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나라 ⑧] 정치의 핵심은 인사(人事)에 있다
만약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한편, 몽골에 칭기즈칸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과연 몽골인들은 세계 제패라는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까? 완전히 동일한 객관 조건에서 이순신은 항상 승리하고 반면 원균은 일패도지 참패했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객관 조건에서 칭기즈칸은 세계를 제패했지만, 몽골의 다른 인물들은 결코 그러하지 못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어떠한 사람이 그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그 형세와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다.
명군(名君)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명신(名臣)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본인 자체가 가장 뛰어난 인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인재의 등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특별한 탁월함은 더욱 빛난다. 세종이 인재를 등용하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능력이었고, 철저하게 능력 본위의 용인관(用人觀)을 보여 주었다. 천인 출신이나 기생의 아들이라 하여 물리치지 않았고, 또 능력이 있는 인물로 판단했을 경우에는 작은 허물은 최대한 덮어주고자 하였다. 서얼 출신 황희 정승과 천인 출신 장영실을 중용하고 ‘탐오(貪汚)의 죄과’가 있었던 조말생(趙末生)을 과감하게 기용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부분의 역대 제왕들은 자기에 충성을 다하는 친위 그룹이나 명문대가 출신의 인물을 기용하였다. 이에 비하여 세종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 분야에 열정적인 인물을 중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박연을 비롯하여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학식과 능력이 뛰어났던 정인지, 신숙주였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중요한 하나는 바로 그가 인재를 볼 줄 알고 기용했다는 점에 있다. 어릴 적부터 씨족과 친구의 배신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야 했던 그는 씨족과 민족 그리고 종교를 뛰어넘는 개방과 혁신으로써 오로지 능력과 충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한 인재 등용과 포용 정책으로 결국 세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 자신을 보좌한 명참모들을 모두 적으로부터 얻었다. 칭기즈칸에 대항했던 마지막 몽골 부족인 나이만의 한 신하는 그에게 문화의 유용함을 일깨워주었고, 몽골어를 문자로 정착시키는 일을 도와주었다. 호라즘과 전쟁을 벌였을 때에는 이슬람 출신의 측근으로부터 성읍(城邑)의 의미와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다. 또 칭기즈칸에게 정복당했던 금나라의 신하였던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에게 농민과 장인들이 생산해내는 물품은 과세의 대상으로 될 수 있음을 일러주었다.
중국 한 왕조 시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 무제는 인재 등용의 측면에서 탁월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능력을 중시하였다. 재상 공손홍은 원래 돼지를 치는 천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고, 어사대부 복식은 양치기 출신이었으며, 상홍양은 상인 출신이었다. 어사대부 아관, 엄조, 주매신 등도 모두 빈한한 평민 출신이었고, 어사대부 장탕, 두주, 정위 조우는 아전에서 선발되었다. 또 흉노 토벌의 명장 위청은 노예 출신이었고, 황후 위자부(衛子夫) 역시 노비 출신이었다. 그리고 한 무제는 흉노족과 월족(越族) 출신의 장군도 발탁하였는데, 예를 들어, 진미디(金日磾)는 궁중에서 말을 기르던 흉노 포로 출신의 노예였지만 한 무제는 죽기 전에 이 진미디와 함께 곽광, 상관걸의 세 사람에게 자신의 제위를 이을 어린 황제를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
당나라 태종은 즉위 후 “치국의 근본은 오직 인재를 얻는 데 있다”라고 천명하면서 “임용은 반드시 덕행과 학식을 근본으로 한다”는 용인(用人)의 기준과 “사람은 모두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용인 원칙을 세웠다. 그는 홍문관을 설치하여 천하의 인재를 모으고 다섯 차례에 걸쳐 ‘구현령(求賢令)’을 반포하여 각양각색의 뛰어난 인재를 자기 주위에 배치하였다.
당 태종의 용인은 가문족벌과 지역 그리고 친소관계의 제한이 없었다. 그의 대신 중에는 이세민이 당 왕조 건국 후 진왕(秦王)으로 봉해졌던 시기부터 수행하던 방현령, 장손무기, 두여회 등을 비롯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서무공, 진숙보, 정교금 등이 있었고, 원래 정적의 부하였던 왕규, 위징 등도 있었다. 또 수나라 말기의 유신(遺臣)이던 이정, 오세남, 봉덕이(封德彛) 등도 많은 업적을 남겼고, 미천한 출신의 주마, 손복가, 장현소도 커다란 활약을 하였다. 당 태종 수하에 가장 믿을 만한 무장이었던 울지경덕(蔚遲敬德) 역시 적으로부터 넘어온 인물이었다.
현능한 자를 알아보고 기용하는 것, 이것이 지도자의 가장 큰 능력이다
비단 동양만 이런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 인류 역사는 모두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의 근간이 인사(人事)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 링컨 대통령은 서너 명의 장군을 기용했다. 그 기용의 기준은 바로 ‘커다란 과오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에 의해 기용한 장군들 모두 남군(南軍)에게 계속 패배만을 당했다. 링컨은 이 대목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그러고는 술을 너무 좋아해 두주불사이지만 전략에는 뛰어났던 그랜트 장군을 과감하게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극력 반대했다.
