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취임 1년, '최악'이라던 당 위기 '벼랑 끝'에

'민주당 원망 정치' 함몰, 비례의원 경박한 처신도

배타적 페미니즘 정당 인식 고착…대중과 유리돼

강서 득표 1.83% 처참…"지도부 사퇴" 내분 격화

금태섭·양향자까지 함께하자는 '제3지대론' 봇물

'용혜인 현상' 천착 대신 '안철수 국민의당' 좇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오른쪽)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회에서 김희서 대변인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배진교 원내대표. 2023.10.16. 연합뉴스
정의당 이정미 대표(오른쪽)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회에서 김희서 대변인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배진교 원내대표. 2023.10.16. 연합뉴스

"지난 1년간 정의당의 혁신 노력이 국민들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채찍질로 받아들입니다. 뼈를 깎는 성찰과 근본적 변화가 없이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게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2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내놓은 메시지다. 그러나 정의당에게 더 이상 '뼈를 깎는' 정치적 의미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 28일 선출돼 만 1년째 당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취임 당시 '최악'이라던 정의당의 위기는 그새 오히려 심화해 벼랑 끝까지 도달했다. 수없이 뼈를 깎는다고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고 재기의 여지는 더욱 희박해졌다.

'노회찬의 죽음' 이후 정의당은 갈수록 모호해지는 노선과 정체성 속에 '배타적 페미니즘 정당'으로 일반적 인식이 고착화하는 한편 비례대표 의원들의 경박한 처신까지 더해져 진보층을 포함한 기층 민중‧대중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유리돼왔다. '민주당 원망 정치'에 지나치게 함몰된 나머지 '윤석열보다 이재명과 각을 세우는 정당'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한 채 확장성은커녕 비호감 이미지를 강화했다. '민주당 2중대'보다 '진중권 2중대'로 비치는 게 더 타격이 컸다는 점도 깨닫지 못했다.

 

류호정 X 진중권 '류진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류호정 X 진중권 '류진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렇게 존재감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상실해온 결과는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도 드러났지만 특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받은 참담한 성적표를 통해 여실히 확인됐다. 정의당 역시 '총선 전초전'으로 규정했던 이번 보선에 사활을 걸고 임했으나 득표율은 초라함을 넘어 처참한 지경이었다. 권수정 정의당 후보는 불과 1.83%(4451표)를 얻었는데, 이는 1년 7개월 전 대선 때 '충격적'이라던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 2.37%보다도 저조한 결과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정의당에 뚜렷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구성원들로서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나 이미지 쇄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혁신 재창당'을 추진한다지만 연합정치 대상인 녹색당 역시 보궐선거 득표율이 0.21%에 불과할 정도로 당세가 미미한 데다 상호 논의 자체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민주노총과의 연대도 마찬가지다.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이 속한 소장파 그룹 '세 번째 권력'에서 주장하듯 금태섭 전 의원과 양향자 의원 등 '제3지대'와의 연대를 통한 '빅텐트' 추진은 아예 진보정당으로서 근간을 허물며 제 무덤을 파게 될 가능성이 높다.

 

28일 서울 강서구 우장산역 사거리에서 열린 정의당 강서구청장 후보 선대위 출정식에서 권수정 후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3.9.28 [정의당 제공] 연합뉴스
28일 서울 강서구 우장산역 사거리에서 열린 정의당 강서구청장 후보 선대위 출정식에서 권수정 후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3.9.28 [정의당 제공] 연합뉴스

