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표에 눈먼 국힘, '서울 쏠림' 노골적 퇴행
당대표 직속 특위 발족, 부산 5선이 위원장 '황당'
구리시장도 "서울 편입 적극 동참…'구리구' 돼야"
성남‧광명‧고양 줄줄이 "우리도 당론 추진해달라"
여론은 반대 압도적…인천·경기조차 65.8% "반대"
신중하던 민주 "무책임 극치"…이재명 "정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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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빠르게 가!"
국민의힘이 '서울 확장론'에 시동을 걸자마자 마구잡이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를 시작으로 서울 주변 여러 도시를 편입하는 이른바 '메가 서울'이라는 거대 담론을 불쑥 꺼낸 뒤 거침없이 여론몰이 중이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주요 정책을 밀어붙이는 윤석열 정권 특유의 '좋빠가' 방식이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가 지난달 30일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김포 편입론을 공식화한 직후부터 채 사흘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당 차원의 특별법 제정 방침과 당 대표 직속의 추진 기구 출범을 확정하고 각종 장밋빛 청사진을 선전하는 '말잔치'를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 국가 백년대계이자 헌법에 명시된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고려는 실종됐다. 지방 소멸과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한 치밀한 논의는커녕 거꾸로 '서울 쏠림 현상' '서울 일극주의'를 더 심화시키는 퇴행적 포퓰리즘으로 일관하고 있다.
절차와 내용상의 조악함과는 상관없이 당장은 정국 이슈를 주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여기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친윤 언론들이 맞장구를 치며 바람을 잡자 신이 나서 질주하는 형국이다. 무조건 서울의 덩치만 키우고 보자는 식의 급조된 행정구역 개편 계획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현실화한 여권 내 수도권 위기론의 돌파구 차원에서 평지돌출했다. 국정운영의 한 축인 집권여당이 총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당리당략에만 눈이 먼 채 노골적인 정치공학적 기획을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듯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2일 김포시 편입 등 '메가시티 서울' 구상을 다룰 '수도권 주민 편익 개선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위원장에 조경태(부산 사하구을) 의원을 임명했다. 수도권 편입 문제를 다루는 데 엉뚱하게도 부산에서만 5선을 한 조 의원을 위원장으로 발탁하자 당 안팎에서는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초 경기도당 위원장인 재선의 송석준(경기 이천)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조 의원이 최종 낙점됐다. 국민의힘은 처음엔 태스크포스(TF) 수준을 검토했지만 '메가 서울' 구상을 포괄적으로 논의한다는 차원에서 특위로 격상시키고 명칭도 '김포'로 제한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우선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위한 특별법을 이번 주 안에 당론으로 발의하기로 했다. 일반법이 아닌 특별법으로 추진하는 것은 특별법이 일반법 상위에 놓이는 만큼 다른 관련 법안들을 일일이 개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입법보다 여러모로 절차가 간소한 의원 입법 형식을 취하기로 한 것도 '속도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표 발의자로는 유의동 당 정책위의장이 유력하다.
국민의힘은 김포뿐 아니라 성남, 하남, 구리, 광명, 과천, 고양, 부천 등 다른 인접 도시들도 서울에 편입될 수 있다고 군불을 떼고 있다. 경기 지역 주민들의 현실적 부동산 욕망 등을 자극함으로써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 때 경기도에서 전체 59석 중 겨우 7석(민주당 51석·정의당 1석)을 얻어 대패한 바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며 '경기북도 설치'를 추진해온 김동연 경기지사나, 성남을 정치적 텃밭으로 두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견제 효과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당은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필요한 조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 대표 직속으로 특별위원회를 발족한다"며 "서울 인근 김포와 유사한 도시에서도 주민 뜻을 모아오면 당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민 뜻'이라는 형식적 전제를 깔고 있지만 사실상 대놓고 애드벌룬을 띄운 셈이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 출신 박수영 의원은 "고양, 구리, 하남, 성남, 남양주, 의정부, 광명 등도 주민의 뜻을 묻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메가시티로 주민 불편을 덜어드리고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작금의 트렌드"라고 부채질을 했다.
당내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 편입 대상 도시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백경현 구리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 상황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서울시 편입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시민 의견을 적극 수렴하기 위해 여론조사와 공청회 등을 열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구리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백 시장은 서울 광진구나 중랑구로 흡수되는 것이 아닌 '구리구'로서 편입돼야 한다는 구체안까지 제시했다. 그는 "구리시가 서울시로 편입되면 교통 인프라가 향상되고 부동산 등 자산 가치의 상승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포시를 제외하고 경기도 내 지자체 중에서 서울 편입 방침을 공식화한 곳은 구리시가 처음이다. 백 시장은 지난해 12월 15일 경기북부 8개 시장·군수와 함께 '경기북부 특별자치도' 설치를 촉구하는 결의문에 서명하는 등 경기북도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중앙당에서 메가 서울 구상이 나오자 입장을 곧바로 바꾼 것이다.
