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극우·보수 진영과 수구 언론에서 '메시아'라고 떠받드는 그의 일성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증오심과 자기 모순, 책임 회피뿐이었다. '5000만 국민의 문법'을 사용하겠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그동안 국회에서 보여주던 '비아냥'과 '증오심' '적개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미래 약속은 공허했고, 자극적인 언어만 남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형용 모순'

386 운동권 특권 세력이라더니…

민주 열망한 학생이 불멸의 역사?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취임 수락연설을 했다. 연설문은 그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설 시작부터 "중대 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년간 386이 486, 586,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드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 세력과 결탁해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나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연설 도중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언급했다.

'개딸 전체주의'는 국민의힘과 비명계, 친이낙연계 등에서 이재명 대표 측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최근엔 수구언론에서 이 대표 지지층에 대한 '혐오 조장'과 '낙인 찍기'를 위해 자주 인용하고 있다. 한 비대위원장이 이러한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불거지는 것을 차단하고, 지난 대선에서 만든 '비호감' 프레임을 되풀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 비대위원장의 '개딸 전체주의' 발언은 청년 여성 중심의 정치 참여 활동을 폄훼하고, 또다시 한국 사회를 남녀 갈등, 세대 갈등으로 밀어넣는 언어 도단에 지나지 않는다. 0.73% 차이로 가까스로 대권을 거머쥔 세력의 차기 주자가 함부로 깎아내릴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딸'(개혁의 딸)은 지난 대선 기간 '이재명 악마화' 프레임 속에서 청년 여성들이 중심이 돼 주류 프레임과 기득권 카르텔에 반기를 든 하나의 정치 현상으로 등장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은 가능할 수 있지만 '전체주의'라는 용어와 섞어 깎아내리는 것은, 한 비대위원장이 이날 연설 내내 수차례 언급했던 '동료 시민'이 얼마나 배타적인 개념인지를 스스로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하다.

아울러 한 비대위원장은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이 '강력한 시대 정신'이라고 했지만, 이는 그의 현실 인식의 한계만을 보여준다.

한 비대위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선 표면적 이유는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자초한 위기 상황을 타파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운동권 특권'이라는 프레임으로 돌리는 것은 그가 당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며, 협소한 정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할 뿐이다. 그가 내세운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은 국민 다수가 동의할 프레임도 아니다.

한 비대위원장의 운동권에 대한 역사 인식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민주화에 기여한 386세대를 '특권' 세력이라고 폄훼하면서도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과 넥타이 부대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불멸의 역사가 되셨다"고 말했다.

한 장관이 말한 80년대 신군부 독재에 항거한 학생과 넥타이 부대가 지금의 386세대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총선서 도망치는 한동훈, 대선 몰빵?

당은 '험지' 출마로 내분 일어나는데

본인은 몸사리며 전권만 휘두르겠다?

이날 한 비대위원장의 수락연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 중 하나는 본인의 '불출마 선언'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선당후사(先黨後私)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저는 선당후사는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선민후사(先民後私)해야 한다"며 "오늘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선민후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험지 출마도 어렵고 수도권 선거도 만만찮은 상황에서 총선을 불출마함으로써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등에서 정권 심판 바람이 거센 가운데, 국민의힘은 험지 출마를 두고 내분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공천 등에 대해 전권을 휘두르면서도 본인의 책임은 최소화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또한 그는 '선민후사'를 내세우며 "승리를 위해서 뭐든 다하겠지만, 이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이는 표면적으로 불출마를 통한 자신의 헌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후 검사 출신 공천과 당내 반발이 전망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과실'을 취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당내 견제 세력과 '정치적 거래'가 성사되지 않도록 사전에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한 비대위원장은 차기 대권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불출마에 힘을 실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보궐선거 참패 이후 혁신위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장제원 의원이 버스 90대를 대절하며 도전하고 영남권 의원들이 험지 출마에 반발하는 등 당권 장악의 한계를 경험한 바 있다. 자신의 장악력이 확고하지 않고, 정치 자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측근인 한 비대위원장은 이를 보강하고, 향후 대선까지 바라볼 수 있는 카드로 활용이 가능하다.

김건희 특검법 악법이라고 또 주장

그러면서도 당정 수직관계 아니다?

대통령실 비판은 단 한 마디도 없어

이날 수락연설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의 당정 관계 인식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한 비대위원장은 수락연설 뒤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당정 관계에 대해 "수직적이니 수평적이니 나올 부분이 아니"라며 "각자 상호 협력하는 동반자 관계라는 게 옳겠다"고 했다. 또 "(당정은) 서로 보완하고 동반자적 관계이지, 누가 누구를 누르고 막고 이런 식의 사극에나 나올 법한 '궁중 암투'는 지금 이 관계에선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자기모순에 불과하다. 한 비대위원장 본인은 윤석열 수사팀 일원으로 오랜기간 대통령과 상명하복 관계를 이어왔다. 그런만큼 정치권에선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는 윤석열 '친정 체제' 강화, '윤심 공천'으로 해석돼 왔다. 사실상 '윤석열-김건희 사당 시즌2' '완전한 검찰당'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작금의 여당 상황을 대통령실과 수평적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한 비대위원장이 기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또다시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충분히 갖고 있다"며 '호위무사' 역할을 자처한 것은 당정 관계가 수직적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 안팎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대통령과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특검을 거부하는 것은 대통령실과 당이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만 증명할 뿐이다.

게다가 한 비대위원장은 민주당과 지지세력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고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반성하자"고 말했지만, 정작 '용산 전체주의'로 비판받는 윤석열 정권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과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음에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스스로 대통령실과 종속관계, '아바타'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한동훈의 모호한 언행과 흐릿한 미래

질문도 '사전 조율'한 것만 받고 퇴장

이밖에 한 비대위원장은 수락연설에서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다" "정교하고 박력있게 준비된 정책을 국민들께 설명드리고 즉각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정교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이 위대한 나라와 동료 시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기려는 것이다" 등의 발언을 내뱉었지만, 모호한 언어 투성이었다. 정치 신인으로서 신선한 언어를 구사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어렵다.

민감한 질문에는 회피로 일관했다. 그는 현장에 취재진이 몰려들었지만, 사전 접수한 질문 4개만 받고 퇴장했다. 내일(27일) 탈당이 예정된 이준석 전 대표와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도 "우리 당은 자유민주주의 정당이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이 모일수록 강해진다. 앞으로 취임하게 되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을 진영과 상관없이 만나고 경청할 것이다"라며 모호한 답변만 내놨다.

극우·보수 세력과 수구언론이 그를 '메시아'라고 부르기엔 그의 성경 두께도 '한 장 짜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총선 정책 비전과 관련, "인구재앙이라는 정해진 미래에 대비한 정교한 정책, 범죄와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든든하게 보호하는 정책, 진영과 무관하게 서민과 약자를 돕는 정책, 안보·경제·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과학기술과 산업혁신을 가속화하는 정책, 자본시장이 민간의 자율과 창의, 경제 발전을 견인하게 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에도 빈틈없는 정책, 넓고 깊은 한미 공조 등 세계 질서 속에서 국익을 지키는 정책,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는 원칙있는 대북 정책, 기후 변화에 대한 균형있는 대응정책, 청년의 삶을 청년의 입장에서 나아지게 하는 정책,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정책, 지역경제를 부양하는 정책, 우리 모두의 생활 편의를 개선하는 정책 등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려야 한다"고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특별한 비전, 철학은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