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로 끝난 미국 빅3 자동차 동시 파업과 그 성과

힘겨운 후퇴의 오랜 시간 끝에 찾아온 반격의 순간

기업별 실리주의로 불평등 확대와 노조의 약화

노동조합 민주주의 확대와 새로운 투쟁 물결 시작

여론의 압도적 지지 속에 바이든도 현장 방문 응원

교훈을 남기며 노동운동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줘

지난 9월 15일부터 시작해 거의 두 달 동안 미국 사회를 흔들었던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이 11월 말에 마무리됐다. 파업은 ‘빅3’라고 불리는 지엠(GM), 포드(Ford), 스탤란티스(Stellantis)의 노동자들이 같이 파업에 들어가서 같이 끝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파업이 UAW의 통쾌한 승리로 끝났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앞으로 4년간 임금을 25% 인상하기로 했고, 물가 상승에 따라 임금을 추가로 올리는 ‘인플레 연동 생활비 조정제도’(COLA)도 복원하기로 해서 임금은 사실상 33% 인상된다. 시간당 16달러 정도였던 신입 노동자의 초임은 28달러로 올리고 숙련 노동자의 최고 시급은 32달러에서 40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공장 폐쇄에 대한 파업권을 보장하기로 했고, 임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보호 등도 얻어냈다.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도 이번 합의 내용을 적용하기로 했다. 3사 사측은 노조원들에게 파업 기간에 대한 수당도 하루 100달러씩 지급하기로 했다. 포드와 스탤란티스는 68%, 지엠은 55%의 노조원이 합의안에 찬성했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노조원들의 분위기를 반영해서, 파업을 이끌었던 숀 페인(Shawn Fain) UAW 의장은 앞으로 더 강력한 투쟁을 제안하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지부 노조원 862명이 12일 미국 루이스빌에 있는 포드의 켄터키 트럭 공장 바깥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2023 10.12 [AP=연합뉴스]
전미자동차노조(UAW) 지부 노조원 862명이 12일 미국 루이스빌에 있는 포드의 켄터키 트럭 공장 바깥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2023 10.12 [AP=연합뉴스]

이번에 체결한 계약이 끝나는 2028년에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5월 1일 ‘메이데이 총파업’을 하자는 야심 찬 주장도 나온다. 더구나 다음번에는 빅3를 넘어서 더 많은 자동차 회사가 함께 파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미국에 공장이 있는 현대차, 도요타, 혼다, 닛산, 폭스바겐, BMW, 벤츠, 볼보와 더 나아가 테슬라 같은 전기차 업체에서도 노조를 조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미 이번 파업 결과에 압박받아 토요타가 9%, 혼다가 11%, 현대차가 14%의 임금 인상을 발표했다. 빅3의 파업 결과를 보고 직원들이 불만을 품고 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알아서 양보한 셈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UAW가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구 휴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일이다. UAW는 더 나아가 ‘전쟁에서 평화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연구 실무 그룹을 구성했다.

미국 노동조합들이 전통적으로 친이스라엘이었고, 군수산업에서의 고용과 일자리 때문에 이런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더 인상적인 일이었다. 이는 가자지구의 처참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젊은 노조원들과 다인종 노조원들의 요구가 많아진 결과였다. 이런 변화는 이번 파업의 승리가 UAW 노조원들의 자신감을 높이며 정치적 의식의 발전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오랜 후퇴의 시간 끝에 찾아온 순간이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와 발전은 고무적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1980년대부터 얼마 전까지 미국 노동운동을 지배한 것은 ‘기업별 실리적 노동조합주의’였다. 노동자들이 부문의 벽을 넘어서 단결하기보다는 기업별로 사측과 교섭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방향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권은 평조합원들보다 상층 간부와 협상 전문가들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조합원들의 실리를 얻는다면서 비조합원이나 신규 직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양보교섭을 하고 합의했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면서 비정규직을 늘리고, 부품 제조를 비노조 하청업체들로 아웃소싱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외면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특권적 노동귀족’이라는 공격에 더 쉽게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런 방향을 주도한 노조 지도부들은 대개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하거나 교체할 수 없었고, 같은 집단이 계속 지도부를 배출하면서 수십 년 동안 거의 교체되지 않았다. 그들은 ‘실리주의’에 따라서 쌓아놓은 조합비를 투쟁과 조직화에 쓰기보다는 월스트리트의 헤지 펀드나 사모 펀드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으려고 했다. 권한은 집중돼 있는데 감시와 통제가 어렵다 보니 부정부패도 자라났다.

