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과 언론 ③] 언론 장악·조종의 완결판
기자 출신들이 하수인 노릇…단어 하나까지 간섭
정부에 불리, 야당 유리한 사안 "일체 보도 말라"
정부에 유리, 야당 불리한 사안 "꼭 1면 톱기사로"
부천서 성고문 사건 "검찰 발표 내용만 보도할 것"
비판 언론이 폭로하자 도리어 수사…'국가모독죄'
누적 관객 수 12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 제작사가 다음 신작으로 전두환 정권 시절의 언론 실상을 그린 영화를 선보인다고 한다. 신군부가 보안사 언론대책반을 통해 입안했던 이른바 'K(king) 공작' 등 5공화국의 언론 통제 및 회유 공작을 그린다는 것이다. ☞ '서울의 봄' 제작사, 5공 언론 통제 영화 만든다…이번엔 'K공작 계획'
한국 언론의 기나긴 흑역사 중 한 시기를 하이브미디어코프라는 유능한 제작사가 어떻게 재현해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큰데, 전두환 정권의 언론 공작을 거론할 때 '보도지침'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인 대량 해직, 언론 통폐합, 언론기본법 제정까지 마친 전두환 정권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는 보도지침이라는 가장 실질적이고 말초적인 수단을 통해 완결을 보게 됐으니 말이다.
국가보위입법회의가 1980년 12월 26일 제정하고, 허울뿐이던 국무회의가 단 5일 만인 12월 31일 확정·공포한 언론기본법은 언론 통제를 제도화한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은 통폐합을 통해 언론사들을 입맛에 맞게 정리한 다음 언론의 저항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목적으로 이 법을 만들었다. 곧이어 1981년 1월 6일 언론기본법에 따라 문공부에 '홍보조정실'(85년 10월 11일부터 '홍보정책실'로 명칭 변경)을 설치했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 및 계엄 해제 후 정부의 대언론 창구를 문공부로 일원화하고 언론 통제를 정부 부처의 공식적인 업무 활동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언론 조종과 여론 조작 끝판왕…기자 출신들이 하수인 노릇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주로 정보기관들이 은밀하게 언론 통제를 주도했는데 이젠 문공부가 노골적으로 '홍보를 조정'하겠다고 나섰다. 홍보조정실은 당시 12명이던 문공부 내 부이사관 중 9명을 배치한 비대한 조직이었으며 주로 기자 출신으로 구성됐다. '언론기관의 보도 협조 및 지원에 관한 종합계획'을 세운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도맡았다.
특히 보도지침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각 언론사에 가이드라인을 시달함으로써 그날그날의 보도를 치밀하게 통제했다(1981년 홍보조정실을 설치했지만 보도지침이 본격화한 것은 야당이 돌풍을 일으킨 1985년 2‧12 총선 이후 이원홍 당시 KBS 사장이 문공부 장관으로 부임하고 나서부터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기자 출신들이 작성해 내려보낸 보도지침은 언론사가 빠져나가기 어렵게 아주 구체적으로 작성돼 언론 통제에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이행률도 90% 안팎으로 매우 높았다.
보도지침은 형식상 문공부 홍보조정실에서 내렸지만, 실제로 그 골격은 청와대 정무 비서실과 공보 비서실, 안기부, 보안사 등에서 만들어졌다. 이들 권력 기관에서 이른바 '협조 사항'을 홍보조정실로 보내면, 홍보조정실에서 이를 취합해 언론사에 내려보내는 절차를 밟은 것이다. 보도지침이 일상화하면서 이런 절차조차 무시하고 청와대와 안기부, 보안사의 실력자들이 개별적으로 전화를 통해 언론사에 지침을 내리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졌다.
