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의 '낡은 뉴라이트' 수입해 상품화

동아일보 기자였을 때 '뉴라이트' 기획해 홍보 열중

'언론 생태계 교란'으로 방통위장 석달 안돼 탄핵 대상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후보자 신분으로 지난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8.18 연합뉴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후보자 신분으로 지난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8.18 연합뉴스

방통위원장 이동관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이동관이 뉴라이트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그걸 자랑스러워한다는 내용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평소 자신이 뉴라이트를 네이밍해 ‘정치 이념 시장의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자부해왔다.”(한겨레 2023.8.23)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에 따르면, ‘뉴라이트’란 명칭은 이동관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최홍재 씨와 함께 술자리에서 만들었다고 한다.”(신동아 2008년 9월호) 같은 기사들이다.

1960~1970년대 낡은 이념 수입해 히트상품 만든 이동관

이는 사실이 아니다. 뉴라이트라는 말은 이미 1950년대 일부 미국 언론인들과 학자들이 사용하던 용어다. 1962년에는 미국의 한 우익 학생단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용어로 뉴라이트라는 말을 채택했다. 그런가하면 1964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대선 캠페인 중에 ‘미국식 자유주의’(사회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뉴라이트라는 말을 꺼내 들기도 했다. 이 말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것은 미국의 극우-보수 세력이었다.

한편 독일에서는 1960년대 중반 극우적 독일민족민주당(NPD)에서 갈라져 나온 ‘지적인 청년 우파’가 뉴라이트를 자칭했다. 이들이 1964년에 창간한 <청년 포럼 Junges Forum>은 ‘뉴라이트의 새로운 저널 제1호’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뉴라이트는 1970년대부터 시차를 두고 이스라엘, 그리스, 이란, 호주, 뉴질랜드, 칠레, 폴란드 등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각국의 극우-보수 세력은 뉴라이트를 내세우며 이념투쟁을 전개했다. 지역에 따라 올드라이트와 갈등을 빚기도 하고 제휴를 모색하기도 했다. 뉴라이트는 이렇게 지구촌 곳곳에서 이념시장의 히트상품이 됐다.

그러므로 2000년대 초반 이동관이 뉴라이트라는 말을 만들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이동관은 뉴라이트라는 낡은 상품을 들여와 한국에 소개한 수입상이라고 보는 게 옳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8.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8.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기자 이동관의 수입상품 판매 비법 

어쨌거나 이동관이 수입한 뉴라이트는 한국에서도 히트 상품이 됐다. 이동관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이던 2004년 편집국에 ‘뉴라이트 기획’ 연재를 제안했다.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첫번째 꼭지는 뉴라이트의 등장 배경을 전하는 ‘왜 움직이기 시작했나’였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과 각종 경제정책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기존 보수층의 퇴행적 행태와 성격에 대한 자성도 뉴라이트 그룹이 태동한 요인이다. (…) 새로운 사회현상이랄 수 있는 뉴라이트의 출발점은 ‘기존 보수층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자성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등 기존 정치권과도 뚜렷이 선을 긋고 있다.” (동아일보, 인터넷판 기준 2004.11.7)

다른 건 몰라도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은 이동관 등 뉴라이트 인사들이 몇 년 뒤 이명박 정부(2008.2~2013.2)에 대거 입성한 사실에 비춰보면 헛소리로 결론났다고 봐야 한다.

기획자인 기자 이동관도 나서 수입상품의 장점을 알렸다. “보수의 간판으로는 주류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면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라이트’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동아일보 2004.11.17)

동아일보의 ‘뉴라이트 기획’은 2005년 2월 23일까지, 25회에 걸쳐 히트상품의 위세를 과시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비슷한 시기 뉴라이트 단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겨났다. 2004년 11월 자유주의연대가 창립됐다. 2005년 11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만들어졌다. 2006년 4월 뉴라이트재단이 출범했다.

‘언론 생태계 교란’으로 취임 3개월도 안돼 탄핵 대상 돼

이동관은 이후로도 대한민국을 ‘뉴라이트 공화국으로 만들고싶다는 희망’을 반복적으로 드러냈다. 윤창현 등 여러 저자가 함께 쓴 ‘평등의 역습’(2019)이라는 책의 에필로그에 이동관은 이렇게 쓴다.

