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과 언론 ④] 5공 시대 곡필과 땡윤 뉴스

'인간 개조' 삼청교육대 참혹한 인권 유린도 은폐해

"온 국민이 극구 바라던 조치"…국보위‧계엄사 찬양

현장 르포라며 "검은 과거 씻어…기자 할 일 줄겠다"

전두환 퇴임 뒤 '수렴청정' 문건도 언론인들이 작성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기자들, 윤 정권서 또 굴종

12‧12 쿠데타로 전두환 신군부가 전면에 등장해 '서울의 봄'을 짓밟은 이래 언론이 5공화국 내내 동조‧부역한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다하다. 시민언론 민들레의 이번 시리즈 기사가 그 방대한 사안을 다 다룰 순 없지만 '삼청교육대' 살상극에 대한 왜곡 보도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삼청교육대가 뭔지는 알아도 당시 언론이 이를 어떻게 보도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거나 아예 모르는 시민이 많을 것이다.

 

삼청교육대 훈련을 '인간재생'으로 미화한 동아일보 1980년 8월 13일자 기사. 동아일보 아카이브
삼청교육대 훈련을 '인간재생'으로 미화한 동아일보 1980년 8월 13일자 기사. 동아일보 아카이브

삼청교육대 집단 살상과 언론의 진상 은폐 왜곡 보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야만적 행위 가운데 광주 학살 다음으로 잔인했던 건 삼청교육대 인권 유린이었다. '삼청교육'이라는 이름은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를 주관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가 삼청동에 위치해 '삼청계획 5호'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2년 10월 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보위 조치에 따라 1980년 8월 1일부터 11월 27일까지 4차례 단속을 통해 검거된 인원이 무려 6만 755명이었다. 이들 중 3000여 명은 구속돼 군사재판을 받았고 4만 347명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훈련을 받았다. '인간 개조'를 내건 삼청 교육과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339명, 나중에 불구가 된 부상자는 2700여 명에 달했다.

그 밖에 신체장애를 입지 않은 부상자의 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1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 질환을 얻은 경우도 다수 존재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 외에 무연고자나 부랑자 등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증언들도 있다. 삼청교육대 한 교관의 말에 따르면, 일과가 종료된 후 교관 회의를 할 때 상관이 "너희는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군인 정신에 따라서 하라. 그러다가 죽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신군부 세력은 '깡패 소탕'이라는 구실을 내세웠으나 일부 폭력배 외에도 재야운동가, 언론인, 일반 회사원, 사소한 시비 끝에 붙들려 간 사람, 무고한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혹독한 구타와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은 진실을 추적하고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기는커녕 신군부의 통제 속에 거꾸로 진상 은폐의 왜곡 보도로 일관했다.

1980년 8월 13일을 전후해 각 신문과 방송사들은 육군 부대의 삼청교육장을 집단 방문한 기자들의 현장 르포를 일제히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곳에 들어온 후 뉘우침의 눈물이 값비싼 것임을 느꼈다. 악으로 얼룩진 과거를 씻고 새 사람이 되어 돌아가 부모에 효도하련다"라는 요지의 기사를 썼으며, 중앙일보는 "낮에는 고행하는 승려처럼 육체적 훈련을 받고 밤에는 자아 발견의 시간을 가지게 돼 정말 다행이다"라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못살게 군 흔적을 온몸의 문신과 칼자국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참회의 눈물과 땀방울에서 이 같은 흉터는 조금씩 씻겨져 가는 것 같다. 특히 4백여 명의 지도요원들이 자신들의 개과천선을 돕고 있는 데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면서"라고 삼청교육대 미화에 열을 올렸다. 동아일보는 이 무렵 사설에서 "이 조치는 그동안 온 국민이 극구 바라는 바였다"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온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여론을 오도했다. 한국일보 또한 사설을 통해 "국보위, 계엄사의 진취적인 과제 의식"이라고 적극 찬동하고 "시원하게 협조하라"고 당부했다.