2018년에 트럼프 정부의 법무부가 UAW를 조사해서 노조 간부들의 500만 달러 횡령을 문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였다. 수백만 달러의 노조 기금을 횡령해서 적발된 노조 간부들이 2021년까지 12명에 달했고, 2명의 전임 위원장이 투옥됐다. 이런 상황은 노조원들의 자신감과 노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노조는 성장하지 않고 쇠퇴했다. 1980년대에 150만 명이 넘었던 UAW 조합원 규모는 40만 명이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번 파업을 이끈 UAW 최초의 직선 의장 숀 페인 United Auto Workers President Shawn Fain speaks during a rally in Detroit, Friday, Sept. 15, 2023. The UAW is conducting a strike against Ford, Stellantis and General Motors. (AP Photo/Paul Sancya)
이번 파업을 이끈 UAW 최초의 직선 의장 숀 페인 United Auto Workers President Shawn Fain speaks during a rally in Detroit, Friday, Sept. 15, 2023. The UAW is conducting a strike against Ford, Stellantis and General Motors. (AP Photo/Paul Sancya)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서 기업주와 노동자들 간의 격차와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 노동자들의 ‘실리’도 줄었다. 예컨대 빅3 자동차 업체의 수익은 2013∼2022년 동안에 92%나 급증했고, 이들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은 40%나 올랐지만, 자동차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30% 감소했다. 제조업 전반에서도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 시급은 2008년 경제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20% 가까이 감소했다.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시카고 교사 파업부터였다. 당시 교사 노조는 여성과 다인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민주적으로 대변했고, 자신들의 요구를 지역사회 노동계급 가정의 공교육에 대한 요구와 연결했다. 새로운 물결 속에 지난 몇 년간 아마존, 스타벅스 등에서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졌고 올해에도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의 장기 파업이 있었다. 이것은 “친노조”를 자처하는 민주당 조 바이든 정부가 등장하면서 더 탄력을 얻었다.

민주당 정부의 계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노동운동에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마치 한국에서도 2016년 촛불 혁명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 이후에 노조 조직률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했다. UAW에서 더 중요했던 것은 내부적 개혁 운동이었다. ‘민주노동자연합’(UAWD)이라는 현장조직은 4년 전부터 지도부 직선제와 부패 척결, 조합원들과 민주적 소통을 강조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 성과로 올해 UAW 역사상 최초로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된 인물이 숀 페인 의장이다. 페인은 9월 15일 88년 만의 3사 동시 파업을 호소하면서 노조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기업들은 산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이들을 움직일 수 있다. 함께 일어서서 그 산을 옮길 준비가 됐는가?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일어서서 역사를 만들어 가자.” 

페인은 보통 사측 대표와 노조 대표가 악수하며 시작하던 교섭의 전통을 뒤집었다. 공장 정문에서 출근하는 ‘조합원과의 악수’로 파업을 시작했다. ‘밀실 협상이 아닌 공개 협상’을 약속했고, 실제로 모든 협상 과정과 내용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조합원들에게 보고했다. 기업별로 진행하며 적당히 양보하고 근속 연도에 따라 차별하는 교섭이 아니라, 3사 노동자 모두의 공동 요구와 저임금 비정규직의 요구를 우선하며 교섭했다. 