“일시 왼쪽으로 옮아간 진동추를 오른쪽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정통 보수의 가치를 견지하는 것과 함께, 더 젊고 미래지향적인 어젠다를 선점하려는 절치부심의 노력이 필요하다. (…) 어느 때보다 절치부심의 각오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다가오는 제21대 총선은 희망의 2022년을 위한 예비고사가 될 것이다.”

에필로그의 제목은 ‘준비 없는 세력에 미래는 없다 - 어젠다 선점을’이었다. 이동관의 ‘어젠다 선점’은 ‘뉴라이트가 어젠다를 선점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뉴라이트 법통을 이어받은 윤석열 정부가 이동관이라는 올드보이를 부른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이동관은 지난 8월 28일 방송통신위원장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이동관이 한 일이란 방송 장악, 공영방송 이사진 해임, 언론 검열과 땡윤뉴스 부활 획책 등 언론 생태계 교란뿐이었다. 오늘날 취임 3개월도 안 된 이동관이 탄핵 대상이 된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탄핵’과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법 수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탄핵’과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법 수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노조 기자회견문]

용산발 방송장악 폭력배들을 이동관 탄핵으로 분쇄하자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이 언론현장을 폭력으로 물들이고 있다. 12일 임명된 박민 KBS 사장은 편성규약과 노사 단체협약까지 어겨가면서 <더 라이브> 등 주요 시사프로그램 폐지와 보복 인사를 통해 윤석열 낙하산 사장의 첫 행보를 시작했다. 이번 인사이동으로 영전한 대다수는 ‘바이든-날리면'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했던 인물들이다. <더 라이브> 편성 폐지는 제작진과의 충분한 협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뤄졌다. 취임 이틀째인 14일, 그동안 KBS보도가 불공정했다며 박민 사장이 머리를 조아린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저들의 거칠고 추잡한 폭력으로 국민의 뜻이 아닌 용산의 뜻을 대변할 인물을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투하한 윤석열 정권의 저의는 이제 온 국민이 다 알게 됐다. 언론을 권력의 나팔수로 여기는 대통령의 저열한 언론관 말이다. 언론현업인들과 국민은 이미 이 같은 정권의 야욕에 제동을 건 바 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영방송의 정치독립을 위한 방송3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KBS, MBC, EBS를 정권의 입맛대로 휘두르지 말고 국민에게 돌려달라는 시대적 요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권력의 야욕을 멈추고 방송3법 개정안을 즉각 공포하라. 방송3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그 자체로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독재적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미 윤석열 정권에 등돌리고 있는 성난 민심이 폭풍처럼 몰아칠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여당이 ‘언론장악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있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도 거듭 분명히 요구한다. 방송3법을 ‘언론노조 영구장악법'이라며 허위선동으로 악다구니를 쓰던 여당은 법안 처리 저지 필리버스터까지 포기하며 본회의 차수를 종료시켜 이동관 탄핵을 저지했다. 공영방송이 이제야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음에도, 여당은 언론장악 집행관 이동관을 사수하고자 제 자존심을 내다 바친 것이다. 그 꼴이 측은하고 가엾다. 이미 이동관은 방통위 2인 체제 폭주, 공영방송 이사 불법 해임, 법적근거 없는 가짜뉴스 타령으로 위헌적 검열 획책 등 탄핵 사유가 차고 넘친다. 이번 KBS 사태로 이동관 탄핵 사유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 노릇을 하며 폭주기관차처럼 언론 생태계 전반을 더럽힌 이동관 체제의 방송장악위원회를 이제라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이동관 탄핵만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다.

36년 간의 투쟁으로 방송법 처리를 이뤄냈지만 아직 우리에겐 할 일이 남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법 수용과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을 위해 끝장 농성 투쟁에 들어갈 것이다. 용산발 방송장악 폭력배들을 이동관 탄핵으로 분쇄하자!

2023년 11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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