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혐의자 특정말라" 안했다더니 영장에 딱~

항명 혐의로 엮으려 '장관 지시' 설명 '제 발등 찍기'

지시 인정하고 보니 장관이 위법 명령한 셈

민주당, 사건 은폐 관련 특검법 발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9.4. 연합뉴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9.4. 연합뉴스

항명이라고 하자니 장관이 지시했다고 해야 하고, 장관 지시를 인정하자니 장관이 거짓말쟁이가 되고.

해병대 전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군사법원으로부터 기각 당한 국방부 검찰단의 상황이다. 국방부와 국방부 검찰단 입장에선 그야말로 자충수인데, 그 원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국방부와 국방부 검찰단 스스로가 만들었다.

지난달 30일 국방부 검찰단이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한 사전 구속영장청구서에는 7월 31일 채 상병 순직 사건 언론 브리핑이 돌연 취소된 직후 상황이 기술돼 있다.

검찰단이 작성한 영장에 따르면 언론 브리핑이 됐던 당일 국회 설명을 준비하고 있었던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은 오후 2시 10분 쯤 국방부에 들어가 우즈베키스탄 출장 직전이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경찰 이첩 보류 등 지시를 받고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했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같은 날 오후 4시쯤 해병대사령부 회의실에서 서북도서바위사령부 참모장, 해병대사령부 참모장, 공보정훈실장, 비서실장, 법무과장(법무실장 대리), 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받은 정 부사령관과 수사단장인 박 대령도 참석했다.

김 사령관은 정 부사령관에게 장관 지시사항을 설명하게 했고, 부사령관이 설명한 장관 지시사항은 다음과 같다. 이에 대한 검찰 진술은 김 사령관이 했다.

① 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 ② 수사 결과는 경찰에서 최종 언론 설명 등을 하여야 한다 ③ 장관이 8월 9일 현안 보고 이후 조사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④ 유가족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8.25. 연합뉴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8.25. 연합뉴스

그러나 해병대부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 즉 혐의자 '삭제' 지시를 받았다는 것은 그간 국방부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도 "혐의자를 포함시키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단이 영장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것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항명이 아니라는 박 전 단장 측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항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장관의 명령이 있어야 했고 이 때문에 장관 지시사항을 넣으면서 국방부 검찰단이 스스로 국방부 장관의 발등을 찍는 격이 됐다. 구속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무리수를 둔 셈이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에 따르면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졌던 지난 1일 지시사항과 관련, 박 대령 측은 장관이 국회에서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거짓말한 것이냐는 취지로 반박했고, 검찰단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당황스러워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국방부는 검찰단의 영장 기술 내용에 대한 보도가 쏟아져나오자, "군검사가 해병대부사령관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요약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장관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장관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 아니'라는 국방부 설명대로면 ① 부사령관이 장관의 지시사항에 대해 사령관에게 허위 보고 했거나 ② 사령관이 부사령관으로부터 받은 보고 내용을 검찰단에 허위 진술했거나 ③ 국방부 검찰단이 허위로 영장을 쓴 것이 된다.

사령관의 진술은 형사 소송 과정에서 방어권을 인정하는 취지라면 처벌 대상으로 보기 어렵지만, 부사령관이 만약 허위 보고를 한 것이라면 징계 등에 처해질 수 있으며, 검찰단의 영장이 꾸며진 것이라면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영장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5일 오전 항명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용산구 국방부 군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9.5. 연합뉴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5일 오전 항명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용산구 국방부 군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9.5. 연합뉴스

아울러 검찰단이 작성한 영장에 따르면 이 장관은 "수사자료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나 군사법원법 제2조과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제63조에 따르면 군사경찰은 △군내 성폭력범죄 △입대 전 범죄 △군인 등의 사망사건은 다른 수사기관에 이송하도록 돼 있다. 또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제209조는 군사경찰부대·수사부서장은 신속히 적합한 기관에 이첩·인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경우, 군인 사망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박 대령의 주장대로 신속하게 경찰로 이첩해야 한다. 법무관리관실에 자료가 단 한 장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영장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이첩 보류를 지시하며 "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한다" "장관이 8월 9일 현안 보고 이후 조사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고 했다.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하고 이를 9일이나 기다렸다가 장관의 현안보고 이후 이첩하라는 것은 위법 명령으로 볼 수 있다.

