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칼럼] 의대 증원, 개혁 시동인가 총선용 카드인가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한다. 이 정부는 그동안 사회경제적인 차원에서 주로 기득권 세력의 편을 드는 정책들, 예를 들면 감세정책, 간호사법과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등으로 일관했으나 이번에는 의사들의 이해보다는 국민 다수에게 매우 절실한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 좋게 생각하면 윤석열 정부는 이것이 국가적으로 도저히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선거용으로 꺼낸 카드의 의혹도 짙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필수의료 패키지’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그리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총파업 카드를 꺼내 들면서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여러 의사단체들도 지금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과에 쏠림현상이 문제라고 반발한다. 의사들은 갑자기 의대 입학생이 늘어나면 의학교육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고, 대입에서 의대 쏠림이 심화되어 이공계 붕괴 등이 예상되고, 건강보험 재정 및 의료비 상승 등 국민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의대 증원과 지역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는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 그리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3.9%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했다"며 "의협의 거부는 명분도 설득력도 없는 억지"라고 비판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2월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대 증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2월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대 증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면허취소까지 강행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칼을 들었다가 실패한 정책을 윤석열 정부가 완수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이해집단의 반발에 공권력을 단호하게 집행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헤게모니 능력과 대국민 설득력에 달려 있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 수의 부족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닐 수 있고, 의사 수의 증대가 의료 격차를 해소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부안의 성공 여부는 정부가 현재와 미래의 필수의료·지역의료 공백의 원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증대되는 의료비 부담과 의료 전달체계 문제의 종합적 재조정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안과 의대정원 증원안이 의사들의 저항으로 좌초한 것도 공권력을 단호하게 집행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정부나 민주당의 종합적이고 거시 정책적 비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의대 증원 전면 반대 아닌 부작용 내세우는 의사들 전략

시장에서 독점적 이익을 누리려는 전문직이 자격증 소지자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전략은 거의 상수에 가깝다. 흔히 ‘계급 폐쇄(class closure) 전략’으로 불리는 이 의사들의 행동은 전문직 자격자 수가 늘어나거나,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 영역에 들어오면 자신이 차지할 파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격증 소지자 수를 줄이거나, 자신의 권한 영역을 독점적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의협이 의대 증원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간호사의 업무를 확대하는 간호법에 대해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0년대에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300명에서 500명으로 증대하려 했을 때 인권 변호사들까지 시민단체에서 탈퇴하거나 2000년 의약분업 의제로 인의협 의사들이 여러 사회단체에서 대거 탈퇴한 일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들은 국가적으로 필요하고, 다수의 국민들에게 분명히 큰 혜택이 돌아가는 개혁 조치를 전면 반대한다고 말하면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개혁은 그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반박하거나, 전문직의 규모가 커지면 서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고 은근히 위협한다. 이번 정원 증원안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같은 논리를 동원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와 수도권 유인의 강력한 요인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의대 증원을 하면 지방 의대에 진학한 사람들은 대다수 수도권으로 갈 것이며, 필수의료 분야보다는 돈되는 성형외과 피부과 쪽으로 몰려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증원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논의하자고 하면서 사실상 모든 시도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것인가? 의협의 의대정원 증원 반대 논리에는 의사 기득권 지키기 전략과 합리적 비판의 내용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경제학자 허쉬만 (Hirshman)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개혁안이 나왔을 때 기득권 집단은 그 부작용과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들먹이며 개혁 자체를 무산시키려 한다. 영국의 보수주의자 버크 이래의 모든 기득권 세력의 일관된 전략이다. 

 

양동호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이 2월6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대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석, 의사협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동호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이 2월6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대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석, 의사협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작용·혼란 주장 잠재울 종합적 정책 제시 필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 이후 의사들의 일관된 증원 반대 논리에는 왜 전국 자연계 최우수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몰려가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대답은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 최우수 성적을 자랑하는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진학하는 문제와 코로나 19와 같은 팬데믹이 왔을 때 국가가 이를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도 없다. 즉 의료행위가 이렇게 영리행위로만 일관하고, 공공병원이 전체 병원의 10% 정도에 미치지 못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이 아직 6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돈 없는 서민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의료인으로서 윤리적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개혁의 부작용, 의도하지 않는 결과, 더 큰 혼란과 비용지출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집단 저항에 맞서서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투입되어야 하는 의사 수를 확보하기 위한 분명한 제도개혁과 효과적인 재정 마련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실상 증원을 무산시키려는 의사 집단 내 여론을 소수화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사회경제개혁은 O, X로 답할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상호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으면 대체로 실패한다. 즉 필수의료 종사자 우대, 의료 영리화 축소 정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고 지방의 공공병원 육성 정책도 포함해야 한다.