 

삼청교육대 훈련을 '땀을 배우는 인간 교육장'으로 미화한 조선일보 1980년 8월 13일자 기사. 조선일보 아카이브
삼청교육대 훈련을 '땀을 배우는 인간 교육장'으로 미화한 조선일보 1980년 8월 13일자 기사. 조선일보 아카이브

조선일보 8월 13일자 <머리 깎고 금연 금주, 검은 과거를 씻는다 – 땀을 배우는 인간 교육장>이라는 제목 아래 '17세 고교생부터 59세까지! 이웃사랑 외치며 봉체조! 새마을 성공사례 듣자 연병장은 울음바다'라는 부제가 달린 기사의 내용을 보자.

"산기슭에 자리한 넓은 연병장은 몸에 밴 악의 응어리를 삭여 내뿜는 땀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의 뒷골목을 주름잡던 주먹들과 서민을 울리던 공갈배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전봇대 크기의 육중한 멸공봉을 들고 비지땀을 흘리며 훈련받는 모습은 기자의 눈에 차라리 희극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당사자들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

(중략) 대부분이 20세 전후 앳된 얼굴들, 그 얼굴에서 과거의 '악'은 어느 틈엔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 순화'란 구호 이외에 간간이 '백두산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라는 '나의 조국'을 목이 터지라고 불러대는 이들은 모자에 계급장 대신 이름표를 붙인 것만 아니라면 일반 사병으로 쉽게 혼동할 수 있을 정도였다. 토요일도 없는 이들의 주간 강행군 교육은 술과 담배를 하지 못하고 신문과 TV를 보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신병 훈련 스케줄과 같다. (…)

위병소를 지나 귀로에 오르면서 저들이 제대로만 순화된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선 기자들이 경찰서에서 취재해야 할 일이 그만큼 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고소가 머금어졌다."

장문의 이 르포 기사대로라면 삼청 교육은 그저 깡패들의 '검은 과거'를 씻는 신병 훈련 같은 수준이다. 기자는 "경찰서에서 취재해야 할 일이 줄겠다"며 흐뭇해한다. 그러나 삼청교육대는 수많은 생사람을 잡은 지옥 훈련이었으며 입소 대상도 깡패와는 전혀 무관한 시민들까지 무차별로 연행한 것이었다.

전두환 퇴임 뒤 '수렴청정' 보고서까지 언론인들이 작성

이 밖에도 '평화의 댐' 사건 등 전두환 정권이 꼭두각시 언론을 동원해 여론 조작을 획책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권 내내 그랬다.

심지어 1988년 11월 7일 국회 5공 특위 청문회에서는 <88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준비연구>라는 이름의 보고서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전두환이 퇴임 후에도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민정당 총재직을 계속 맡고 후임 대통령은 부총재직을 겸임토록 해 당 총재의 지도 아래 둔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보고서의 '연구 목적'은 분명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정치적 리더쉽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제반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첫째 :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원활히 수행하고, 둘째 : 88년 이후에도 전 대통령 각하가 계속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구축함에 있음."

전두환이 최소 2000년까지 민정당을 '수렴청정'할 수 있는 치밀한 세부 계획과 정치 공작 방안을 짠 이 4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5공 중반기인 1984년에 작성된 것인데, 작성자는 놀랍게도 언론사 간부들이었다. 84년 1월부터 당시 경향신문 정구호 사장과 윤상철 주필, 양동안 논설위원, 강연호 경향신문 부설 정경연구소 기획위원 등이 약 6개월에 걸쳐 해외 출장까지 다니며 극비리에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이 별의별 하수인 노릇을 다 수행했지만 전두환의 퇴임 뒤 장기집권 플랜까지 언론인들이 작성했다는 사실은 또다시 언론계에 치욕을 안겼다.