보도지침은 단순히 보도 여부나 크기에 대해서만 관여한 것이 아니라 특정 용어를 써라 마라, 사진을 첨부하라 마라, 이런 방향으로 기사를 써라 마라 등 신문 제작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했다. 예를 들면 공권력의 '성폭행'을 '폭행 주장 관련' 또는 '성모욕 행위'로 표현하고, '성폭행 사건' 대신 '부천 사건'으로 쓰라고 지시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권인숙 양의 부천서 성고문 사건 폭로'는 '부천 사건 폭행 주장'으로 왜곡되고, 검찰이 배포한 수사 결과 자료 중 '사건의 성격' 부분에서 기사 제목을 뽑으라는 지침에 따라 "혁명 위해 성(性)까지 도구화" "운동권 학생들의 공권력 무력화 책동" "반정부 확산 노선 자작극" 등 공작 수준의 보도까지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언론사와 기자들의 노력이 아닌 양심적인 일부 법조인과 재야 민주 인사들에 의해 진상이 어렵게 확인됐다.
오랫동안 소문만 나돌다 월간 <말>지가 실물 입수해 폭로
보도지침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소문은 오랫동안 간간이 떠돌았으나 실체가 공개된 적은 없었는데 1986년 9월 6일 <말>지가 특집호를 전격 발간해 그 세부 내용을 폭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월간 <말>지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 기관지이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대중을 상대로 제작한다는 방향을 설정했다. 전두환 군부 들어 해직됐던 기자들이 편집과 제작은 물론 배포에서도 중추 역할을 했다. 해직 기자들이 만드는 매체라는 점에서 창간 당시부터 언론계 안팎과 재야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는데 창간호는 시중에 나온 지 하루 만에 매진돼 재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85년 10월 당시 한국일보 편집부에 근무하던 김주언 기자는 야근자들이 열람하고 준수하도록 편집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보도지침 사본 1부를 발견했다. 문공부 용어로는 '홍보 조정 지침'이었다. 얼마 뒤 김 기자는 날마다 내려온 보도지침 사본이 한데 묶여 있는 서류철을 발견하고, 이를 복사해서 <말>지 초대 편집장이던 대학 친구 김도연에게 전달했다. 극비리에 인쇄된 <말>지 특집호는 한국 사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정권의 언론 통제가 이 정도까지였다는 충격적 실상이 드러나고 앵무새 노릇만 일삼던 제도권 언론의 비참한 민낯이 국민들 앞에 여지없이 노출됐다.
안기부는 언론사 및 기자들에 대한 사찰을 일상적으로 벌이며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는 문제 기사가 발생하면 영장이나 구인장도 갖추지 않은 채 임의동행 형식으로 기자들을 연행해 조사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조사를 받고 나온 기자들은 대부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구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한 경험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비인간적인 대우, 수모, 법과 제도의 테두리에서 이 같은 불법행위가 자행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환멸, 신은 과연 알 것인가에 대한 강한 의문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혹 보도지침을 어기거나 당국의 미움을 받을 만한 기사가 나온 것은 언론인들의 최소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가령 경향신문 편집국장 손광식, 사회부장 강신구, 정치부장 홍성만, 정치부 차장 이실, 정치부 기자 김지영 등은 1985년 7월 25일 "학원안정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고 연행돼 1박 2일 동안 조사를 받고 나왔다. 이들 역시 고문과 함께 취재 경위 및 '소스' 등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도리어 비판 언론 수사에 나선 정부…'국가모독죄' 등으로 구속
김주언 기자의 증언에 의하면, 언론사가 보도지침을 어겼을 경우 안기부나 보안사 등의 기관원들이 편집국에 와서 신문사 존폐 문제를 언급하며 협박했다. 언론사에 드나들면서 보도를 직접 통제한 기관원들 규모에 대해서는 "안기부 1명, 보안사 1명, 문공부 홍보조정실 1명, 치안본부와 종로경찰서 직원 등 가장 많을 때는 7명 정도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언론사 국장과 부장 등 간부들은 매일 하달되는 보도지침에 맞춰 뉴스를 가공하는 '언론 기능공'에 불과했다.