명령 자체가 위법인데,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명 혐의를 적용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박 대령의 영장이 최종 기각된 것은 군사법원에서 이러한 검찰단의 무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영장에는 장관의 현안보고 대상이 국회인지 대통령실인지 나와있지 않지만, 국회든 대통령실이든 보고 뒤 이첩하라는 지시 자체가 문제될 수 있다. 수사에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실이라면 수사 외압, 윗선 개입 의혹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관련한 보고 라인을 모두 수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난달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김 사령관은 "(8월 2일) 안보실 2차장이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 저한테 전화를 해서 관련 경과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렸다"고 밝힌 바 있다.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이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윤석열 대통령 등에게도 보고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이미 박 대령이 작성한 문건과 진술서, 녹취 등을 통해 'VIP(대통령)'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로 경찰에 이첩한다는 보고를 받고 '꽝꽝꽝꽝'하며 격노했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진술과 녹취가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수사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외압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안보실 임무는 대통령의 국정 전체를 보좌하는 것이지 특정 사안의 수사 과정 디테일을 파악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그런 디테일을 파악할 만큼 한가하신 분은 아니라 생각한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또 대통령실은 이종섭 국방부장관,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임기훈 국방비서관 등 사건 핵심 관계자에 대한 교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서는 윗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꼬리를 자르고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방해와 은폐를 막기 위해서라도 특검이 필수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7일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송갑석·최강욱·윤준병·김의겸·기동민·안규백·정성호·권칠승·김병주·송옥주·소병철·박범계·김영배·임종성·설훈·한정애·이탄희·이재명·주철현·윤후덕·임호선·김승원·박용진 등 법제사법위원회, 국방위원회,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TF 소속 의원이 중심이돼 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국방위 현안질의, 법사위 현안질의, 대정부질의를 통해서도,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의 수사외압, 은폐 의혹이 전혀 해명되지 못한 만큼, 이제 특검의 필요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병대원 순직 사고의 진실과 은폐 외압에 대한 모든 진실을 밝히고, 외압에 가담한 모든 자들에 대한 사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고(故) 채수근 상병의 순직 사건 관련 진상 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의 임호선, 박주민 의원, 지상록 경남도당 청년위원장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고발하기 위해 5일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로 들어서며 발언하고 있다. 2023.9.5.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고(故) 채수근 상병의 순직 사건 관련 진상 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의 임호선, 박주민 의원, 지상록 경남도당 청년위원장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고발하기 위해 5일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로 들어서며 발언하고 있다. 2023.9.5. 연합뉴스

박 의원은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특검 내용과 관련, "해병대원 사망 사건 그 자체와, 그것을 은폐하려는 시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며, 해병대원 사망 사건을 수사 범위에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데가 경북경찰청이지만 이미 이첩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여줬던 조직이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라서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특검 구성에 대해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4명을 추천한다. 여야가 추천하지 않는다"며 "대한변협이 추천한 4명 중 2명을 교섭단체인 야당이 골라서 대통령에게 보내면 대통령이 2명 중 1명을 임명한다. 대한변협 4명을 추천하는 구조는 과거에 여러 번 쓰인 적 있어 공정성에 대해 여당도 문제제기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선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라는 것은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고 굉장히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잘 판단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동행한 권칠승 의원은 "특검법을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외압 의혹을 자인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수사전담팀은 이날 오전 9시 30분 해병대 1사단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경찰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 해병대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박 대령 측이 1사단장을 직권남용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한 부분에 대해서도 들여본다는 입장이다.

 

고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지난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2023.7.22. 연합뉴스
고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지난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2023.7.22. 연합뉴스

해병대 1사단은 전날 사단 내 사찰인 해룡사에서 채 상병이 순직 49재를 추모하는 천도 위령제를 지냈다. 유족 20여 명이 참석했으며, 군에서는 해병대 사령관과 1사단장, 채 상병 소속 포병여단 동료 등 120여 명이 자리했다. 군은 채 상병의 희생을 기릴 수 있는 흉상을 해병대 1사단 사령부 인근 소나무 숲에 건립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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