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복원하자며 대만·남중국해 수시로 건드려

한·영 정상, 대만해협 거론…중국 "언행 신중하라"

APEC 출국 전 북·중 겨냥 유엔사 국방장관회의도

중국, 정상회담 불발에 냉랭하게 "잠깐 소통했다"

미·일 맹종 한국, 동북아서 종속변수로 전락 위기

'북·중·러 밀착' 촉발한 장본인이 3국 협력 비판해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잠깐 만나고 있다. 2023 11. 16 [AFP=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잠깐 만나고 있다. 2023 11. 16 [AFP=연합뉴스] 

"국제적이고 다자적인 정상급 행사에서 양자 소통을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지만,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중국의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한‧중 정상이 왜 양자 회담을 열지 않았느냐'는 연합뉴스 특파원의 질문에 "시진핑 국가주석과 윤석열 대통령은 APEC 회의에서 잠깐 소통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 주석이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4시간,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는 1시간 각각 정상회담을 했지만, 윤 대통령과는 왜 회담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체급'을 감안해 "잠깐 소통"했으면 된 것 아니냐는 답변으로 들렸다.

이번에 윤 정부가 시 주석과의 회담 개최를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지만, 정작 시 주석은 16일 지나가며 윤 대통령과 악수하고 웃으며 1분여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냉랭한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작년 5월 취임 후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잦은 '참견'과 과도한 친일, 친미, 반중 행보 탓에 양국 관계는 1992년 8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했지만, 지난 9월 윤 대통령과 리창 총리(자카르타), 시 주석과 한덕수 총리(항저우) 회동, 그리고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을 위한 서울 고위급 회의(SOM) 개최 등을 거치면서 관계 복원의 기대를 높였다. 한때 우리 측은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도 거론했으나 결국 김치국부터 마신 모양새가 됐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3.11.14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3.11.14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대중 메시지 '오락가락'…훈계조에 본말전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윤 정부의 대중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다는 점이다. 관계를 복원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계속 갈등과 대립 상태로 가자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정책과 행동도 따로 놀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는 지난 14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등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7개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 및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신원식 국방장관 주재로 진행된 한국-유엔사 국방장관회의다. 정전협정 체결 70년을 맞아 참전국들을 유엔사 깃발 아래 다시 결집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제2의 한국전쟁 시 공동 대응을 명분 삼아 전쟁기구로서 유엔사의 부활을 모색한 자리였지만, 궁극의 표적은 중국임은 공공연한 비밀이어서 반발은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마오 외교부 대변인은 당일 정례 브리핑에서 "유엔군'이라는 것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고 일찌감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면서 "관련 국가가 '유엔군' 간판을 내걸고 회의를 여는 것은 대결을 야기하는 것이요,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고, 반도(한반도) 형세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은 관련 국가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해 사리를 취하는 행동을 중지하고, 실제 행동으로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윤 대통령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한 유엔사 부활에 총대를 멘 직후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시 주석에게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한 꼴이 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18일 평양에서 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환영 연회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10.19.  [조선중앙통신 누리집 캡처] 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18일 평양에서 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환영 연회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10.19.  [조선중앙통신 누리집 캡처] 연합뉴스

'북·중·러 밀착' 촉발한 장본인이 3국 협력 비판

영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20일 공개된 텔레그래프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뜬금없이 영국 국빈방문과는 관계없는 중국을 걸고 들어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먼저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증진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우리 정부는 상호존중, 호혜 및 공동이익에 따라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 발전을 지향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며 "중국이 러시아, 북한에 동조하는 것은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는 물론, 다른 국제 규범도 노골적으로 위반한 북한 및 러시아와 3국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자국의 국제적 명성과 위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말해 중-북-러 '3국 협력'은 도움이 안 되니 중단하고 북-러에 압력을 가해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윤 대통령의 인식은 본말이 뒤바뀌었다. 중-북-러 3국을 밀착시킨 게 한-미-일 3국 군사동맹화이고 그걸 위해 지나친 친미, 친일, 반중 행보를 보였던 게 다름 아닌 윤 대통령 본인이어서다. 중국엔 '방귀 뀌고 성내는' 걸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내정간섭'이라고 느낄 만큼 훈계조의 발언이어서 중국의 신경을 자극했을 법도 하다. 당연히 중국은 불만을 드러냈다. 마오 대변인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국제 및 지역 문제에서 중요하고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중국은 무엇이 우리의 책임과 이익인지 잘 알고 있고, 무엇을 해라 말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연합뉴스