<말>지 폭로로 명확한 물적 증거가 공개됐음에도 당시 문공부 장관 이원홍은 "보도지침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는 강변을 늘어놓았는데, 이는 오히려 보도지침의 부당성을 자인한 셈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보도지침 전담반'을 구성하고 치안본부와 안기부에 각각 수사팀을 만들어 수사에 나섰다. 결국 <말>지 김태홍과 신홍범, 한국일보 김주언 등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구속됐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국가모독죄라는 어처구니없는 혐의로 1심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1심 판결까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변호사 한승헌은 최종 변론에서 "이 재판은 불을 낸 자가 화재 신고자를 잡아다가 신문하는 격이다. 이 사건의 심판 대상은 법정에 있는 언론인들이 아니라 바로 보도지침을 만들어 악용한 사람들"이라며 "이 보도지침 사건 재판 기사도 보도지침에 걸렸는지 1단 이상으로 못 나가고 있다"고 분노했다. 김태홍 주심 변호사였던 이상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대충 짐작했지만 '이 사건은 좀 빼죠' 이렇게 겁이나 주고 구슬렸을 것으로 생각했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글을 이렇게 써라' '몇 단으로 써라' 이렇게 딱딱 정해준다는 건 참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제도 언론이라는 말도 달아줄 가치가 없고, 그냥 완전히 정부 홍보지인 거다. 오히려 당시 진짜 언론의 역할은 <말>지 같은 '찌라시'가 한 것이다."
6월 항쟁의 도화선…6‧29 선언 이후에야 보도지침 사라져
이들 언론인은 결국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인 1995년 12월 5일에야 대법원에 의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보도지침 폭로 9년 3개월 만이었다. 1986년 9월 시작된 보도지침 파문은 이듬해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더불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으며, 6‧29 선언 이후 언론기본법이 폐지됨과 동시에 문공부 홍보조정실도 와해되면서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말> 특집호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에는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약 10개월간 문공부 홍보정책실이 언론사들에 전달한 보도지침이 수록돼 있다. 그 기간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운동을 둘러싼 전두환 정권과 야당의 대립, 각계의 시국선언과 격렬한 시위, 부천경찰서 성고문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말>지는 보도지침의 본질과 관련해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일방적인 핍박을 받는 쪽이 아니라 현 정권과 손을 잡고 '홍보' 임무를 떠맡음으로써 억압적 통치 기능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도지침은 계속 시달되고 그 내용은 지면에 충실하게 반영되며 그 연결 속에서 온갖 은폐와 왜곡은 춤을 춘다"고 짚었다. 보도지침 전문(全文) 가운데 일부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보도지침의 실제(일부 발췌)
1985년 10월
19일
▲최근 연행, 억압사건에 관한 건
① 김영삼, 이민우 민추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② 이 회견에 합류하려던 김대중, 문익환, 송건호 씨 등 재야인사, 가택연금.
③ 이 회견과 관련한 미 국무성 논평
이상 3건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국회 관계
김한수 의원(신민) 질문 중 △ 김근태(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 의장), 허인회(고대 총학생회장) 등 고문 행위 △ 광주의 홍기일에 이어 경원대의 송광영 군 분신자살, 서울대 오정근의 의문의 자살 △ 올들어 농민 연 32회, 15,000명 시위 이는 동학란 이래 최대의 농민 저항 △국민의 95%가 군부 통치 아닌 문민 통치 희망
이상의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20일
▲대통령 민속박물관, 현대미술관 시찰. 충실하게 보도해주기 바람.
▲월드컵 축구 예선 1차 한·일전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선수단에게 전화했으니 1면 톱기사로 써주었으면 좋겠음.
▲일본 요미우리 신문, 『뉴욕서 노신영·박성철 회담 위해 양측 실무자 비밀회담, 한국이 응하면 이루어질 것』 이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4개월간 경상수지, 계속 흑자』 1면 톱기사로 다뤄주기 바람.
▲국회 대법원장 탄핵안
① 제안 설명 등 요지, 별도 기사로 싣지 말 것.
② 요지 등은 스트레이트(사실보도) 기사 속에 포함시킬 것.
③ 기사 단수는 적게(가급적).
▲신민당 개헌시안 마련
내일 정무회의에서 확정될 때까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22일
▲노신영 국무총리 유엔 연설
외교 및 통일 정책에 관한 우리 입장 재천명. 대외적 선언의 의미가 있으므로 반드시 1면 톱기사(사진 넣어)로 보도할 것. 간지(間紙)에 요지와 해설 보도 바람.
