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나라 ⑮] 근본을 잃으면 모든 게 흔들린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관료를 통제해야 할 정치권, 거꾸로 관료에 통제받고 있다

관료의 나라, 우리 사회에서 관료집단을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집단이 과연 존재하는가? 근본적으로 관료집단을 통제할 수 있고 또 견제해야 할 곳은 바로 정치권이다. 의회란 본래부터 민의를 대표한 기관으로서 행정권력,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정치권은 관료를 통제하고 견제하기는커녕 거꾸로 관료집단에 사실상 통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관료를 통제하고 견제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실력을 갖춰야 할 터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두 눈으로 분명하게 목격하듯 정치권은 실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아니 관료를 통제할 ‘의지’마저 철저하게 결여된 모습이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지만, 실제로는 관료집단에 끌려다니는 상황이다. 실력과 의지의 부재 탓이다.

한편, 정당이란 국가기관을 조직하고 정치를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은 국민의 혈세로 엄청난 정치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선거 때 반짝 장이 서는 ‘떴다방’에 지나지 않는다. 그간 사라진 정당만 해도 수십 수백 개다. 그저 출세와 한탕만 노리는 정치모리배들의 이합집산일 뿐이다.

정치권 그리고 정당이 골몰하는 건 오직 눈앞의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민’과 ‘국가’를 부르짖지만, 습관적으로 내뱉는 입에 발린 수식(修飾)이요 공염불의 헛된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들의 머릿속은 온통 권력욕으로 충만되어 있을 뿐이며, 오직 자신들의 출세와 공천 그리고 재선에만 ‘치열’하다. 여당을 기웃거리다 기회를 잃으면 야당을 기웃거린다. 이들에게 여당, 야당이란 단지 국회의원 자리를 위한 두 개의 기회 제공처일 뿐이다. 본디 마땅히 치열하게 연구하고 골몰해야 할 국리민복을 위한 국가 정책이란 단지 그들의 입과 구두선으로만 있을 뿐, 그들의 머리와 안중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 활동’이란 오직 재선을 향한 겉치레 인기영합에 있고, 그저 매일 같이 상대당을 비난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구나 정치권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미래의 적으로 간주하여 아예 싹을 자르거나 아예 정치권 진입을 봉쇄한다. 오직 자신들에게 아부하고 줄서기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만 무릎을 꿇려서 하부로 진입시킨다. 그러니 국회에 ‘입성’한 그들은 이제 단지 직업이 국회의원인 생활인일 뿐이다. 이렇게 패거리된 악화(惡貨)들이 양화(良貨)를 철저히 차단하고 구축한다. 이렇게 하여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정치권은 패거리 정치와 탐욕 그리고 무능의 극치로 치닫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오늘 이 나라가 이토록 혼돈을 겪는 근본적 요인과 관련하여 비단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회의 난맥상 역시 동시에 지적되어야 한다.

관료들 역시 오로지 자신의 승진과 출세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권과의 인맥쌓기와 줄서기에만 몰두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2023년 국회 국정감사 모습. 2023.10.27 연합뉴스
2023년 국회 국정감사 모습. 2023.10.27 연합뉴스

국회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

국회는 갑질의 대명사로 꼽힌다. 불신 대상 부동의 1위는 늘 국회가 맡아놓고 차지한다. 항상 거들먹거리고 큰소리치는 것이 오늘 우리 국회의 이미지다. 일반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입법 과정은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되어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국회는 거꾸로 국회 내의 관료집단에 많은 부분 장악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매일 같이 시끄럽게 내는 큰소리들은 빈 깡통으로부터 나오는 공허한 메아리일 경우가 허다하게 된다.

현재 국회의 입법 과정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우리 국회의 입법 프로세스에서 법안 발의 그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종결된다. 국회 공무원의 ‘검토보고’에서 부정적으로 결론이 나면 그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안들은 법안 검토 단계부터 모두 국회의원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아니 배제된 채 철저히 입법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 처리된다.

