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낙인찍으며 이스라엘 비판 완전 봉쇄

블랙리스트 작성, 징계, 교수 해고에 살해 위협까지

팔' 인권 모임 예정 호텔엔 폭탄 설치‧폭파 위협도

대학 기부금 중단, 잡오퍼 철회, 개인신상 털기도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의도…매카시적 억압 직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진입이 임박한 가운데 1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하버드대 교정에서 학생들이 팔레스타인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10.14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진입이 임박한 가운데 1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하버드대 교정에서 학생들이 팔레스타인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10.14 [AFP 연합뉴스]

미국 대학가가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을 구실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17일째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서 '지옥도'를 연출하는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가 확산하자 친이스라엘 세력이 극단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서다.

그 양태도 다양하다. 대학 당국에 팔레스타인지지 행사 취소 요구, 반유대주의로 여겨지는 학생들의 블랙리스트 작성 및 수사 요구, 시위 허용 대학을 상대로 한 시민단체 고발, 대학 당국 압박을 통한 이스라엘 비판 교수 해고 요구 등이며, 살해 위협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주이시 커런츠>(Jewish Currents)는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에 대한 매카시적 반발'이란 20일자 기사에서 "지난 몇 년간 이스라엘지지 단체들은 팔레스타인 지지 정서가 미국의 어떤 다른 곳보다 더 뚜렷한 캠퍼스의 대중 담론을 감시해 왔다"며 하마스 공격을 계기로 "대학들이 이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진원지여서 바로 보복의 집중적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주 소재 <주이시 커런츠>는 진보적이고 세속적인 유대계 언론 매체다.

 

이스라엘 군이 가자 남부 칸 유니스의 건물을 폭격한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폐허가 된 장소에 모여들고 있다.  2023 10. 23.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이 가자 남부 칸 유니스의 건물을 폭격한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폐허가 된 장소에 모여들고 있다.  2023 10. 23. [로이터=연합뉴스]

'아이비' 학생들 "이스라엘의 억압이 폭력의 뿌리"

기사에 따르면, 지난주 예일과 다트머스, 프린스턴의 학생 단체들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인종 청소와 16년간의 가자지구 봉쇄를 거론하고 현 폭력 사태의 뿌리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에 있다는 내용의 연대 성명서들을 붙였다. 또한 34개 학생 단체가 공동 서명한 8일 하버드대 팔레스타인연대위원회 성명서도 "이스라엘 정권이 모든 폭력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했고, 9일 예일대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도 성명을 내고 "민간인들의 비극적 죽음을 애도하며 그 책임은 그 시오니스트 정권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반발은 신속하고도 거셌다. 하버드 학생 성명 발표 이틀 만에 이 대학 교수진 350여 명이 이스라엘인에 대한 "집단 살인을 용인하는 것과 진배없다"는 내용의 편지에 서명했고, 몇몇 미 의회 의원도 규탄 대열에 동참했다. '애큐러시 인 미디어'란 우익 단체는 12일 트럭을 동원해 하버드대가 있는 캠브리지시를 돌며 "HarvardHatesJews.com"(유대인 증오하는 하버드)이란 웹사이트를 통해 학생조직 일원으로 여겨지는 학생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영국 유대인 공동체 회원들이 22일 런던에서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들의 안전한 귀환을 촉구하며 이스라엘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 10. 22. [EPA=연합뉴스]
영국 유대인 공동체 회원들이 22일 런던에서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들의 안전한 귀환을 촉구하며 이스라엘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 10. 22. [EPA=연합뉴스]

블랙리스트 작성, 징계, 교수 해고에 살해 위협까지

컬럼비아대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을 상대로 식당에서 조롱하거나 히잡을 찢고, 카피예(아랍인이 머리에 쓰는 사각형 천)를 썼다는 이유로 침을 뱉는 일이 있었다. 또한 12일 열린 친이스라엘 집회에선 이 대학 관계자가 학생 기자들에게 팔레스타인 집회 참가 학생들이 "죽기를" 바란다고 해 충격을 주었다. 급기야 컬럼비아대 총장은 18일 교수와 임직원,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내고 "이 순간을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에 대한 편견,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 그리고 다른 다양한 형태의 증오를 확산하는 데 활용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자들에 대한 위협과 괴롭힘을 막는 데는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징계로 이어지는 사례도 꽤 있다. 뉴욕주의 로클랜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매디 워드란 여학생이 이스라엘 단합대회장을 지나가면서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롭게 될 것" "팔레스타인을 위한 유대인들"이라고 외친 것 때문에 19일 대학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징계 심사 이전에 이미 수강 신청에서 배제됐으며, 징계 심사 도중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도 박탈됐다고 한다. 워드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범죄시하고 억압하려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지지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비영리 법률 자문단체인 '팔레스타인 리걸'(Palestine Legal)은 이 대학에 보낸 편지를 통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조와 정당한 법적 절차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썼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과의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 10. 23. [AFP=연합뉴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과의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 10. 23. [AFP=연합뉴스]