24일
▲노신영 총리, 박성철 만난 것(뉴욕)
1단으로 보도할 것. 톱기사로 올리는 것은 너무 크니 1단 기사가 적당. 양자 만난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김영남 북괴 외상, 뉴욕서 회견
『88올림픽 공동 개최 안 되면 동구(東歐) 불참 권유할 것』이라는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서울에 와 있는 공산권 선수들, 인터뷰하지 말 것.
25일
▲이재형 국회의장 『정부는 국회의원을 미행, 도청, 잠복하지 말라』는 표현을 보도하지 말도록.
28일
▲국회부의장 선출
여당 때문에 혼선이 있는 듯한 보도는 삼갈 것.
▲일본 산케이신문의 시바다 논설위원이 쓴 『한국의 개헌 주장, 성급하기 그지없다』는 내용의 사설은 눈에 띄게 적절하게 보도해주기 바람.
29일
▲검찰이 발표한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이 아닌 민추위) 이적행위 관계
① 꼭 1면 톱기사로 써 줄 것(부탁).
② 주모자인 김근태 가족의 월북 상황, 출신 배경 등 신상에 관한 기사가 연합통신 기사로 자세하게 나올 것이니 꼭 박스 기사로 취급할 것.
③ 해설기사도 요망.
30일
▲문공부 요망(이원홍 문공장관)
① 문화대회 치사 내용, 박스 기사로 취급 요망.
② 행사 내용은 간지에서 취급해주기 바람.
③ 대통령, 문화계 인사들과 가진 오찬은 충실하게 취급해주기 바람.
31일
▲이 문공장관이 대한인쇄협회 창립 37주년 기념행사에서 치사한 내용, 적절하게 보도 바람.
1985년 11월
1일
▲서울대 학생시위 기사
① 비판적 시작으로 다뤄줄 것.
② 교수회의 사진은 1면에 싣지 말 것.
③ 학생데모 기사 중 사회대 등 일부 학생의 수업 거부 움직임 등은 제목이나 기사에 쓰지 않도록. (학생 자극 우려)
▲오늘 있은 김대중, 김영삼, 이민우 등 3자 회동한 사진은 싣지 말도록.
4일
▲새마을 본부에 오늘 오전 9시, 4명이 침입해 입구서 화염병 3~4개 던지고 현관 유리창 깨다 강서경찰서에 연행. 이 사실은 조사, 발표 때까지 보도 보류 요망.
▲기사 제목에 「호헌」 「개헌」이란 문구는 일체 쓰지 말 것.
▲NCC, '고문대책위' 구성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5일
▲국회 내무위에서 전경환 새마을중앙회 회장이 새마을본부에 대한 학생들의 화염병 투척 사건을 보고하고 질의에 답변한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12일
▲국회 「개헌 특위」 관계
「개헌」이란 문구는 빼고 그냥 「특위」라고 표현할 것.
▲민추협 고문 항의 농성과 관련, 농성 사실 자체와 양김씨 동정, 김동영 총무 움직임, 부근 교통 차단 사실 등은 오늘도 스트레이트 기사나 스케치 기사로 쓰지 말 것.
15일
▲예결위원회에서 유준상(신민) 의원이 질의한 다음 내용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특히 언론정책 관계는 보도하지 말 것.
① 당국이 최일남(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중배(동아일보 논설위원), 장명수(한국일보 여기자) 등에게 칼럼과 관련, 경고했다는데 사실인가.
② 언론사 사장들 수시로 청와대 초치, 언론대책위 구성 사실인가.
③ 언론인 50여 명, 사생활 관련 곧 제2 숙정한다는데 사실인가.
④ 각 언론사에 문공부, 안기부, 보안사 요원 상주하고 어떤 때는 최고 7개 부처가 관여한다는데 사실인가.
⑤ 홍보조정실 예산 165억설 내역 밝혀라.