성남시의회 국민의힘 시의원들도 보도자료를 내고 "성남시 편입 가능성도 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다. 성남시의 서울시 편입을 환영한다"며 "성남시의회에서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적극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권태진 국민의힘 광명갑 당협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광명시의 서울권역 통합이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 정식으로 중앙당의 당론으로 확정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호언하며 이미 주민 서명운동에 돌입한 상태다. 김종혁 국민의힘 고양병 당협위원장 역시 "김포뿐 아니라 고양시도 서울로 편입해 행정권과 생활권을 일치시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난리법석에 가까운 이상 과열에 대해 당내에서도 서울 지역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승환 중랑을 당협위원장은 페이스북에서 "편입 대상 지역과 인접한 서울 시민의 의견이 더 소중하다"며 "서울의 확장은 인접 서울 지역의 부동산과 교통 인프라 등에 필연적으로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 자칫 부동산의 심리적 요인이 무너지고, 교통 빨대 효과로 기존 서울 외곽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재섭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경기도 일부의 서울 편입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새로운 서울을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있는 서울부터 잘 챙겨야 한다"면서 "김포, 구리, 광명 하남 등의 서울 편입은 설익은 승부수"라고 지적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김포 등 서울 근접 중소 도시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58.6%로 집계됐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그 절반 정도인 31.5%에 그쳤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0.0%로 조사됐다.
대부분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메가 서울' 해당 지역인 인천·경기에서 반대 의견이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65.8%를 기록했다. 찬성은 23.7%에 불과했다. 서울에서도 반대 60.6%, 찬성 32.6%로 나왔다. 이밖에 대전·충청·세종(반대 67.5%, 찬성 25.5%)과 부산·울산·경남(52.9%, 41.1%)도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대구·경북에서는 반대와 찬성 의견이 각각 45.7%, 44.3%로 비슷했다.
해당 정책을 추진할 적합한 주체를 묻는 질문에는 '경기도나 서울시'가 적합하다는 응답 비율이 33.6%로 가장 높았다. 이어 '김포 등 서울 근접 기초 단체'(20.2%) '중앙정부'(13.2%) '국회나 정치권'(12.6%)의 순이다. '기타 또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0.4%였다. 정책 추진 배경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는 응답이 58.8%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 주민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27.3%이며,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3.9%였다.
종합하면, 국민들은 김포 등의 서울 편입 추진이 정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반대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며, 이를 추진한다고 해도 국민의힘이 아닌 경기도나 서울시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는 무선(96%)·유선(4%) 자동응답 방식,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이뤄졌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거 판세에 미칠 파급력 등 수도권 여론의 추이를 신중하게 살피며 대응을 자제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입장을 내놨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김포시 서울 편입 방안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주 69시간제를 그냥 던졌다가 '이거 말이 안 되네, 그럼 하지 말지 뭐' 식으로 대혼란을 야기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며 "이 중대한 국가적 과제를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훅 던졌다가 '이거 저항이 만만치 않네' 하면서 슬그머니 모른 척하는, 이런 방식의 국정 운영은 정말 문제"라고 말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현실성 없는 행정구역 개편 논의보다는 김포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5호선 연장 문제를 시급히 처리하기 위해 예타 문제와 연장 문제에 대해 협조하겠다. 정부가 안을 가져오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 내년도에 5호선 연장 사업이 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민생 정책 차원에서 접근했다.
이개호 정책위 의장은 좀 더 직설적으로 "사안 자체가 참으로 뜬금없다. 정치적 의도에 따른 국민 갈라치기로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의힘이 특별법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한다고 하는데, 특별법을 제정하려면 사전에 주민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고 경기도와 서울시 등 관련 지자체간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이러한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을 지켜 주기 바란다"고 했다.
김성주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김포를 서울시로 편입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주장은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며 "교통난이 심각하면 김포 골드라인 해결책을 내놓으면 된다. 진지한 대책이 아니라 얄팍한 술수를 내놓고 판을 흔들었다고 희희낙락하고 있지만 서울시민은 '서울 먼저 챙겨라', 부산에서는 '서울이 작다고? 그러면 부산은?'이라고 반문한다"고 전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전날 동행한 기자단과 만나 "황당하기 짝이 없다"면서 "경제와 민생을 뒷전으로 하고 국민 갈라치기를 하더니 이제는 국토 갈라치기까지 하고 있다.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이라면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추진하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대한민국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경제 정책인 데 반해 여당 대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계산에 불과하다"며 "지금 시점에서 김포시민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지하철 5호선 노선 확장과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통한 조속한 추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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