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힌 돌, 굴러온 돌, 상생하는 공동체 프로그램이 관건

신동진 마을활동가
신동진 마을활동가

비가 내린다. 폭우 피해를 걱정한다. 예전 서울에 살 때는 폭우가 내리면 침수되는 촌이 걱정됐는데, 촌에 사는 요즘에는 침수되는 서울이 걱정이다. 2022년에 사망자가 발생했던 반지하집 골목에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촌향도(移村向都)민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이도향촌(移都向村)민인 나는 ‘나의 살던 고향의 반지하 골목’을 걱정하고 있다. 젊은 시절 한 때 반지하에서 살기도 했고, 내가 서울을 떠나기 전 살았고, 현재도 처가가 있는 곳이 바로 2022년 여름 반지하 침수 사망 사건이 났던 관악구이니 나의 향수(鄕愁)와 반지하 거주민에 대한 근심이 서로 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2년 이래 꺾인 60대 이상 연령층의 이도향촌 흐름

<한국도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가구 중 약 96%가 수도권에 몰려있고, 그중 약 66%가 서울에 밀집돼 있다고 한다. 관악구의 경우 전체 가구 중 지하 가구 비율이 8.1%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비록 수도권에 속해 있지만 소멸 위기 지역이기도 한 가평군의 경우 0.2%다. 통계를 보면 대다수의 촌 지역은 다 1% 미만이다. 인구의 51%가 수도권에 몰려 살고, 약 92%가 도시에 몰려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촌의 지하 가구 비율이 1%가 안 된다는 통계 수치는, 땅 밑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죽어 묻히거나 숨는 곳 그리고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상식이 화석처럼 남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얼핏 생각하면 높은 주거비와 치열한 경쟁에 치여 사는 도시의 삶에서 탈출해 촌에서의 삶을 선택하는 귀촌이 많이 늘어날 것 같기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6월 25일 발표된 ‘2023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인구는 전년보다 각각 4.5%, 5.5% 줄었다. 정부의 1년 전 ‘2022년 귀농어·귀촌인 통계’ 발표 때는 귀농·귀촌인구가 각각 12.3%, 15.0% 줄었으니 2023년은 그나마 감소 추세가 완화된 편이다.

 

나는 ‘귀농’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고, ‘귀촌’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예전 글에서 주장한 바 있지만, 위 통계가 전반적인 이도향촌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유지됐던 60대 이상 연령층의 이도향촌 흐름세가 약화된 것도 분명해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그 이유를 ‘도시 고령 취업자 증가’ 그리고 ‘주소 이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농촌 체험(농촌살기, 농막) 수요 증가’가 귀농·귀촌 인구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설명했다.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도시에 생겨서 귀촌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을 보면서 ‘언젠가 서울에 가서 성공을 해서 돌아온다 약속했는데, 세상에 울고 웃다가 바쁘다 보니 꿈에서나 갈 수 있구나’하는 송가인 ‘서울의 달’ 가사가 씁쓸하게 떠오른다.

10년 후 ‘2차 베이비붐’ 세대는 정말 이도향촌 할까?

정부 관계자는 “2차 베이비부머(‘68~‘74년생) 은퇴, 농촌지향 수요 지속 등으로 귀농·귀촌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본다”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정부는 1년 전 2022년 발표 때는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 등 은퇴 연령층 증가, 도시민의 농촌에 대한 관심 증가 등 영향으로 귀농·귀촌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의 은퇴에 기대를 걸었다가 1년 만에 ‘2차 베이비부머(‘68~‘74년생)’ 은퇴로 기대의 대상을 바꿔버렸다.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1963년생이 이미 60살이 넘었어도 이도향촌 하향세가 이어지니 계속 1차 베이비붐 세대의 탈도시가 늘어날 것이라 기대를 걸기 어려웠을 것이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1974년생이 60세가 되려면 아직 10년이 남았으니 귀농·귀촌을 늘려야 하는 담당 부서 입장에서는 꽤 시간을 벌어놓은 셈이다.