우리는 의협의 반발에 수긍할 수 없지만,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나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의지나 정책시행 방법도 신뢰하기 어렵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국민 건강권 확대에 도움이 되는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공공병원 증설 의지가 없고. 의료 시장화와 영리병원 도입을 ‘개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 문제는 이 구조적이고 복합적 위기를 해결하는 하나의 처방일 뿐이다. 그것과 연관된 구조, 제도, 의식 개혁의 고차방정식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의사들과 타협하여 의료수가 대폭 인상을 약속해서 그 부담을 모든 국민들에게 전가할 위험도 있고, 대형병원과 타협해서 의료 영리화를 서두를 수도 있다. 그 경우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시민단체가 제기한 정책, 지역·필수·공공의료 의사 확보를 위해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도입, 의료 시장화를 막는 정책도 필요한데 윤석열 정부가 그런 정책을 펼 것 같지 않다.

의대 정원 문제는 국가 미래 걸린 복합적 의제의 하나

사실 국제기준으로 보면 한국 의료제도는 비교적 양호하다. 국민 보편적 건강보험이 도입되어 있고,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 가능성도 비교적 높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수준은 매우 낮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가정 경제는 거의 파괴된다. 지금 의협이 아무리 진료 거부를 하겠다고 하고, 전공의들이 면허증까지 반납한다고 하더라도, 전국의 모든 이과 최우수 학생들이 의대로 몰려가는 이유는 한국에서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 수준이 매우 높고, 이 불안한 노동시장 조건에서 그래도 의사들이 높은 보수와 안정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의 부족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과계 최우수학생 의대 쏠림이 사실 더 심각한 현상이고, 국가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R&D 예산 대거 축소 정책에서 보듯이 과학 기술을 선도해서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에 대한 육성책은 하나도 내놓은 것이 없다. 의대 진학을 촉진하는 요인을 오히려 더 추가했다. 의대 진학은 누가 뭐래도 사적인 동기에서 움직이고, 교육 이후의 수입이나 성과도 사적으로 전유되지만, 순수 과학이나 첨단 과학 분야 전공은 그 자체가 공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의사단체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면서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2월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의사단체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면서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2월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냉정하게 말해서 의사 수가 늘어나 모든 사람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보다는 아픈 사람 자체가 줄어들어 병원 갈 일이 없어지고, 의사가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더 좋다. 판검사나 변호사 수가 늘어나 서민들이 법률 서비스를 잘 받는 세상보다는 아예 소송 자체가 줄어들어 판검사나 변호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더욱 좋다. 물론 이것은 이상일 따름이고, 우선은 의료행위가 병원과 의사들의 돈벌이가 되지 않도록 하고, 판검사 지위가 권력과 돈을 얻는 중간 다리가 되는 이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병원과 법원, 의사와 판검사는 위급한 사람의 고통을 해결하고, 부정의를 바로잡아 원한과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극히 중요한 기관이자 요원이지만, 이들의 활동은 치료나 분쟁 해결 등 원상회복이 목표이지 미래의 먹거리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이후 팬데믹 가능성, 저출생과 노령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N수생이 독차지하는 의대 입학생, 이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한꺼번에 고민해야 국가가 정말로 필요한 의사의 규모와 그들의 질을 추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대 증원 문제는 단순한 의료정책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정치적 의제이며, 국가의 미래 인재 양성과 인력 재배치, 공공복지, 국가 재정, 그리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연관된 복합적 의제다. 이익집단의 저항에 국가가 굴복하지 않으려면 정당의 정치력과 정책 능력, 그리고 시민사회의 판단력과 참여 모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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