 

노조 파업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는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 미국 노조 활동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방송 장면에서
노조 파업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는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 미국 노조 활동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방송 장면에서

또 자신들의 투쟁은 “경제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억만장자만의 경제’를 문제 삼는 것”이며 단지 노조원만의 투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노동계급과 부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억만장자 계급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의 싸움이다.” 이런 호소가 효과를 나타내며 ’갤럽‘ 여론조사에서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75%나 됐다.

미국의 주류언론들과 트럼프, 공화당마저도 노골적으로 파업을 비난하지는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동차 회사들이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았다”면서 “노조가 노동 현장과 산업 전반의 기준을 상향하고 임금을 인상하며 모두의 이익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다가오는 대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직접 파업 현장을 방문해서 응원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좌파가 비판했듯이 이번 UAW 파업은 3사에 속한 조합원 모두가 전면 총파업에 들어가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런 무기를 언제든 꺼내쓸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3사의 주요 공장들부터 파업에 들어가서 파업 공장을 하나씩 늘려나갔다. 무작위로 파업 공장을 늘려가며 사측이 대비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방식을 ‘스탠딩(Standing) 파업’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1만 3000명의 조합원이 파업을 시작했는데 한 달 후에는 22개 주의 8개 공장과 38개 부품업체에서 5만 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머지 조합원들도 태업하고 초과 근무, 주말 근무를 거부하며 힘을 보탰다. 빅3 사측은 파업의 타격으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LG, SK 같은 외국 회사와 합작 투자이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까지 노조 계약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버티던 사측은 결국 물러서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 미국 미시간주 벨빌의 GM 물류 센터 바깥에서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9. 26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 미국 미시간주 벨빌의 GM 물류 센터 바깥에서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9. 26 [AFP=연합뉴스]

결국, 파업 6주 만에 빅3 사측은 주요 요구를 받아들이며 무릎을 꿇었다. 이러한 투쟁과 승리는 중요한 몇 가지를 보여주며 성과를 남겼다. 첫째, 기업과 부문의 벽을 넘어서 3사 동시 파업이라는 폭넓은 연대가 중요했다. 둘째, 조합원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민주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확인됐다. 셋째, 기업의 투자와 경영, 특히 녹색과 디지털 전환 과정에도 노동조합이 개입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넷째, UAW는 버니 샌더스로 대표되는 좌파 정치인들을 통해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고,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의 지지도 유리한 무기로 사용했다. 또 파업을 다가오는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고리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래서 트럼프까지 파업 현장을 찾게 했다. 즉, 이번 파업은 단지 경제적 투쟁이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투쟁이기도 했다.

이번 파업은 미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물결의 일부였으며, 동시에 그것을 더욱 파도치게 만들 수 있다. 올해 실제로 미국에서 노조의 파업 활동은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노동쟁의에 따른 노동손실일수도 올해 9월까지 1100만여 일로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상황을 과장하면서 지나친 낙관에 빠질 수는 없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과 파업 활동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지만 절대적 수치에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노동운동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물결이 기존의 관성을 넘어설 정도라고는 아직 말하기 어렵고, 민주당을 넘어설 정치적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관계는 투쟁에 도움이 되면서도 그것을 제약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내년에 만약 트럼프 정부가 재집권한다면 힘든 도전이 시작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 노동운동의 앞길은 아직 안개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번 빅3 동시 파업과 승리가 미국 노동운동에 희망을 보여 준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탄압 속에 있는 한국 노동운동에도 영감과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이번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숀 페인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힘이 보입니다. 노동계급의 미래가 보입니다. 이번 파업은 우리 노조와 우리 운동의 변곡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는 전 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행동의 촉구입니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돌입한 파업 첫날인 15일 디트로이트 중심가를 행진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일어서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기업의 탐욕에 맞서"라고 적혀 있다. 2023 09.15 [AFP=연합뉴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돌입한 파업 첫날인 15일 디트로이트 중심가를 행진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일어서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기업의 탐욕에 맞서"라고 적혀 있다. 2023 09.15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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