그렇다면 향후 10년, 도시 집중 폐해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촌의 재생을 도모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이도향촌의 흐름이 정말 증가할 수 있을까?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저출생, 그리고 2014년부터 ‘지방창생’이라는 지방살리기 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3월 발표된 한국은행 동경사무소의 동향분석 <일본 인구의 도쿄권 집중 현황 및 평가> 자료는 ‘2000년대 들어 도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 재차 심화되면서 지방 쇠퇴 및 인구 감소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보다 심각한 우리나라 청년층 수도권 집중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도쿄권은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고, 오사카권과 나고야권은 정체 상태, 지방권은 2000년대 들어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해당 자료는 도쿄권 인구 집중의 특징으로 ‘진학 및 취업을 위한 15~29세 젊은 층의 도쿄권 이동’, ‘남성보다 높은 여성의 유입 비중’을 들며 ‘일본 정부의 지방 활성화 및 도쿄 집중 시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도화 산업 및 양질의 일자리 집적 등으로 당분간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청년층 특히 여성의 도쿄권 집중은 우리나라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일자리 집적으로 인한 사회적 전입의 증가도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 앞서 살펴 본 우리나라 귀농·귀촌 추세 감소에서 보듯 일자리가 늘어 사회적 전출을 감소시키고 인구 증가를 가속시키고 있는 것도 도쿄권과 우리 수도권이 같은 모양새다. 도쿄권의 인구 비중은 약 30%, 우리나라 수도권은 약 51%다. 이미 일극화가 더 심화된 우리나라에서 일본이 못 이룬 인구 분산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와 관련 나는 최근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추진하고 있는 ‘골드시티’ 사업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사업 이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취지인 ‘상생형 순환주택사업’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발표된 사업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와 SH가 주택 보유 은퇴자에 주택연금 등 연계하여 인구소멸지역에 고품질 주택과 관광‧휴양‧요양‧의료‧교육시설을 조성하고, 전입한 서울시민 등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며, 기존 서울의 주택은 SH가 매입 또는 임대해 청년·신혼부부 등에 공급하는 구조다. 지방의 해당 지자체는 전입자에게 지역 거점시설과 연계한 경제활동과 지역 교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SH ‘골드시티’, 집 소유 은퇴자들 마을 일꾼으로 견인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사업이 서울에 살며 귀향과 귀촌을 꿈꾸지만 경제적 이유로 실행을 하지 못하는 도시민들을 견인하기 위한 고민이 배어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믿음으로 관련 저술을 활발히 하고 있는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책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사상 최대의 부동산 가격 급등을 몸소 체험한 세대’이면서 ‘우리나라의 허약한 복지제도 때문에 부동산을 놓지 않는 세대’다. 그래서 ‘부동산 부자이긴 한데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없는, 은퇴 후 돈 많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세대다. 그래서 마 교수는 주택연금의 사용과 세제 혜택, 그리고 지방 지역사회와의 연계와 의료서비스 확충을 연계하는 사업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비워지게 되는 서울의 주택을 청년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내가 크게 공감했던 마 교수의 제안이 ‘골드시티’ 사업에 참고가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작년 11월 서울시, 강원도, 삼척시와 SH, 강원개발공사가 MOU를 체결하며 사업을 시작했고 앞으로 전국 확대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파적 편견을 버리고 이 사업에 대한 검증과 협력을 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동네에서 공부머리나 일머리가 있는 주민들은 대개 서울로 도시로 가버리고, 그나마 있던 마을 일꾼들도 70·80 어르신이 돼 있는 촌에서 일을 꾸리고 있는 나로서는 귀촌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전국의 다른 마을활동가들도 비슷한 기대를 갖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은 가평군으로부터 ‘청정계곡 하천 유지관리 사업’을 위탁받았다.

이 사업은 과거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지역 주민들이 설치해 놓은 불법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계곡과 하천을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줘 크게 주목받았던 사업의 후속 사업이다. 도시민들이 계곡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는 됐으나 계곡 관리나 지역 주민의 경제 사정은 악화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당 계곡과 하천변 주민들이 직접 하천을 관리하며 소득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경제공동체를 만들어가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6개월간 경기도 생활임금과 4대 보험 그리고 추석상여금이 지급되는 사업으로 처음에 65세 미만으로 함께 할 주민을 구했는데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령 제한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고령화가 심화됐다는 얘기다.

 

'가평군 청정계곡 하천유지관리 사업' 추진 모습.
'가평군 청정계곡 하천유지관리 사업' 추진 모습.
'가평군 청정계곡 하천유지관리 사업' 추진 모습.
'가평군 청정계곡 하천유지관리 사업' 추진 모습.
'가평군 청정계곡 하천유지관리 사업' 추진 모습.
'가평군 청정계곡 하천유지관리 사업' 추진 모습.

박힌 돌, 굴러온 돌, 상생하는 공동체 프로그램 마련이 관건

참여하신 분들이 마을과 계곡 청소며 관리를 잘 해주고 계시지만 이 분들과 소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이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 귀촌인들을 연계해 주고 그분들이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준다면 촌의 재생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사업 초반에 “왜 굴러 온 돌들에게 혜택을 주냐”는 민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 지역 출향민들에게 먼저 사업 참여의 기회를 주거나, 만들어질 ‘골드시티’의 시설과 서비스를 선주민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공동체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면 좋겠다. 특히 의료시설은 귀촌인에게는 물론 현지의 고령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업이 잘 진행돼 서울의 반지하 월셋방에서 눅눅하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이 지상의 주택에서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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