관계를 복원하자며 대만·남중국해 수시로 건드려

이 게 다가 아니었다. 중국엔 핵심 이익으로 일종의 '역린'(逆鱗)이라고 볼 수 있는 대만 문제를 또다시 건드린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은 북한의 핵 위협,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긴장 요인 등 여러 지정학적 리스크 요인을 안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남중국해를 포함한 역내의 규칙 기반 해양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대만 문제를 거론할 때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 정책을 재확인함으로써 일정한 선을 지키는 미국, 일본과는 달리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그야말로 '도발적'이다.

물론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오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 내정이고 어떠한 외부 세력도 간섭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중국해와 관련해서도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는 문제를 잘 처리할 능력과 자신감, 지혜가 있다"며 "한국은 남중국해의 당사자가 아닌 만큼, 참견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틀 후인 22일 리시 수낵 총리와의 한‧영 정상회담을 마치고 채택한 '다우닝가 합의'(Downing Street Accord)에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를 아예 구체적으로 못 박은 것이다. 합의문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해, 역내에서의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 일체를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명시된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하여 국제법에 대한 확고한 공약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누가 봐도 두 나라 정상이 중국을 겨냥한 것인 만큼 중국으로선 한국이 곱게 보일 리가 없을 것이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리시 수낵 총리와 '다우닝가 합의'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23 [공동취재] . 연합뉴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리시 수낵 총리와 '다우닝가 합의'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23 [공동취재] . 연합뉴스

한·영 정상, 대만해협 거론…중국 "언행 신중하라"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은 숙고한듯 이틀 뒤에 나왔다. 마오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분할 불가능한 일부분이고 대만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 내정에 속하며 어떠한 외부 세력의 간섭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한국이든 영국이든 모두 당사자가 아니고, 소위 '항행과 비행의 자유'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괜히 당사자도 아니면서 끼어들지 말하는 얘기다. 마오는 그러면서 "중국은 관련 당사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 문제를 바라볼 때 언행에 신중하고 스스로 알아서 잘하기를(好自爲之)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국빈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지난 4월 19일 보도된 로이터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중국-대만 갈등에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그런 변화에 절대 반대한다. 대만 문제는 단지 중국과 대만 간의 이슈가 아니라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이슈"라고 말해 중국의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부용치훼'(不容置喙·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비외교적 표현을 써가며 타국 정상을 비난하는 극단적 일도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있다. 2023.8.18.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있다. 2023.8.18. AFP 연합뉴스 

미, 일 맹종 한국, 동북아서 종속변수로 전락 위기

이런 와중에 26일 부산에서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다. 대면으로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는 것은 2019년 8월 베이징 이후 처음이다. 올해 의장국인 한국은 3국 정상회의 연내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유독 한‧중 정상회담만 불발되고 윤 대통령의 거듭된 대만과 남중국해 관련 발언 여파로 볼 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일단 중국은 한‧중 양자 관계가 냉랭해도 3국 간 협력까지 거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마오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3국 협력은 우리 3국 공동이익에 이바지하고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유익하다"고 말했다. 이번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정상회담 연내 개최에 합의해도 중국에선 시 주석 대신에 리창 총리가 참석하게 된다.

이번 부산 3국 외교장관 회담을 기회로 박진 외교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따로 만나 양국 관계를 가로막는 불신을 해소하고 관계 복원 계기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중 메시지의 일관성과 메시지와 행동의 일치가 요구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에 윤 대통령은 미국, 중국과 모두 정상회담을 한 기시다 일본 총리완 달리, 기시다와 페루, 칠레 정상하고만 만나고 의장국인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도 정식 회담을 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정학 결정 과정에서 미·일만을 맹종하는 한국은 '종속변수'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상징적 장면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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