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 국민이 주군에게 신민인 듯 굴신

두 '주종'간의 완벽한 일심동체의 모습

은총을 베푸는 세례, 충성과 보은의 맹세

방송과 민주주의 붕괴의 악몽이 시작되려나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8.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8.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25일 한 장의 사진이 국민들에게 극심한 모독감을 안겨줬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그것은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어렵게 도달한 합의와 상식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장면이었다. 나라의 주인이며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자에게 주군 앞에서 '신민'인 듯 머리를 바닥과 수평 되게 조아리는 사진을 보는 국민들은 자신이 마치 그 굴욕의 몸이 된 듯한 치욕감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다름아닌 한국 공영언론을 좌지우지하는 기관의 수장으로 등극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에 더욱 참담했다. 

자신에게 임명장을 주는 최고권력자의 얼굴을 바로 보는 것조차 불경을 저지르는 짓이라는 듯 자신의 얼굴을 바닥으로 떨구는 그의 모습, 허리를 눕힌 이동관 씨의 모습에서 청문회 때의 당당하다 못해 엄포를 놓던, 국민과 야당 의원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던 그 위압적이며 오만한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주군에게 올리는 복종과 순명(順命)의 다짐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국민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봤던 것인가. 임명장을 내리는 그에게서 감히 똑바로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인격과 인품의 드높은 경지를 보기라도 했던 것인가. 다른 이들이 도무지 발견하지 못한 비밀스런 깊이를 발견하기로 했던 것인가. 혹은 지엄하신 최고권력자를 한때 비판했던 것에 대한 속죄였는가. 윤석열 검사와 피조사자로 만났던 악연이 이제 절을 바치는 이와 그를 흡족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절을 받는 이로 만났을 때, 그것은 한 권력과 또 다른 권력과의 만남이면서 작은 권력이 큰 권력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은총을 베푸는 세례, 충성과 복종을 서약하는 맹세의 의식은 두 ‘주종(主從)’ 간의 완벽한 일심동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러므로 ‘이동관’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윤석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동관 씨의 90도 절은 흠집투성이인 자신을 굽어 살펴주는 권력자의 은혜에 대한 벅찬 감읍의 표현이었고 보은의 맹세였다. 충성과 분골쇄신 각오의 굴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숙였던 고개를 이제 들어올릴 것이다. 펼 뿐만 아니라 위로 향해 향해 오만하게 쳐들 것이다. 굴종은 오만의 다른 얼굴이다. 뭔가에 대한 굴종은 다른 무언가에 대한 군림과 지배를 꾀한다. 그 지배와 군림으로써 자신의 굴종에 대한 보상을 얻으려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부끄럽기 짝이 없었을 모습, 수치일 것이며 감추고 싶었을 모습, 그러나 일부러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을 통해 두 사람은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가. 언론의 장악을 향해 오로지 직진과 돌격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것의 선언이며 포고였다.

이 선언과 공포는 한달 전인 7월 28일 이동관 씨를 대다수 국민들과 언론 시민사회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할 때부터 이미 확고하게 예정됐던 일이었다. 어떠한 검증이든,  어떠한 의혹 제기이든, 국회 청문회와 언론 시민사회 대다수 국민들의 어떠한 반대와 비판이든 그것은 다만 통과하는 일, 시간을 거치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어떤 일에서건 있어야 하는 시작과 중간과 끝의 일에서 시작과 끝만 있을 뿐 중간은 없는, 적확히 말하자면 시작 자체가 끝이었던 일이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두 ‘주종’이 연출한 이 사진은 이동관은 '이동관'을 분명히 보여준 것인만큼이나 윤석열은 ‘윤석열’을 보여준 것이었다. 후쿠시마 방류 개시에도 국민들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말 없는 말이었다. 핵폐수의 투기에 대해 단 한마디의 말도 없는 대통령, 일본을 향해 굴종하는 한국 대통령, 국민들에게는 전혀 설명 없는 대통령은 '언론장악 기술자'의 임명을 기어이 단행 아닌 '자행'하는 것으로써, 이동관의 임명으로써 국민들에게 분명히 말을 한 셈이었다. 언론을 향해, 국민을 향해, 말을 한 것이었다. 귀가 있되 듣지 않겠다는 것을, 눈이 있되 보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방송의 공영성과 민주주의 붕괴의 현실화라는 악몽이 이제 시작되려고 한다.  아니 이미 시작된 언론장악의 완성을 향하는 일의 한 끝인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되려 한다. 하나의 악몽의 끝이자 더 끔찍한 악몽의 개막이자 예고와도 같은 이 사진 앞에서 국민들은 이동관 씨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 숙인 고개, 권력 앞에 굽힌 머리를 들지 마라, 영원히 들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오직 권력자 앞의 그 '신민(臣民)' 으로만 머물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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