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비상사태와 정당의 비상사태 간 괴리라는 비극
거대 양당의 만성적 비대위 체제와 인재 영입쇼
기성 정치인, 법, 제도, 교육, 언론 등이 꽁꽁 봉인한 정치
1972년 10월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이후 긴급조치 1호에서 9호까지 선포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의 현실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준전시 상태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상황을 규정했다. 그리고 유신체제에 저항하던 청년 학생들, 평소 좌익 사상을 갖고 있다고 의심하며 사찰하던 일군의 지식인들을 인혁당으로 조작한 다음, 이들 모두를 민간 법정이 아닌 군사 법정에서 재판했다. 그리고 인혁당 관련자 8명을 대법원 판결 직후 곧바로, 즉 ‘비상(非常)하게’ 처형했다.
‘국가 비상사태’ 즉 긴급조치 선포는 국회와 사법부의 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전시체제, 즉 사실상의 계엄체제를 의미했다. 그런데 1972년 이후의 한반도가 실제 전시상태였던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실 박 정권은 10월유신 선포 직전에 2인자인 이후락을 북한에 보내는 등 북한과 물밑에서 대화했고, 남북 적십자회담, 이산가족 상봉까지 거론했었다. 북한의 남침 위협과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당시 국제적으로 닉슨 독트린, 미중 국교 정상화로 탈냉전의 무드가 강화되었고,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 해빙무드 속에서 분단된 동서독은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었다.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국제 공산주의의 전면 공세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국제적 해빙무드 속 나홀로 전시체제였던 박정희 정권
1972년의 비상사태 선포. 이후의 긴급조치는 모두 박정희 자신과 박정희 군부정권 자신들의 전시체제, 즉 주관적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일제 말의 국가 총동원 체제처럼 당시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로 하여금 야당 및 재야 인사를 포함한 반대파를 사찰, 불법체포, 고문하도록 했고, 모든 언론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대학의 학생회를 폐지하고 전투경찰을 상주시켰으며 학생들을 문무대로 끌어갔다. 이 모든 전시 운영 자체가 거대한 쇼였고 허구였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이렇게 ‘전쟁’을 선포한 박정희 자신이 1979년 10월 26일 가장 가까운 동료의 총에 맞아 ‘전사’하였고, 그 위기를 틈타 일단의 군 세력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제 ‘서울의 봄’ 영화로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되었지만,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며 전방부대까지 빼돌리고 대통령을 겁박하며 군사 반란을 저지른 최대의 국가안보 위협 세력이었다.
물론 북한이 남조선 혁명론에 기초해서 대남 침투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치던 1960년대 말까지의 안보위기론은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공작원 파견이 거의 중단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선포한 계엄은 모두 자신들의 정권 안보, 기득권 안보를 위한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 선거 국면에서 집권당(현 국민의힘 전신)이 벌인 북풍사건, 총풍 사건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 들어선 이후 남북한 대립의 강화, 9.19 합의 폐기 모두 북한의 침략성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아니라 남한 보수정권의 친미 반북 강경책의 결과다. 박정희에서 윤석열에 이르는 한국의 보수 집권세력에게 정치는 언제나 비상사태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권력유지나 집권 가능성의 비상사태였다.
거대 양당의 만성적 비대위 체제와 인재 영입쇼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김기현이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당을 운영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당 지도부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후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나경원, 안철수, 유승민 등 내부의 경쟁 주자들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배제한 의혹이 있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여당은 계속 비대위 체제였다. 21대 총선 참패로 위기에 처한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은 대선 체제로 당을 정비하기 위해 김종인을 영입했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집권 후에도 여당인 국민의힘은 주호영, 정진석 비대위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비대위 체제에 들어갔다. 이 정도라면 여당은 정상적인 지도부를 수립할 수 없는 만성적인 비대위 정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게 비대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거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당이란 선거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기로 그 이전에도 여야는 자주 비대위 체제로 유지되었다. 가까이는 2016년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 2021년 국민의 힘 김종인 비대위가 있었고, 멀리는 2011년 박근혜 비대위가 있었다. 이 모든 비대위 체제는 여야가 언제나 총선이나 대선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거는 전쟁이고, 전쟁은 곧 비상사태를 의미하는 것이니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비대위를 세웠다. 그래서 2011년 박근혜 비대위처럼, 정강과 당명도 바꾸고 이준석 등 새로운 인재도 영입해서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했으며, 민주당은 2016년 김종인 비대위처럼 이해찬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민주화 대신에 성장을 강조해서 총선에서 다수의 의석을 얻기도 했다.