하지만 링컨은 “만약 그가 무슨 술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나는 오히려 그에게 그 술을 몇 통 보내 모두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다”라고 응수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증명하였다. 링컨의 그랜트 장군 임명은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분수령으로 되었다.
평용(平庸)한 자를 기용하면 비록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큰 착오는 없고 지도자에게 순종한다. 또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비난받지 않아 지도자가 마음을 놓게 되고 대중들도 그다지 큰 의견을 제기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용은 많은 폐단을 가져온다. 이러한 사람은 실제로 덕과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서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을 하지 못하고 결국 커다란 손실을 초래한다.
인재를 얻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성취한 이유로는 성공적으로 천하의 인재들을 끌어들였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상앙을 비롯하여 장의, 범저, 이사, 여불위 등 진나라를 이끌었던 중신들이 대부분 외국에서 온 이른바 ‘외인부대’였던 점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유방과 항우가 천하의 자웅을 겨룰 때 승부를 결정한 배경에는 용인(用人)의 득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유방의 곁에는 한신과 소하를 비록하여 조참, 장량, 진평, 주발, 장이, 팽월, 경포, 노관,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 등 많은 현상양장(賢相良將)이 보좌하면서 마침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다. 가히 ‘인재(人才)의 경제(經濟)’였다.
반면, 항우 아래에 있던 현재(賢才)들은 모두 도망가서 거꾸로 유방의 편이 되었고, 오직 범증 한 사람만 있었으나 그마저도 중용하지 않아 결국 항우 자신 혼자만 남게 되었다. 항우의 패망은 필연적이었다.
민주당의 가장 큰 실패는 인사(人事) 실패에 있었다
인재 영입이라 하면, 흔히 관료나 교수 출신이 많이 거론된다. 그러나 관료들은 본래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우리 사회 관직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철저히 권위주의와 보수주의의 본산인 관료조직 문화의 타성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길이라 착시한다. 그래서 관료들은 대체로 공허한 내용에 지나지 않는 ‘수식(修飾)’을 특기로 삼고 실권자에 대한 ‘아부’를 가장 큰 능력으로 삼게 된다. 물론 창의성은 찾기 어렵다. 교수 출신들은 일반적으로 현실 문제에 대한 인식과 실무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관료 집단의 조직적 저항을 이겨낼 배짱과 강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릇 지도자란 인물을 알아보는 것(지인, 知人)과 그 인물을 선택하여 기용하는 것(택인용인, 擇人用人)에 뛰어나야 한다. 현능(賢能)한 인물을 알아보고 그를 기용하는 것은 지도자의 가장 큰 재능이다. 그러나 반대로 현능한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지도자의 가장 큰 과실이다.
오늘의 야당을 성찰해본다면, 실로 야당처럼 인재 영입에 능력이 없는 곳을 찾기도 힘들다. 문재인 정부는 예를 들어, 하필 노무현 정부 몰락의 가장 큰 요인인 부동산정책 책임자였던 인사를 그대로 임용하는, 상식적으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큰 과오를 범하였다. 다른 주요 인사들 역시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전혀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보다도 우선 정체성도 애매하거나 혹은 인품과 그릇 차원에서 문제성 있는 사람들을 기용하였다. 잘못된 인사 투성이였다. 그러한 잘못된 인사 중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은 당연히 백미였다.
사실 민주당은 그간 인재 양성은커녕 외부로부터의 인재 영입을 차단해왔다. 이 지점에서 너무 인색했고, 철저하게 자기 당파와 정파가 독점해왔다. 그렇게 기득권화하고 보수화해가면서 고인 물이 되어 스스로 대중과 고립되었다. 장기적인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전혀 부재했고, 위기에 닥치거나 선거 때가 되면 얄팍한 생색내기로 자파에 줄서기와 아부 잘할 것으로 확신하는 인사들을 여기저기서 모았다. 그런 식으로 광주 지역에 양모 의원을 공천하였고, 또 조모 의원을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선발’하였다. 항상 겉으로 드러난 거짓된 허명에만 매달렸고, 영입한 그 사람들로부터 훗날 뒷통수를 얻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좋게 말하면 순진했고, 정확히 말하면 무능했다.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스스로 작동시켜야
인재 양성과 선발에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당내외의 덕망 있는 인사들을 널리 조직하여 상시적인 인재 추천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용함으로써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작동시켜야 한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국가의 정당은 정치장학 재단이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에는 에버트재단, 기독교민주당(CDU)에는 아데나워재단, 자유민주당(FDP)에는 나우만재단이 있고, 녹색당, 좌파당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각 정당에는 정치장학재단이 있고, 그 밖에 개별 영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개인⋅지역) 재단들이 이 정치장학재단을 중심으로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 정당 재단에 소속하는 장학생들은 이 재단들이 개최하는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여 활발하게 정치학습을 하고 정치적 동지들로서 연대를 형성하여 나간다. 독일 연방수상 메르켈이나 슈뢰더 모두 이러한 배경에서 정치학습을 통하여 배출된 정치 지도자들이다.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빨리 쉽게 되는 것은 우선은 좋지만, 그것들은 반드시 오래가지는 못한다. 정치장학재단을 통한 후진 양성은 언뜻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정치발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이 답이며, 인재 양성이 활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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