"테러리스트" 낙인찍으며 이스라엘 비판 완전 봉쇄

다른 대학에서는 팔레스타인 학생 운동가들에 대한 위협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지난 12일 브루클린 칼리지 집회에는 공화당 소속 뉴욕시티 의회 여성의원이 보란 듯이 총을 휴대하고 나와 집회 중인 학생들에 "하마스 지지자" "폭탄만 없지 테러리스트와 다름없다"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들'(SJP) 브루클린 칼리지 지부의 한 학생은 "위협을 느꼈다. 많은 학생이 생명에 위협을 느낀 것 같았다"고 전했다. 또한 매사추세츠 엠허스트대의 SJP 간부들도 인스타그램에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권" 옹호 포스트를 붙이자 살해 위협들이 줄을 이었다. 루야 하제옌 공동지부장은 "불안하게 느껴 일주일 동안 강의실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고, 학교 당국도 당분간 수업 면제 조치를 내렸다.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교수들과 학교 행정직원도 공포를 느끼긴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리걸'의 라디카 사이나스 수석 변호사는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교수들이 심문받고 개설 과목이 취소되고 이메일이 폐쇄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친이스라엘 기부자들은 대학 당국에 직접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례로 상당수 하버드대 기부자는 대학 당국이 하마스 공격과 학생들의 성명서에 대한 비난을 신속하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집트 적신월사 직원들이 21일 라파 통로에서 가자주민을 위한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이 통과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2023. 10. 21. AFP 연합뉴스 
이집트 적신월사 직원들이 21일 라파 통로에서 가자주민을 위한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이 통과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2023. 10. 21.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의도…매카시적 억압 직면"

관련 학생들의 취업에도 영향이 크다. 하버드 학생들의 성명서가 발표된 이후 상당수 기업의 CEO들이 성명에 서명한 단체 소속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대학 당국을 압박했다. 실제로 유명 법무법인인 데이비스 폴크는 하버드 성명서와 컬럼비아 성명에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학생 3명의 잡오퍼(일자리 제의)를 철회했다. 뉴욕대(NYU) 로스쿨의 학생 회장인 라이너 워크먼은 잡오퍼 철회는 물론, 추가적 괴롭힘까지 당한 사례다. 그는 10일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표명하고 "엄청난 죽음"을 거론하며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뉴스레터를 로스쿨 학생회에 보냈다. 그러자 법무법인 윈스턴앤스트론의 잡오퍼가 철회됐고, 하버드 로스쿨 학생변호사협회는 학생회장 제명 투표에 들어갔으며 NYU 법조 동창회는 대학에 제적을 요구했다. 워크먼은 "나는 온라인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또한 나를 향한 괴롭힘은 흑인, 동성애자 등 내 정체성의 모든 측면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리걸'에 따르면, 하마스 공격 다음 날인 8일 이후 팔레스타인 권리 지지를 위협하는 사건이 200건 가까이 접수됐다. 지난해 1년동안 처리한 사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사이나스 변호사는 "팔레스타인 인권을 지지하는 트윗이나 소셜 미디어 메시지 탓에 해고된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비판해 "온라인과 웹사이트의 '대학 테러 리스트'(College Terror List‧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학생들까지 망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의도를 진정으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매카시적 반발과 억압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라시드 할리디 컬럼비아대 교수도 18일 미국의 비영리 매체인 <데모크라시 나우>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동정을 표시하면 테러리즘과 동일시 하는 '매카시 시대'(1950~1954년 미국을 휩쓴 반공주의 광풍)로 가고 있다"면서 FBI(미 연방수사국) 요원이 학생 운동가들을 찾고 기업주들은 인도주의적 감정을 표현하는 종업원들을 엄중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이스라엘의 고통에 관한 주문(呪文)만을 읊어야 한다"며 "이런 일들이 학계, 대학에서,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군의 폭격이 16일째 이어진 가운데, 가자지구의 데이르 엘-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에서 22일 팔레스타인 의사들이 갓 태어난 미숙아를 치료하고 있다. 2023 10. 22. [AP=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의 폭격이 16일째 이어진 가운데, 가자지구의 데이르 엘-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에서 22일 팔레스타인 의사들이 갓 태어난 미숙아를 치료하고 있다. 2023 10. 22. [AP=연합뉴스]

팔' 인권 모임 예정 호텔엔 폭탄 설치‧폭파 위협도

이런 공포 분위기가 대학가만 휩싸고 있는 건 아니다. 팔레스타인에 동정을 표시하는 민권 단체와 다른 기구들도 타깃이다. '팔레스타인 권리를 위한 미국 캠페인'(USCPR)의 집행국장은 13일 뉴욕주 로체스터의 한 이슬람 종교 센터에서 연설할 예정이었지만 잇따르는 위협을 우려한 센터 측이 행사를 취소했다. '위트니스 팔레스타인'이 조직한 팔레스타인 영화제도 영화관이 안전을 이유로 취소하는 바람에 온라인 상영으로 바꿨다. 텍사스주의 힐튼 호텔도 "우리 팀 멤버와 손님들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이유로 USCPR 행사를 취소했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선 미국의 최대 이슬람 민권 단체인 '미국 이슬람관계위원회'(CAIR)가 연례 총회의 초점을 팔레스타인 인권 문제로 바꾼 뒤 호텔 측은 "호텔 주차장에 폭탄을 설치하고, 특정한 호텔 직원들을 집에서 살해할 것이며, 호텔을 폭파할 것"이란 익명의 협박 전화들을 받아 결국 CAIR은 총회 장소를 은밀한 곳으로 옮겼다고 '팔레스타인 리걸'은 소개했다.

사이스 변호사는 "이번 탄압의 성격은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어떤 것과도 다르고 훨씬 더 집중적"이라면서 "그러나 특히 가장 젊은 세대들을 비롯해 양심 있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리스크가 있지만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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