이들에게 ‘성공한’ 비대위란 곧 선거라는 세일즈에서 성공하기 위한 포장이었지, 당 자체의 근본적 혁신은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민주정의당에서 민주자유당으로, 그 다음에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그리고 지금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당 명칭 변화의 역사가 그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세계에서 사실상 같은 성격의 당이 이렇게 당명을 자주 바꾼 경우가 있었던가? 이 모든 당명 변화는 자신들의 비상사태를 돌파하기 위한 선거용이 아니었던가? 결국 비대위란 선거 승리를 위한 국민 눈속임이었던 셈이고, 그렇게 해도 화장술에 속아 넘어가거나 알고도 찍는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에 정당은 이렇게 심심하면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거나 당명을 바꾸어 국민들을 유혹한다. 비대위가 겉포장과 인재 영입과 공천쇼를 통해서 변신에 성공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 이후 4년 혹은 5년의 기득권이 보장된다.
야당인 민주당도 김대중이라는 상징적인 인물과 구시대의 막내임을 자처한 노무현이 정계에서 물러난 이후 새로운 지도력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정한 지도력과 나빠진 이미지를 덮고, 자신의 무능과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언제나 선거용 인재 영입에만 매달린다. 그래서 벌써 2024년 총선 대비, 1호, 2호 영입을 시작했다. 그런데 2020년 선거에서 영입한 판사 출신 이탄희, 경제전문가로 영입한 홍성국 의원이 다음 총선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영입 인재들이 정치판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당은 결국 일회용 반창고로 이들을 사용하고 이들이 뜻을 펼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를 거의 마련해주지 않았던 셈이다.
국민 비상사태와 정당의 비상사태 간 괴리라는 비극
집권여당이 지난 2년 동안 계속 반복된 비대위 체제,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자주 바뀐 당명, 그리고 야당이 선거 때마다 인재 영입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거대 양당은 선거 전쟁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며, 국가의 미래와 다수 국민의 실제 고통 해결 등은 부차적인 관심사안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선거는 언제나 비상사태였다. 집권 비상사태였으며, 공천 비상사태였고, 선거 패배 비상사태였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자신들의 군부 권력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국가 비상사태라고 선포하고 진압하기도 했지만. 지금 집권여당은 밑바닥 국민들이 겪고 있는 실제 비상사태를 외면한 채 자신들만의 비상사태를 계속 선포하고, 비대위를 만들고 있다.
지금 국가와 국민의 삶이 진정으로 비상사태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저출산으로 인해 30년 후면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진정한 국가 비상사태에 우리는 처해 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의 산업전환 실패와 그로 인해 기업의 생존이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 중국 수출길이 막혀 문을 닫아야 하는 제조업체들과 그런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지금 비상사태다. 가계부채로 인해 수백만 명이 비상사태이며, 가게를 접어야 하는 200만 영세 자영업자가 비상사태며, 구직을 포기한 50만 명 은돈형 외톨이 청년들의 삶이 비상사태다. 경쟁에 지쳐 우울증약으로 버티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
국가와 국민의 진정한 비상사태와 정당의 비상사태 간 괴리, 이것이야말로 오늘 한국사회 최대의 비극이자 국민 고통의 기원이다. 거대 여야 정당이 국민의 비상사태를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비상사태만을 계속 선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민들이 기존 정당을 없앨 수도, 새 정당을 세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경제를 비판하면 모조리 사회주의로 몰아가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체제 때문이다. 선거 외에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당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아무런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인, 법, 제도, 교육, 언론 등이 꽁꽁 봉인한 정치
이것을 우리는 ‘봉인된 정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봉인된 솥뚜껑을 열어 제치는 항쟁과 촛불시위가 벌어져도, 다음 모든 절차는 또다시 기성 정치인들에게 위임되고 만다. 선거 외의 시민 참여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새 정당이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존의 정당법과 선거법, 헌재 판결 등 제도적으로 차단되어 있고, 이러한 제도를 상위에서 규제하고 있는 헌법 개정 작업도 오직 기성 정치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대통령 직선, 5년 단임제, 단순다수제에 기초한 의원 선출제를 틀로 하는 1987년 헌법은 오래 전에 시효가 다 했으나 그것을 개정할 힘은 그들에게 있다.
이 봉인된 정치질서 속에서 정치 엘리트가 될 수 있는 면허장을 얻은 과거의 군부와 오늘의 검찰 세력,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여야 양당이 만든 각종 법과 제도, 그들이 만들어낸 교육과 미디어 질서 모든 것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시민들이 여야 정당의 죽고 살기 전쟁, 새 영입 인물에만 시야를 제한하도록 유도하는 주류 미디어의 ‘의도’와 기획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만 한다. 시민들이 선거 밖 지역 정치의 주체, 일터에서의 주인, 그리고 정치 담론의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의 주체로 나설 수 있어야 변화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학교나 시민사회에서 시작되던 모든 민주시민교육을 폐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국민들이 정치 소비자, 구경꾼으로 남아 그들의 ‘비상사태’와 비대위가 쏟아내는 변장술에 속아 넘어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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