국회 입법관료는 비단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수행한다. 오히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이 검토보고는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보다 그 위력이 강하게 발휘되며, 사실상 독주하게 된다. 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행정부처 피심사기관들도 대체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수용’하는 자세로 심사에 응한다. 그래서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전문위원 한 명이 초선 5, 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국민을 대표하여 정부를 견제하고 관료들을 통제해야 할 국회가 이러한 상황이니 이 ‘관료의 나라’는 더욱 철옹성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입법, 의원 스스로 ‘검토’하고 ‘낭독’하라

- 국회가 진정한 국민의 대표로 거듭나기 위하여

몇 년 전,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국회 특수활동비를 공개한 바 있었다. 당시 언론들은 법사위 의원들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달리 월 50만 원씩 수령한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 언론도 예를 들어, 국회사무처의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의 수령액이 매달 150만 원씩, 즉 ‘권한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훨씬 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수령액보다 세 배 많다는 팩트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사위 소속 의원 월 50만 원,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 월 150만 원, 이는 정확히 양자 간의 위상 혹은 권력 차이의 반영이거나 최소한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전직 의원은 “뭐든 희망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 힘써드리겠다”라는 수석 전문위원의 말에 속으로 ‘이 사람들이 완전 자기들이 주인이고 우리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객(客)으로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회 전문위원이 갖는 이러한 막강한 권력의 원천은 바로 그들이 갖는 ‘검토보고’ 권한이다. 실제 상임위 소속 입법관료들 스스로도 검토보고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관료 121명을 대상으로 검토보고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 결과, 이들 입법관료 중 무려 90.8%가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폐되고, 견제 받지’ 않은 ‘감춰진 권력’이 언제나 가장 위험한 법이다. 박용진 의원은 국회의 한 수석 전문위원이 장충기 전 삼성 사장에게 보낸 민원 문자메시지 사건을 언급한 바 있었다. 그는 “로비에 의해 검토보고서가 편향되거나 일부 재벌, 아니면 로비 대상 단체에 의해 왜곡된 검토보고서가 올라가는 것이 확인된 것 같다”고 지적하고 관련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였다.

오늘날 국회 공무원은 이러한 ‘검토보고 권한’을 바탕으로 이미 가장 힘이 센 집단으로 그 위상이 변모하였다. 실제 행정부 고시(5급 공채)와 국회 ‘입법고시’를 동시에 합격한 경우 대부분 국회 쪽을 택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분명하게 반증해주고 있다.

최저임금법과 검토보고

문재인 정부 시기 큰 논란을 빚은 최저임금법의 일부법률개정안에서 이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은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실제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이 발생하고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이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을 미리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이 최저임금법의 문제처럼, 결코 입법관료의 단순한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될 수 없는 법률들과 문제가 이 나라에 너무도 많다. 이러한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라고 국민들이 자신의 대표로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며, 의원들의 이러한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정당이 존재하고 또 그 정당 소속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회 전문위원’이라 하면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외부에서 공채하여 임용된 사람들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이란 공무원 시험을 통해 수십 년 국회 조직에서만 근무해온 공무원이다. 물론 전문성이란 ‘개인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 그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득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적 전문성’ 외에도 ‘조직에 들어와 업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 업무를 통하여 획득하게 되는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전문위원의 경우, ‘개인적 전문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공직사회의 잦은 순환보직 근무 관행으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어느 수석 전문위원은 세 곳 상임위원회의 전문위원을 거쳤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국회 무력화’에 그 목적

국회 입법관료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라는 제도 때문이다.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는 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 규정에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하여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 조항이 오늘날처럼 국회 공무원의 권한으로 바뀐 것은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 때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른바 국보위의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조직은 1981년 1월 22일에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회법을 전면 개정했다. 여기에서 국회법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바뀌었다. 이렇게 하여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명문 규정으로 전환되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국회법개정의 목표와 기본방향에 대하여 “비리와 선동과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폐습에서 탈피하여”라고 되어 있고, 개정의 ‘주요 골자’에서는 “직업정치인의 독무대화 현상을 배제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유능 신인의 국정참여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전두환 신군부 측이 관료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는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 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여 선임하던 제도를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상임위원회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다.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거의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확실하게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이후 1981년 전두환의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의 명문화와 결합되어 전문위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고, 관료를 매개로 하여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여 관료집단을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국회가 정작 역으로 관료집단의 ‘관리’를 받는 존재로 된 현실이다.

