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동주택의 공동체 정신을 구현한 설계

일본의 전통적인 도시주택인 '마치야'에서 착안

공공공간과 주거공간의 자연스런 융합을 시도

한국 판교하우징, 세곡동 임대주택단지도 설계

야마모토 리켄.
야마모토 리켄.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로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78)이 선정됐다. 50여년 동안 철, 콘크리트, 유리를 소재로 하여 그리드화한 육면체 공간을 설계해온 야마모토의 수상은 아방가르드 또는 평가절하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해온 관례에 비춰 이례적이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이 공동체, 집합생활, 상호부조 정신을 불어넣은 점을 감안하면 수긍이 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장인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미래 도시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주민들이 모여 교유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인데, 야마모토가 건축을 통해 단절을 넘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면 히로시마소방서(2000). 7층으로 된 건물은 외벽을 유리로 마감해 내부에서 이뤄지는 활동이 밖에서 훤히 보인다. 방들은 중정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중정에서는 소방훈련 등이 이뤄진다. 외부인들은 4층으로 들어와 소방관들의 활동을 조망할 수 있다. “소방서는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소방관들의 활동은 마땅히 기려야 하며 모두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이 반영됐다. 훗사 시청(2008)은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인 점에서 유사하다. 붉은 타일의 외벽이 곡면으로 지면과 연결되고, 시민들은 부드러운 경사로를 따라 건물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이타마 현립대학교. 가디언 캡처
사이타마 현립대학교. 가디언 캡처

 

사이타마 현립대학교(1999)는 9개의 건물을 테라스로 연결하고, 테라스는 통로를 통해 교실들을 통합한다. 교실과 교실 사이는 유리벽이어서 이용자들은 이웃 교실의 활동을 볼 수 있다. 학제 연구, 활동을 고취하려는 의도다. 그러한 공간 구성은 야마모토가 생각하는 도시공간을 위한 모델과 같다. 유사한 컨셉트는 요코스카 미술관(2006), 톈진 도서관(2012) 등에 적용됐다.

1945년생인 야마모토는 일본의 전통적인 도시형 주택 ‘마치야’에서 자랐다. 도로에 접한 전면에서 어머니가 약국을 운영했고, 뒤쪽에서 가족들이 생활했다. 그는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가족을 위한 곳, 또다른 쪽은 공동체를 위한 곳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이러한 성장배경은 공공-사적, 개별-집합 사이의 경계에 세심한 배려를 하는, 그의 건축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73년 개인설계사무소 ‘야마모토&필드 샵’을 차렸다. 첫 수주는 개인의 여름별장. 유일한 조건이 넓은 테라스를 두어 종일 야외활동을 하는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내밀한 방과 공용 테라스를 한 지붕으로 연결하여 고객의 요구조건을 맞췄다. 첫 사회주택 프로젝트는 구마모토(1991)에서 이뤄졌다. 나무를 심은 넓은 중정을 중심으로 110가구를 배치한 바, 개별 가구를 통해서만 중정을 접근할 수 있다. 개별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동시에 공동체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마치야의 콘셉트와 일치한다.

야마모토는 ‘한집 1가구’를 기본으로 한 주택 시스템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주택은 더 이상 한 가족이 거주하여 아이를 양육하는 공간이 아니다. 주택을 개방함으로써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고립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만든 용어 ‘지역사회권’이 이를 대표한다. 도시형 집합주택(아파트가 전형임)은 더 이상 거주만을 위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서 경제활동과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하고, 어린이 양육이나 고령자 요양을 위한 상호부조 시스템을 갖춘, 완전히 새로운 주거양식으로 변환되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주택은 투자가의 이윤을 위한 상품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국가경제를 견인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존의 주택을 둘러싼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집합주택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생활 자체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세곡동 공공임대주택단지.
세곡동 공공임대주택단지.

그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건축가이다. 강남 세곡동 일대 공공임대주택단지 설계(2014)에 참여했다. 85제곱미터 이하 소규모 가구로 된 8개 동의 아파트단지다. 저층형 기단과 고층형 타워의 조합으로 이뤄진 아파트 2개동이 공원, 텃밭으로 된 공용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도록 배치한 게 기본단위(클러스터)다. 공용공간 주변에 공공주방, 도서관을 두고, 저층부 옥상에 텃밭과 휴식공간을 두었다. 클러스터와 클러스터 사이는 주차를 포함한 서비스공간으로 하고, 클러스터끼리는 브리지, 어린이놀이터, 산책로로 연결했다.

판교 타운하우스(월든힐스 2단지, 2009)도 그의 작품. 현관홀을 유리로 마감해 분양 당시 사생활침해 논란을 빚었다. 주민들은 10여년 뒤 “그곳에서 파티를 열며 잘 지내고 있다.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건축가를 초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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