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안전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교훈만을 도출
군사적 충돌 방지 합의를 없애자는 신원식 국방
힘에 의한 평화 주장의 허구성 드러낸 이번 사태
양심적 이스라엘인들의 성찰적 목소리를 들어야
남북 간 적대 부추기기가 낳을 재앙에 대한 공포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반도는 중동과 함께 군사적 긴장이 언제 무력 충돌로 발전할지 모르는 화약고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보복을 보면서, 이것이 한반도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에 따라서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반응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렇게 평화와 안전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교훈만을 도출하는지 그 어리석음이 낳을 재앙이 그려져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번에도 앞장선 것은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이번 중동 분쟁을 계기로 대북 방어 태세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9·19 합의 역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같은 군사적 충돌이 남북 간에도 벌어지지 않도록 막을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적대행위를 중지하자’고 만든 ‘합의’를 없애자는 말이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가 즉각 화답하고 나섰다. 수많은 비판과 결함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신원식 국방장관은 “최대한 빨리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는 또다시 ‘평화를 원한다면 힘을 키우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뻔한 소리를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사태는 그러한 윤석열 정부나 <조선일보>의 주장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낱낱이 보여줬다.
첫째,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는 ‘한미 연합군이 북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탐지·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시스템’을 구축해서 북한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래서 엄청난 국방비를 투자하고 값비싼 미국산 무기들을 수입해 왔다. 하지만 KAMD 시스템의 모델인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은 하마스가 이번에 단기간에 수천 발의 로켓을 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날아오는 로켓과 미사일을 또 다른 미사일로 다 맞춘다는 것부터 망상이었다.
둘째,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는 ‘강력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동맹이 북한을 포위하며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것을 위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도 외면하고,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도 눈감아 줬다. 하지만 한미동맹보다 더 오래되고 그 이상 가는 튼튼함을 자랑해 왔던 미국-이스라엘의 동맹도 이번 비극을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손을 잡으며 팔레스타인을 포위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재앙을 앞당겼을 뿐이다.
셋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부터 북한 미사일에 대해 “선제 타격 말고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선제공격과 전쟁 불사’론 속에서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얼어붙고 소통이 끊어져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수년 전부터 ‘하마스와 테러리스트들의 기반을 제거한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선제 타격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라는 열매를 낳은 씨앗이 됐을 뿐이다.
넷째,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이미 수천 명의 시민이 죽고 다치고 나서 이스라엘 정부가 ‘피의 보복’으로 하마스 제거를 다짐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이것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은 북한의 핵 사용으로 즉각적으로 사망할 수십만 명의 생명들에게 그 어떤 복수도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사태는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윤석열 대통령)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드러냈다. 중동 지역에서 다른 아랍 국가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과 핵무기까지 가진 이스라엘은 결코 평화를 얻지 못했고,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 이것은 이번 사태를 ‘이스라엘의 9.11’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2001년에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수천 발의 핵무기도 9.11 테러를 막지 못했다. 9.11 테러는 미국이 중동에서 석유와 패권을 위해 아랍인들의 희생을 강요해 온 결과이기도 했다. 3천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끔찍하게 죽어간 이후, 당시 조지 부시 정부는 보복을 위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더 끔찍한 참극이었다. 10년이 넘는 침략과 전쟁 속에서 아랍인 50만 명이 죽었고, 테러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초토화됐고, 미군 철수 이후에도 아직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정치인들도 이제는 그것을 ‘전략적 오판이자 지정학적 대재앙’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로를 증오하며 죽고 죽이는 재앙 속에서 남는 것은 슬픔과 절망뿐이다. 이번에 하마스가 보여준 폭력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비극적 열매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납치를 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무차별 총격과 구속이 있었다.
하마스가 축제를 즐기던 이스라엘 시민들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결혼식과 장례식을 하던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폭격하던 이스라엘 군대가 있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내쫓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 자체가 유엔도 인정한 불법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고 물, 음식, 전기까지 수시로 차단해 왔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 22%가 5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고 유아 사망률은 이스라엘보다 7배나 높다. 중동과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과 반대로 하마스의 ‘테러’로 죽은 이스라엘 사람을 비교하면 95:5라고 지적했다.
이 상황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지금의 참혹한 상황은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것과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어떠한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 극소수의 진보적 의원인 오페르 카시프Ofer Cassif의 주장이 옳다.
그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내 친구도 죽었지만, 이제는 재앙을 낳는 가자지구 점령을 끝내야 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인들도 해방시킬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영국의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바라는 유대인들’(Jews for Justice for Palestinians) 단체가 최근 올린 글에서 한 이스라엘 시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강제 수용소에 200만 명을 가두고 수시로 폭탄을 터뜨려 수천 명을 죽인다면 언젠가는 화산이 폭발할 것이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기는 싫지만 항상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 시민은 또 ‘이스라엘 군대는 시민들이 죽어갈 때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한탄하면서 "인질이 있든 말든 가자지구를 쓸어버리자"고 하는 네타냐후 정부의 장관들을 비판했다. 이어서 ‘아랍인들이 무기로만 대화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만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다 같이 성찰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목소리가 이스라엘 곳곳에서 더 많이 울려 퍼지며 ‘피의 보복’의 논리를 잠재우길 기대한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무모한 발언과 정책 속에 불이 붙고 있는 남북 간의 적대적 대결이 어느 순간에 군사적 충돌로 폭발할지 모른다는 걱정, 우리도 뒤늦은 이런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우려 속에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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