전문성을 보유한 독일 정당을 본받아라

독일 정당의 정책 전문성은 정당의 전문성에 의해 좌우된다. 독일 의회는 입법 활동과 정책전문성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즉, 위원회에서 정당 간 협상을 하기 전에 각 정당이 상임위원회별로 특정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의 진행을 통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며, 의원들은 각 분야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정당 소속 정책 전문위원들과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당연히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증대되며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정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다.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각 교섭단체는 소속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다. 각 정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 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소속 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와 교섭단체 소관 워크그룹의 논증을 비교하여 어느 입장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의 표결 권고(당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각 의원은 여기에서 자기 당의 모든 의원과 최고위원회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해서 당론 구속이 존재하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해당 워크그룹 대표를 통해 소속 의원들에게 표결 권고(당론투표)를 전달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법적으로 이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매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당의 상임위원들은 소속 당 워킹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한 상임위원회 내에 전문 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 검토보고 위원을 둔다. 검토보고를 맡은 이 ‘위원’이 의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검토보고는 각 원내 교섭단체 의원의 직무로서 이 검토보고 의원은 상임위원회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의원들은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당 소속 워크그룹이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조율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워킹그룹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자 하면 스스로 법안이나 의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연정의 상황에 따라 연정 파트너와 조율을 하고 각 교섭단체별 의결을 거쳐 상임위나 본회의에 회부되어야 한다.

한편, 독일 의회의 경우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은 주로 각 교섭단체 정책위원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어 그 총수는 2004년 현재 837명에 이른다. 이 837명 중에는 행정인력, 기술인력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정책전문가와 비정책전문가 비율은 4 : 6 정도이다(참고로, 미국 의회에서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전문 인력은 18명의 전문위원을 포함하여 위원회당 평균 75명이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하여 인원을 배정받고 소수당은 최소 1/3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6년 현재, 독일 의회의 의원 정수는 598명이다. 각 교섭단체의 정책연구위원은 연방의회 소속 직원에 포함되는데, 이들의 채용, 계약, 보수는 각 교섭단체가 관할하며, 인원 배정은 교섭단체별 의원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는 별도로 각 위원회에는 우리나라의 4, 5급 상당 행정지원팀 공무원이 있는데, 위원회당 약 5명에 불과하다.

의회 입법이 철저히 실종된 ‘상표 사기’의 빈 깡통 가짜 국회

필자가 국회 기관에 근무하던 당시 한 중진 국회의원을 만나 국회 전문위원 제도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그는 국회의원들이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제도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상임위에서 법률안을 낭독하는 그런 일까지 우리 국회의원이 해야 하느냐”라는 ‘짜증’도 나온다고 했다. 그야말로 오늘 우리 국회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국회의원이란 국민들이 이 나라 입법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라고 선출한 것이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상임위에서 의원들이 직접 낭독하고 토론하고 심의한다. 그런 업무를 의원 본인이 하지 않는다면 ‘사무장 병원’과 같은 ‘가짜 병원’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 의회는 의원에 의하여 법안이 제출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은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의하여 소위원회에 넘겨지는데, 소위원회는 꼼꼼히 조문 하나하나를 검토, 심사하는 축조(逐條)심사를 수행한다. 물론 상임위원회에서의 이 모든 활동은 의원들 자신들이 직접 수행한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이 의원들에 의하여 직접 수행된다. 법률안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검토하며, 심의한 법률안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된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의원들 스스로가 법안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기본 업무로서 곧 본업이다. 그리고 당연히 의원들이 그에 따른 보고서도 작성하고 심의하며 표결한다. 지금처럼 우리 국회에서 공무원에게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대한 ‘검토 권한’을 부여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다. 이는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제2의 군대조직’으로서 권력의 충견으로 양육해온 관료집단에게 ‘실권’을 넘겨주면서 관행화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러한 전근대성과 비정상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비정상은 진정한 국민의 대표로서의 국회 발전과 민주주의의 큰 장애물이다.

근본이 흔들리고 본령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의회란 모름지기 입법을 근본으로 하며, 입법이 곧 의회의 본령이다.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아닌 다른 자들이 입법을 장악하게 된다면, 의회라는 존재 의미는 크게 동요하게 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은 당연히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국회의원이 본업인 입법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진정한 대표로서의 자격이 없다.

지금처럼 입법과정이 입법관료에 의해 사실상 장악된 상황에서 국회의원이란 허울 좋은 ‘상표 사기’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으며, 소리만 요란한 속빈 강정, 빈 깡통의 ‘가짜 국회’일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국회는 허다한 문제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많은 경우 임기응변의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머물고 있다. 필자는 오늘 국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에는 상기한 바 입법과정에서의 국회의원 직무유기가 자리잡고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오늘날 정치권 풍토에 대한 근본적 혁신과 아울러 입법과정의 이러한 문제 해결 없이 ‘국회 문제’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 입법, 의원들 스스로 ‘검토’하고 ‘낭독’하라. 만약 그럴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원 스스로 입법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는 진정한 국회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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