내 관점으로 평가한다면 그의 교육감 시절은 ‘효율성의 복음’으로 폭주하던 대한민국 교육에 브레이크를 걸고 회복력을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곽노현 유죄 판결 이후 공개된 국정원 불법 사찰 공작에서 보듯 ‘효율성의 복음’ 성가를 부르며 축복 받아왔던 수구세력들은 곽노현을 참을 수 없었다. 조용하던 교육감 선거가 곽노현의 등장으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그들의 참을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곽노현이 다시 서울시교육감이 된다면 이번에는 우리 어린 세대들이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할 수 있는 교육을 펼쳐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의 회복력 충만한 철학과 행정 추진력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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