⑥ 홍보조정실에서 각 신문의 제목, 기사 일일이 통보, 간섭한다는데 사실인가.
⑦ 이원홍 문공장관이 지난번 수해 기사와 공무원 부정 기사 못 싣게 했다는데.
⑧ IFJ(국제기자연맹)이 전 대통령에게 해직 언론인 복직 건의서(공한)를 보냈는데 기자협회가 이를 협회보에 못 싣게 한 이유는?
⑨ 당국이 최근 서울대 시위와 관련, 2페이지짜리 보도지침을 각사에 보냈다는데?
18일
▲대학생들 민정당 연수원 난입, 해산
이 기사는 사회면에서 다루되, 비판적 시각으로 해줄 것. 단, 사진은 구호나 격렬한 플래카드 등인 담긴 것은 피할 것.
▲치안본부 발표, 『최근 학생 시위 적군파식 모방』
이 발표문은 크게 다뤄줄 것과 특히 『적군파식 수법』이라는 제목을 붙여 줄 것.
20일
▲미 하원 에너지 통상위원회 소속 전문위원 3명 오늘 오후 9시 35분 내한
이들은 한국의 F-15기 대미 구매와 관련, 뇌물 공여에 따른 조사청문(하원소위) 결과를 한국 정부에 설명하고 그동안 한국 측의 자체 조사 내용을 듣기 위해 온 것. 방한 자체는 물론, 이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의 움직임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11월 23일까지 머물 예정)
27일
▲국회 운영위에서 오늘 하오 2시부터 개헌특위 안에 대한 찬반토론 예정. 해설, 사설 불가. 1면 스트레이트(사실보도) 기사는 3단으로 할 것. 꼭 엄수할 것.
30일
▲전 대통령 '수출의 날' 치사. 1면 톱기사로 보도할 것.
▲국회 농성 관계
재무위 관계나 전체 기사에서 『여당의 법안 단독 처리 잘못』 식으로 표현하지 말 것.
1985년 12월
2일
▲국회,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점과 관련,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제작 바람.
① 민정당은 예산안을 정상 처리하고 개헌특위 문제는 대폭 양보해서 오늘 새벽 최종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외면한 채 야당은 국회를 정쟁의 장으로 만들었다. 책임은 야당에…
② 여당은 정치의안과 예산안을 일괄 타결하려 했으나(즉 협상을 제의했으나) 야측, 특히 김대중 측의 반대로 결렬됐음.
③ 예결위원장과 여당 총무를 야측이 폭행, 경상을 입힌 것은 불법.
④ 야당으로 하여금 협상 결과를 준수하는 자세를 지키도록 언론이 유도할 것.
⑤ 예산안 처리 관계 기사 제목에 『변칙 날치기 통과』라 하지 말고 『여 단독 처리 강행』 식으로 할 것.
12일
▲아래 사항을 연말 및 송년 특집에서 다루지 말 것
① 개헌 공방 전말.
② 남북대화에 관한 성급한 추측과 전망.
③ 재야권 현황.
④ 양 김씨 인터뷰.
⑤ 88년 후계자 전망.
⑥ 88올림픽 중계료 시비.
⑦ 각종 유언비어.
⑧ 농촌경제의 심각성. (소값 파동 등)
⑨ 중공기 불시착 사건.
⑩ 주미대사관 무관 사건.
17일
▲국회 관계 해설 기사에서
① 신민당의 등원 거부는 『본분 사보타지, 구시대적 작태』라고 하고
② 국민당 등원은 「들러리」, 「사쿠라」라고 하지 말고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독자 등원했다』라고 할 것.
20일
▲이상옥 외무 차관, 일본에서 아베 외상과 요담한 후 『북한이 88서울올림픽을 인정하면 경기를 분산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외신 보도는 기사화하지 말 것.
▲민정연수원 점거농성 학생 일부 석방 관계, 속보 쓰지 말 것.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문익환)이 안전기획부에서 사무국장 연행한 점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 이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경향신문의 1면 톱기사(도서심의 「반국가」 조항 신설), 잘 다뤄주도록.
