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법원 "제보 확인차 방문…위법성 인정 어려워"
"서울시장 가족 검증, 통념상 취재활동으로 봐야"
한동훈 자택 취재 등 검찰 수사에도 영향줄 듯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인 송현옥 씨(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의 강의실을 취재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시민언론 뉴탐사> 강진구 기자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8단독 김선숙 판사는 14일 오후 방실침입 혐의로 기소된 강 기자에 대해 "피고인 출입 방법, 강의실 내 사람들을 취재하는 과정을 종합했을 때, 방실침입죄 성립이나 위법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5월 26일 강 기자는 송 씨가 운영하는 극단 '물결'의 단원들이 학생들을 위한 시설인 세종대 연극연습실을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제보를 받고 세종대 연습실을 취재했다. 당시 제보에는 대학원생들이 상업 연극의 배우·스텝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연극에 출연하는 대학원생들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강 기자는 당시 취재 내용을 종합해 '공정한 청년 서울공약'을 내세운 오 시장의 가족의 '청년 갑질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또한 오 시장의 딸 오주원 씨가 극단 '물결'에서 10여 년 간 작품 주인공을 독점한 데 대해 이른바 '엄마 찬스' 의혹도 제기했다. 특히 오 씨는 부산국제연극제 폐막 작품의 안무 조감독을 맡았는데, 실제 한 달에 한두 번 음료수 사는 일 정도만 했다는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엄마 찬스'를 이용해 '부정 채용' '허위 스펙쌓기'를 했다는 의혹이다.
송 씨는 보도가 나간 뒤인 2022년 6월과 7월 강 기자를 경찰에 고소했고, 서울 광진경찰서는 강 기자를 건조물침입,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엄마 찬스' '부정 채용' '허위 스펙쌓기' 의혹 등과 관련해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증거불충분)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건조물침입 대신 방실침입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내용 등을 종합하면, 강 기자가 방문할 당시 세종대 광개토관 내 연극연습실은 강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송 씨가 단장인 극단 '물결'의 단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강 기자는 문을 두드린 뒤 연습실에 들어가 기자 신분 및 취재 목적을 밝히고, '단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냐' '근로계약서는 작성했냐' 등의 취재 관련 질문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달 17일 결심 공판에서 "실제 수업이 진행 중이던 곳에 들어가 피해자들의 수업권을 침해했다" "일반 공중에게 개방돼 있지 않은 강의실에 녹음 장치를 몰래 소지하고 들어간 것으로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 등의 주장을 펼치며 강 기자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의 집을 찾아가 이틀 동안 현관문을 두드리고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등 소란을 피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TV조선> 취재진 2명에 대해 각각 벌금 200만 원을 구형한 것과 비교하면, 징역 1년 구형은 사실상 강 기자에 대해 추가 구속시도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검찰과 달랐다. 김 판사는 "강의실 건물 복도는 외부인 출입 제한 통제 없이 개방됐고 (강 기자는) 열려 있는 출입문 앞에서 먼저 노크했으며 강의실 내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양해 의사 표시를 했다"며 "기자임을 밝히고 강의실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의실 출입으로 연극 회의를 중단해 방실출입이 사실상 평온을 해하는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취재 당시 세종대 연습 장소 이용과 관련해 다른 학생들의 민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피고인이 제보받았고, 문자 메시지 등의 취재에 응하지 않는 송 씨를 만나기 위해 강의실을 찾아갈 필요가 있었다"며,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취재 행위라고 판단했다.
방실침입 혐의는 해당 공간에 대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며 관리하는 사람의 의사에 반해 '평온'이라는 법익을 침해했느냐, 안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 법원은 강 기자의 취재 활동이 평온을 해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 기자는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송 씨의 강의실, 연습실을 방문하게 됐던 것은 제자들에 대한 갑질 제보를 받고 벌였던 정당한 취재활동이기 때문에 불편이 있었다고 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주거침입(방실침입)으로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해줬다"며, 선고 결과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강 기자는 "선고 결과는 저 개인뿐만 아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질식되어 가는 언론의 자유를 지켰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며 "온갖 압수수색에도 불편한 진실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을 상대로 자행되고 있는 언론 탄압 대해, 사법부가 윤석열 정권에 준엄한 경고를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사회가 지탱되는 데 있어서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감시 매우 중요하고, 기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듣기 불편한 진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부분에서 벗어나 권력에 대해 성역 없는 비판과 감시 활동 벌여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이날 검찰에 완패 선언을 하면서, '청담동 술자리 의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당시 법무부 장관) 자택 및 차량 취재 등과 관련한 수사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검찰은 2022년 12월과 지난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강 기자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한 바 있다. 특히 한 위원장 자택 취재의 경우 이번 사건과 관계돼 있다.
강 기자는 "아직 기소가 안 됐지만 고위공직자 프라이버시와 언론의 자유라는 두 가지 법익이 충돌하는 데 있어 언론의 자유 훨씬 더 공적 자유 크다는 점을 오늘 사법부가 인정했다"면서 "그런 정신이 청담동 술자리 관련 사건 수사에 있어서도 계속 관철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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