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소된 그의 삶의 기록은 또한 서울시민들의 것

서울의 혁신·변화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막지 말아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과 삶을 다룬 다큐 '첫 변론'의 포스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과 삶을 다룬 다큐 '첫 변론'의 포스터. 

'묻지 마 범죄'라는 서울형 범죄

서울 도심에서 ‘묻지 마 범죄’라는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른 뒤 서울의 지하철과 거리에는 장갑차까지 등장하고 경찰관의 실탄 사용이 적극 장려됐다. 그 덕분인지 유행처럼 확산됐던 살인 예고 글들은 사라졌다. 이로써 서울은 안전해진 것인가. 그러나 한쪽의 봉쇄는 흔히 다른 쪽으로 표출되게 마련이어서 장갑차와 실탄 사용 예고의 ‘치안 효과’를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범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이며, 범죄를 육성하는 조건이다. 범죄 사건은 검거와 적발로 가능하지만 범죄의 발생 조건과 구조는 장갑차와 무력에 의한 제압만으로써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라는 명명부터가 잘못인 것은 그 '묻지 마'는 실은 '물어 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어주는 이가 없어 묻지 마가 되는 것이다. 원인 없는 행위는 없듯 이유 없는 범죄는 없는 것이다. 사회현상으로서의 범죄를 그 원인에 대한 탐색 없이 대책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묻지 마 대책’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범죄의 발생 빈도 그 자체보다 범죄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실제 범죄 위험을 겪은 경험의 비율은 유럽 주요국과 비교할 때 크게 낮지만 범죄 피해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반대로 매우 높았다. 실제 범죄 이상으로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간극과 괴리에 한국형 범죄, 한국사회의 큰 특질이 요약돼 있다. 그리고 그 단면이자 압축으로서 최근의 ‘묻지 마 범죄’와 같은 서울형 범죄, 범죄의 '서울적 요소'가 있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는 도시형 범죄이다. 특히 대도시라는 비대한 몸집이 비죽 드러내는 대도시의 그늘이며 취약성이다. 대도시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던 공간이며 특히 한국사회는 '대도시 현상'이 아직 초기 단계이다. 한국사회의 성장과 발전은 도시의 성장과 발전인 동시에 도시의 문제와의 해결의 과정이었다.

도시 팽창의 과정에서 한국의 대도시는 무엇보다 그 성장의 과속으로 특징지어진다. 도시는 한 생명체와도 같다. 나무가 자라듯이 도시도 자란다. 웃자란 인체, 식물이 그렇듯이 과속은 성장과 성숙 단계의 건너뜀을 낳고 인체와 나무에서의 영양소의 균형, 사지의 비례를 해친다. 도시의 성장은 한편 높이 솟고 넓히며 직선으로 치닫는 것의 이면에서 소외와 고립과 격차와 단절을 깊게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서울은 한국사회의 선진과 후진 양면성의 축도

특히 서울은 한국의 대도시의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의 축도이다. 서울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되 복합적이며 확장적인 단면이다. 한국의 수도이며 1000만 인구가 집중된 이 초고밀도 도시에는 한국 사회의 온갖 것, 대도시의 온갖 것이 압축돼 있다. 서울은 한국 사회의 선진이자 후진의 이중성을 안고 있는 곳이다. 한편의 팽창과 과속, 그로 인한 다른 한편의 격차와 단절도 서울에서 집약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초고속 성장의 질주를 해 온 서울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태어나는 동시에 죽는다. 이뤄지는 동시에 소멸되며 세워지자마자 철거가 시작됐다. 그 속도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였다. 높이고 깎고 직선화하는 수십 년간의 맹렬한 가속하에서 그 안에서 사는 이들의 많은 이들이 밟히고 뒤처쳤고 밀려났다.

과속과 팽창으로 인한 단절과 격차는 반드시 그 그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게 돼 있다. 한국의 도시 개발은 사람들의 삶을 개발해 내는 데 상당 부분 실패했고, 시민들은 도시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1950년대 미국 도시의 흥망을 고찰해 도시계획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작 중 하나로 꼽히는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비판했듯 “계속되는 도시 재개발과 신축건물들은 결코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황폐화시킬 뿐이다.”