 

전두환이 퇴임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언론인들이 보고서로 작성한 '88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2페이지 목차 부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전두환이 퇴임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언론인들이 보고서로 작성한 '88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2페이지 목차 부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전두환이 퇴임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언론인들이 보고서로 작성한 '88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3페이지 연구 목적 부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전두환이 퇴임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언론인들이 보고서로 작성한 '88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3페이지 연구 목적 부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언론이 권력의 하부 기구로 편입돼 나팔수로 전락한 풍토에서는 기자의 윤리, 언론의 사명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조차 설 자리가 없게 되는 법이다. 5공 시절 언론 통제가 오랫동안 보편화하면서 언론은 어느 사이엔가 자기 검열이 체질화되어 갔다. 보도지침이 필요 없을 정도로 권력의 입맛에 맞게 '알아서 기는' 행태를 보이게 된 것이다.

어차피 무기력한 언론사 환경에서 권력층 눈에 들어 승진이나 정치권 진출 등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일부 간부와 출입처 기자들의 기회주의는 이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했다(실제로 민정당 국회의원 및 정부 고위층으로 발탁된 기자들이 수두룩했다). 타율적인 언론 습속의 장기화는 자기 검열에 익숙한 체제 순응형 기자들을 갈수록 양산해냈다.

'반성'은 잠시…윤석열의 전두환 옹호,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기자들

경향신문은 1988년 12월 <심층 해부, 5공 언론> 기획 기사를 연재하면서 자신들을 포함해 5공 시대 언론의 굴절된 과거를 사죄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청와대에서 임명한 사장뿐 아니라 경향신문 대부분의 임직원이 권력의 '지시'를 수행하는데 자의든 타의든 헌신해 왔음을 고백한다. 크게든 작게든 무지하게든 교활하게든 한국의 모든 언론이 5공화국 독재체제의 강화를 위해 협력했던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대가로 언론인들은 갖가지 특혜를 받았다. 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보수를 받았고, 특히 보도와 논평 분야의 언론인들은 세제상의 특혜도 누려왔다. 일부 언론인들은 '촌지'라는 이름의 당근도 챙겼다. 언론사 사주들은 사주들대로 각종 특혜와 이권을 부여받으며 무소불능의 권능을 과시하거나 행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언론 내부의 어두운 구석을 우리는 하나하나 민주 언론의 밝은 햇빛 속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조선일보조차 1988년 10월 13일자 사설에서 "80년대 통폐합이 아무리 무자비한 강권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언론은 전체로써 그 강권 앞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언론권을 반납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자괴를 느끼며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언론 통폐합 부문에 한해서일망정 국민 앞에 사과했다.

이런 때늦은 '반성문' 게재 현상은 한때 중앙일간지를 비롯해 지방지들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 사설, 사고(社告) 등을 통해 5공 시대 체제 홍보에 기여한 과거사를 어느 정도 뉘우치는 듯 보였다. 이들은 속죄를 바탕으로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이후 언론사들 속성과 행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선 대다수 국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헌정사 첫 정권 교체 이래 만만해 보이거나 자신들 이익에 반하는 민주‧개혁 정권이 출범하면 온갖 허위 왜곡 보도를 쏟아내며 막무가내로 물어뜯고, 다시 독재‧수구 정권이 등장하면 연일 기상천외한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며 호위병 노릇에 진력하는 패턴을 언론 스스로가 아주 당연시하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주자 시절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자신의 반려견 인스타그램인 ‘토리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던 이른바 '개사과'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주자 시절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자신의 반려견 인스타그램인 ‘토리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던 이른바 '개사과' 사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주자 시절 발언을 다시 곱씹어 보자.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그건 왜 그러냐, (전문가들에게) 맡긴 거다. 이 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 관리를 해봤기 때문이다."

군사 독재와 그 꼭두각시들의 '조직 관리' 수법에 고통받았던 다른 모든 영역도 그렇지만, 특히 언론계 종사자들은 전두환 정권기에 제도권 언론 전반이 수치로 얼룩진 굴종과 곡필 시대를 겪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인식 상태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젊은 기자들은 그건 다 한참 윗대 선배들 시절 옛날 이야기 아니냐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언제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런 역사의식 부재의 치명적 후과가 바로 지금 윤석열 정권에서 극명하게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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