2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한 올해 세계 100대 지도자 순위 내용. 전 대통령 20위, 김대중 6위. 보도하지 말 것.
시종 이런 식이다. <말>지 원문 PDF에서 일부를 타이핑해 옮겼는데 보도지침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86년 7월에 터진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관한 날짜별 보도지침을 마저 정리한다.
■ 부천서 성고문 사건 관련 보도지침
1986년 7월
9일
▲부천서 형사의 여피의자 폭행 (추행) 사건은 당국에서 조사 중이고 곧 발표할 예정. 「성폭행 사건」으로 표현하면 마치 기정사실화한 인상을 주므로 「폭행 주장 관련」으로 표현 바꾸도록.
10일
▲부천서의 「성폭행 사건」
① 현재 운동권 측의 사주로 피해 여성이 계속 허위진술.
② 검찰서 엄중 조사 중이므로 내주 초 사건 전모를 발표할 때까지 보도를 자제해줄 것.
③ 기사 제목에서 「성폭행 사건」이란 표현 대신 「부천 사건」이라고 표현하기 바람.
11일
▲부천서 성폭행 사건, 검찰 발표 때까지 관련된 모든 기사를 일체 보도하지 말 것. 부천 사건의 검찰 발표 시기에 관한 것이나 부천 사건 항의 시위, 김대중의 부천 사건 언급 등 이와 관련된 일체를 보도하지 말 것.
12일
▲「부천 성고문」 관계는 발표 때까지 일체 보도 자제 요망. 모든 보도를 자제할 것.
15일
▲「부천 성고문 사건」은 계속 보도를 자제할 것. 오늘 기독교교회협의회(NCC) 등 6개 단체에서 엄정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는데 이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16일
▲부천 성폭행 사건, 계속 발표 때까지 보도를 자제할 것.
17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보도지침
① 오늘 오후 4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 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②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 (크기는 재량에 맡김)
③ 검찰 발표 전문은 꼭 실어줄 것.
④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아 줄 것.
⑤ 이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고 하지 말고 「성모욕 행위」로 할 것.
⑥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 보도 내용은 불가.
⑦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 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NCC, 여성단체 등의 사건 관계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19일
▲18일 오전 8시부터 서울 기독교 회관에서 NCC 인권위원회, 여성위, 구속자 가족 등이 공동으로 부천 사건 폭로대회를 가질 예정. 이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부천 사건 변호인단 회견은 회견했다는 사실만 보도할 것.
▲신민당의 확대간부회의 결과(부천 사건 규탄)와 의원 4명의 노 총리 방문, 항의한 사실은 조그맣게 실어줄 것.
20일
▲범야권의 「부천 성폭행 사건」 규탄대회 관계(명동성당)
① 경찰 저지로 무산된 사실은 2단 이하로 조그맣게 싣고 사진 쓰지 말 것.
② 이 사건과 관련해 김수환 추기경이 피해 당사자인 권 양에게 편지 보낸 사실과 신민당 대변인의 집회 방해 비난 성명은 간략하게 보도할 것.
③ 재야 5개 단체의 재수사 촉구 성명은 보도하지 않도록.
※ 안전기획부 측, 「명동집회」는 홍보조정지침 대로 보도할 것을 요망.
▲KSCF(기독학생회총연맹)의 부천 사건 규탄 회견은 보도하지 말 것.
23일
▲대한변협, 부천 성고문 사건 재조사 요구는 1단 기사로 처리할 것.
▲명동 수녀들의 성고문 규탄 기도회는 1단 기사로 처리하기 바람.
※ 일부 신문에 김 추기경 강론 요지가 실렸으나 즉각 삭제시켰음.
30일
▲미 국무성, 『부천 성고문 사건에 유감』이라는 논평은 보도하지 않도록.
▲부천 성고문 사건에 대한 각 단체의 항의 움직임은 보도하지 않도록.
▲민추협, 항의단 구성해 각 언론사 순방하면서 항의(김형배 총리실 전문위원의 『양심선언, 명동성당 데모 참가』 등을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고). 이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서울의 봄'과 언론 ④]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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