정의당은 연전연패에 시달리며 입지가 옹색해지는 가운데 당의 현실과 진로를 놓고 오래전부터 사분오열로 치달아왔다. 이번 보궐선거 참패는 본격적인 내홍에 방아쇠를 당긴 격이다. 당장 이정미 대표의 거취 문제를 두고 요란한 파열음이 분출하고 있다. 이정미 대표는 '뼈를 깎는' 운운하던 지난 12일 상무집행위원회 발언 때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책임은 선거를 이끈 당 대표에게 있다"면서 "당을 다시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퇴는 거부했다. 지난 주말 대표단, 의원단, 광역시도당 위원장단 회의를 잇따라 개최한 결과 다음 달 19일 열릴 '혁신 재창당' 당대회까지 현 지도부 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16일 오후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현 지도부가 정의당의 근본적인 변화와 쇄신의 구체적인 안을 예정된 당대회에 내놓고 혁신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당원과 국민들 앞에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혁신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한 달 남은 혁신당대회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궐선거로 일시 중단됐던 혁신 당대회 일정을 신속히 추진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노선 변화와 총선 지도부 구성의 구체적인 내용을 당원들과 국민들 앞에 내놓을 것"이라며 "신당추진사업단을 정비하고, 노동과 녹색 정치세력,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분권과 자치를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과 높은 수준의 연대‧연합을 추진해 11월 19일 1단계 혁신 재창당 대회를 완료하고 정의당의 변화,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국민들로부터 재신임 받겠다"고 설명했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새로운 선택'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이 내빈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금태섭 전 의원, '한국의희망' 양향자 공동대표, 정의당 '세번째권력' 조성주 공동대표. 2023.9.19.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새로운 선택'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이 내빈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금태섭 전 의원, '한국의희망' 양향자 공동대표, 정의당 '세번째권력' 조성주 공동대표. 2023.9.19. 연합뉴스

이 같은 방침은 당내 곳곳에서 공개적인 반발 목소리를 촉발하며 자중지란을 가속화하고 있다. 당내 청년 조직인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변화 없는 지도부에 동참할 수 없다"며 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나아가 "이번 선거를 총괄 지휘한 이정미 지도부는 전원 사퇴해야 한다"면서 '녹색과 노동을 중심으로 한 이정미표 자강론'을 실패로 규정했다. 이 대표가 "제3지대 공간을 열어야 한다" "진보 통합으로 가야한다"는 다른 견해들을 묵살하고 '자강론'을 폈지만 결국 녹색당과 공조에 실패했고 진보 단일화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녹색당과 공조가 성사됐든, 제3지대 공간을 열었든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리는 만무한데도 김창인 대표는 인과관계도 막연한 '남 탓'으로만 일관했다. 게다가 평소 지도부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회견에서도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의 내로남불 정치'와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투표의 당위성'을 거론했다. 정치검찰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런 천진하고 화석화한 사고를 진보 정치로 착각하는 행태가 정의당의 오늘을 만들었음에도 그 장본인 중 한 명인 청년정의당 대표가 또 판에 박힌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는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대·박원석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 등이 참여한 '대안신당 당원 모임'도 입장문을 내고 "강서 보궐선거는 정의당에 대한 시민들의 마지막 경고"라며 "양당정치의 벽이 높았던 것이 아니라 관성에 갇힌 정의당의 벽이 더 높았던 결과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기반의 제3지대 확장을 모색하는 이들은 "이정미 지도부 총사퇴가 전면적 노선 전환의 출발"이라며 "전국위 권한까지 위임받는 전권 비상지도부를 구성해 '혁신, 재편, 확장'으로 나아가는 당의 노선 전환과 총선 지휘 책임을 맡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15일 정의당 주도의 정치그룹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의 출범식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나란히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2023.4.15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 제공] 연합뉴스
15일 정의당 주도의 정치그룹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의 출범식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나란히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2023.4.15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 제공] 연합뉴스

정의당 현역 의원들이 포함된 '세 번째 권력'도 마지막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정미 지도부의 실패는 보궐선거만의 패배가 아니라 자강론이라는 노선의 패배"라며 "1년 전과 비교해 정의당의 주요 정책 중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 수년간 말만 무성했던 녹색당과의 통합이나 노동운동 일부의 정의당 참가도 소문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3지대 신당 창당으로 노선을 전환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모든 것이 확인됐다"며 "자강론은 실패했고, 진보통합론은 불가능하거나, 실효성이 없다. 정의당은 양당 대안세력을 통합하고 제3당 건설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역시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요구했다.

진보층과 개혁적 중도층의 많은 촛불 시민이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을 대안으로 여기고 있지만 정의당은 이에 대한 천착은 없이 실체도 불분명한 '제3지대'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허상을 좇는 모습이다. 금태섭 전 의원과 양향자 의원에게 손짓하는가 하면, '세 번째 권력' 출범식에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박지현 민주당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하는 등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모델인 듯한 인상도 준다.

원칙 없는 '빅텐트'는 탄탄한 지지대가 없어 세우기도 어렵고 곧 쓰러지기 십상이다. 무너진 텐트 아래 깔려 지리멸렬하다 소멸하는 운명을 맞았던 한국 정당의 이합집산 역사에 정의당 또는 제3지대 신당이 추가될지 여부도 총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