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준강간' 사건과 동일시하는 칼럼 게재
아직 진상 규명 안 된 미제 사건, 질문을 허용해야
객관과 진실 향한 질문 막는 권력은 누구인가
오늘(9일)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의 칼럼 <‘객관’과 ‘진실’의 성폭력 다큐멘터리>는 바로 오늘 5주기를 맞는 고 박원순 시장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성폭력 전문가의 시각에서 '박원순의 성희롱'을 잊지 말자며 다시 환기시키는 주장을 펴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 삼을 것은 없다. 다만 이 칼럼이 얘기하는 대로 사건의 진상이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한지는 의문이다. 이른바 ‘박원순 성희롱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안의 진실이 아직 많은 부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같은 전제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적잖은 이들이 동의하기 어려울 법하다. 그보다도 이 칼럼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이 실린 날이 다른 날도 아닌 박원순 시장의 기일(忌日)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추모와 애도의 심정으로 더욱 깊은 비감에 젖게 되는 날에 실린 이 칼럼은 박원순에 대한 추모나 애도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는 경고로 읽힌다. 한겨레는 이 칼럼으로 ‘박원순 추모 금지령’을 내리고 싶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칼럼은 이토 시오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블랙박스 다이어리'를 소개하고는 '박원순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가 만든 '첫 변론' 다큐멘터리를 꺼내 박 시장의 성희롱 사건을 끌어들인다. '블랙박스 다이어리'는 일본의 준강간 사건을 고발한 것으로, 가해자가 만취한 피해자를 택시에서 끌어내려 데려가는 장면, 권력을 이용한 은폐 시도 등 명백한 '준강간'의 증거와 정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 칼럼은 그러고선 이를 박 시장의 성희롱 사건과 연결 짓고 있다. 박 시장을 다큐멘터리 속의 무도한 성폭력 가해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칼럼은 박원순 다큐에 대해 피해자가 2023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지난 3일 1심 법원이 1000만 원 배상명령과 상영금지, 상영금지를 어길 경우 1회당 2000만 원 부과를 선고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고선 상영금지의 이유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절차 및 관련 행정소송 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쳐 (성희롱이) 여러 차례 인정되었”음에도, “피해자가 이를 허위로 제기한 것처럼 다큐를 만든 것은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시장의 성희롱 의혹이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토 시오리 사건에서 묘사된 '준강간'이라는 무도한 성폭력 행위와 동일한 수준일 수는 없다. 이 칼럼이 스스로 인용하듯 박 시장의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와 행정소송을 통해 '성희롱'으로 인정되었을 뿐, '준강간'이나 그에 준하는 신체적 강압이 동반된 성폭력으로 결론 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칼럼은 ‘고위층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해 마치 박 시장이 '블랙박스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잔인한 성폭력범이라도 되는 듯 쓰고 있다.
게다가 거의 유일한 ‘성희롱 인정’ 근거랄 수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가 성희롱의 근거로 내세운 러닝셔츠 차림의 사진은 다중에게 공개된 것이었고, 네일 아트 손을 만진 행위에 대한 증언에 대해서도 그를 반박하는 증언들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나와 있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서울경찰청이 46명의 수사관으로 구성된 전담수사 TF팀을 만들어 5개월이 넘도록 강도 높게 수사했지만,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는 수사기관인 경찰이 '증거 없음' 판단을 내린 참고인들의 진술들을 근거로 삼아 사실들 중 일부를 인정했다. 국가인권위가 이같이 불분명한 근거들을 토대로 성희롱을 인정했다면, 국가인권위의 조사자료는 공개돼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져야 마땅하다는 요구들이 나왔다. 그러나 현재 자료들은 비공개돼 있어 조사 과정과 판단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성희롱 결정을 인정하더라도 형사책임과 무관한 성희롱은 형사책임의 영역인 성범죄(성폭력 범죄)와는 구분돼야 한다. 성희롱 결정이 옳다 해도 이를 성폭력 범죄로 몰아가거나 규정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행위다. 그런데도 이 칼럼은 박 시장 사건에 고위층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박원순 사건’은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미제의 사건이다. 진실을 향한 더 많은 질문들이 필요하다. 질문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의문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성희롱 피해 여성’이 박 시장에게 보냈다는 편지도 그중 하나다. 4년 동안 지속적인 성추행 괴롭힘을 당해온 상황에서 보냈다고 하는 편지에 “사랑한다” “대권가도에 함께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에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적잖다.
칼럼은 “객관과 진실은 좋은 질문이 있을 때 가능하다”면서 "성폭력을 저지른 권력자는 왜 피해자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데 더 큰 권력을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원순이 없는 지금,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는 자기를 변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박원순 사건에서 ‘권력’은 지금 누구에게 있는가. 여전히 자기변론을 펼 수 없는 고인에게 있는가. '객관'과 '진실'을 향한 질문들을 막는 권력은 누가 행사하고 있는가. 한겨레는 이 칼럼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그 자신이 먼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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