질주를 하기 위해서는 멈춤이 있어야 하며,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옆을 봐야 한다는 교훈이 서울의 수십 년 성장사의 중요한 교훈이었다.

도시는 가옥과 도로가 만들고 사회는 시민이 만든다. 건물과 도로를 세우고 넓히는 도시 개발로서의 서울의 성장과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서울이라는 사회의 능동적인 주체와 주인으로서의 시민의 부재와 결손이 또한 서울의 성장의 그늘이었다. 주민은 많으나 시민이 없는 도시였다.

그같은 서울의 성장, 서울의 과속, 서울의 그늘에 대해 혁신과 변화의 시도가 한때 있었다. 2011년에 서울시장이 된 그는 '사람이 우선이다'는 선언으로 자신의 시정을 펼쳐보였다. 재건축과 재개발보다는 도시재생이 그의 서울 청사진이었다. 시민들에게 닫혀 있던 서울시의 각종 시설들의 문을 주인인 시민들에게 열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뒤덮었던 거리에 따릉이 자전거가 ‘서울의 소리’가 됐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만드는‘ 도시와 사람의 공존은 골목의 보전과 생동으로 나타났다. 주역과 보조, 중심과 주변, 전면과 후면이 뒤섞여야 도시가 되며 사회가 된다는 것을 실험했다, ‘특별한 것’ ‘랜드마크’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특별한 것’을 만들어냈다.

그 특별한 실험과 혁신은 시민운동가, 사회디자이너로서의, ‘좀 더 나은 삶은 가능하다’는 믿음을 실제에서 보여온 그의 30년 간의 모색과 실천의 행정에서의 구현이었다.

그의 9년간의 시정의 혁신과 실험은 해방 후 한 방향의 직선으로 달려온 서울의 성장사에서 50여년 간의 그 전사(前史)를 1기로 하는 ‘제2기’라고 할 만했다.

그 2기의 서울시정, 박원순의 9년간의 서울시정, 그것이 옳은 방향이었다고만, 뛰어난 성과였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말하는 바대로 정말 그런 것인지 그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박원순 9년의 시정’의 기록은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금기가 됐듯 그 9년간의 서울시에서 펼쳐진 일들은 전적으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송두리째의 멸실이다.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의 박원순 전 시장 묘의 비석이 누군가에 의해 먹칠이 돼 있는 등 훼손돼 있다. 2023.8.29 익명의 독자 제공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의 박원순 전 시장 묘의 비석이 누군가에 의해 먹칠이 돼 있는 등 훼손돼 있다. 2023.8.29 익명의 독자 제공 

박원순 아닌 서울의 시간, 밀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9년간은 결코 박원순만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아니 더더욱이나 서울시민들의 것이다. 서울시민들의 것인 그 시간을 밀봉할 수는, 소거할 수는, 도려낼 수는 없다.

28일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과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사건 심문이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렸다. 이를 막으려는 측은 "국가인권위에서 오랜 기간 조사해서 내린 결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널리 보장되기는 어렵다"며 이 다큐 상영을 반대한다.

국가인권위의 결정이 갖는 여러 의문들에 대해 따져볼 것은 매우 많지만 여기서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성희롱 사건의 진상에 대해 처음으로 질문을 제대로 던지려는 이 다큐는 단지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의문 이상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말소된 박원순의 삶, 그러나 그와 함께 삭제된 것은 서울시민들과 우리 사회의 수십 년간의 삶의 한 부분,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것이 이 다큐의 상영을 막아서는 안 되는 더욱 큰 이유다.

박원순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는 그의 말소된 삶과 함께 말소돼버린 서울의 삶, 대한민국의 몇 년간의 삶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박원순을 해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해금하기 위해서다.  

국가인권위원장은 박 시장에 대한 성희롱 결정에 대해 "우리 사회가 박원순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렇다. 그를 온전히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그를 향한 문, 그와 함께했던 서울과 한국사회로 가는  문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 한편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 있는 박원순 전 시장 묘의 비석이 누군가에 의해 먹칠이 돼 있는 등 훼손돼 있는 것이 지난 27일 발견됐다. 신고를 받은 남양주 경찰서 측은  "현재 탐문 수사중이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