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운명, 미‧일의 결정에 달려…'종속변수'로 전락

윤석열, '반중국' 확인…한·중 관계 더 깊은 늪으로

3국정상 공동성명, 중국 첫 명시…한국 의견 배제?

'3국 군사협력체' 올초 바이든-기시다 회담서 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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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있다. 2023.8.18.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있다. 2023.8.18. AFP 연합뉴스 

마침내 한·미·일이 '3자 안보 협력체'의 창설을 공식 선언했다.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된 3국 정상회의에서다. '준군사동맹'으로 불릴 만큼 강한 결속력을 목표로 한 한·미·일 안보 협력체는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역학 구도에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한국의 운명도 이 3자 안보 협력체의 '틀' 안에서 결정될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이 '3자 틀' 속에서 한국의 위상과 함께 이 협의체의 작동 방식이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가다. 두고 볼 일이지만, 최하위 파트너로 '종속변수'에 머무를 거란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연성'이 훨씬 높은 일본과 '사전 입맞춤'을 통해 어떤 전략적 사안을 밀어붙이면 한국으로선 생각이 달라도 반대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이 '3자 협의 틀'을 완전히 깰 각오가 없는 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겉으론 세 나라가 민주적이고 수평적 협의를 통해 컨센서스를 이룬 듯한 '포장' 과정이 뒤따르겠지만, 실제론 한국의 운명이 미·일본 두 나라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53차 촛불대행진에 시민들이 집결해 있다. 2023.8.19. 사진작가 최마리
19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53차 촛불대행진에 시민들이 집결해 있다. 2023.8.19. 사진작가 최마리

한국 운명, 미‧일 결정에 달려…'종속변수'로 전락

'3자 협의 틀'이 한국에 어떻게 불리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한·미·일은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The Spirit of Camp David)에서 "중화인민공화국(PRC)"이란 실명까지 써가며 지역의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해치는 세력으로 중국을 직접 지목한 뒤 남중국해, 대만 문제와 관련한 공세적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공동성명에서 3국은 "최근 우리가 목격한 남중국해에서 불법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위험하고 공격적 행동과 관련해 우리 각자가 밝혔던 입장을 되새기며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특히 우리는 매립지의 군사화, 해안경비대와 해상 민병대 선박의 위험한 활용, 강압적 행동을 변함없이 반대하며, 미신고나 규제받지 않는 불법 조업을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11월 3국 정상의 '프놈펜 성명'도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의 군사화, 강압적 활동에 의한 것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지만, 중국의 이름까지는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한미일 3국 정상이 참가하는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에서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2023 08.17 [AP=연합뉴스]
한미일 3국 정상이 참가하는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에서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2023 08.17 [AP=연합뉴스]

정상 공동성명, 중국 첫 명시…한국 의견 배제?

그동안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지목한 사례가 있었지만, 한국이 참여한 정상 공동성명들의 경우 특정 사안을 두고 중국을 직접 거명해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만 문제에서도 한·미·일 정상의 톤은 훨씬 세졌다. 성명은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일단 운을 뗐다.

그리곤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부분을 추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표현은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등장한 적이 있지만, 한국이 포함된 각종 정상 공동성명에는 없던 내용이다. 중국에 대한 윤 정부의 태도가 '적대적인' 미·일에 거의 일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중 관계가 복원은커녕 더 깊은 늪에 빠져들 것으로 우려된다.

주목할 부분은 용산 대통령실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관련 사전 브리핑에선 정상 공동성명에 '중국'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을 거라고 예고했다는 점이다. 국가안보실 관계자는 14일 "중국을 직접적으로 명시해서 한·미·일이 적대시한다든지, 중국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라는 표현은 들어가지 않을 걸로 예상한다. 그러나 북한은 실질적인 탄도미사일 그리고 핵 위협을 증진시키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명시한 공동 대응 문장은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주요 투자은행들의 전망이 나왔다. 사진은 어둠이 깔린 부산항의 모습. 2023.7.25. 연합뉴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주요 투자은행들의 전망이 나왔다. 사진은 어둠이 깔린 부산항의 모습. 2023.7.25. 연합뉴스

윤석열 '반중국' 확인…한·중 관계 더 깊은 늪으로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출범 이후 윤 대통령은 중국의 반발과 경고에도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반대"와 "규칙 기반 질서 수호"와 같은 말을 써가며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와 같은 '남의 집 일'에 개입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중국을 적시한 공동성명에 사인하는 것엔 나름 몸 사렸다. 하지만 이번에 이른바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되짚어보면 막대한 경제적 피해 등을 초래한 한·중 관계의 추가 악화를 피하고자 윤 정부는 공동성명에 '중국 이름 박기'를 막판까지 꺼렸지만, 미‧일의 위세에 눌려 수용했지 싶다.

당시 미 백악관 관계자의 사전 브리핑과 대조해보면 그런 정황이 더 뚜렷하다. 백악관 관계자는 "3국은 남중국해를 비롯해 다른 여러 분야에 대해 강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며 "우리 공동 입장을 잘 알게 하는 강력한 언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중국 명시' 가능성을 흘렸다.

이런 정황과 연관된 중국의 보도도 있었다.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16일 '한국은 이 흙탕물로 들어가는 속뜻을 아는가'란 주제의 사설에서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북한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중국 겨냥 의도를 일부러 축소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한국의 의견 때문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설은 "한국은 미·일과 같이 중국을 '경쟁자'나 '도전'으로 낙인찍어 중국과 등을 돌리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13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도중에 악수를 하고 있다. 2023.1. 13.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13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도중에 악수를 하고 있다. 2023.1. 13. 로이터 연합뉴스

 

'3국 군사협력체' 올초 바이든-기시다 회담서 예비

다만 유사시 3국의 군사적 공동 대응을 위한 '신속한 협의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엄청난 파장을 고려해 중국을 '빈칸'으로 놔뒀다.

세 나라는 '포괄적 글로벌 3국동맹'을 향한 결정적 한 걸음을 내디뎠다. 미국을 꼭짓점으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좌·우 날개로 수평을 이뤘던 컴퍼스 구도에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밑으로 들어가는 수직 구도로 뒤바뀔 우려가 크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한국군은 일본 자위대의 명령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대만 유사시 최전선에 한국군 동원도 가능해진다.

미국과 일본이 전략적 이해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한국은 '3자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일제 침략사와 분단, 중국‧러시아와의 경제 관계 등과 같은 한국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국익이 미·일의 국익과 부딪힐 때도 당연히 생긴다. 하지만 이런 '3자 수직구조'에선 우리의 국익을 관철하기는 어렵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듯 일제 과거사를 외면하고 반공주의만을 설파하는 윤 정부야 그렇다 쳐도, 앞으로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이 '3자 틀'은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부정적인 일본의 스탠스를 고려하면 남북관계 개선과 분단 극복,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등의 시대적 과제는 점점 더 실현하기 힘든 국면으로 가고 있다.

 

미국 7함대 소속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잠수함인 미시간호(SSGN 727)가 16일 오전 해군 부산기지에 입항했다. 길이 170.6m에 배수량 1만8천t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 중 하나다. 사거리 2,000㎞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요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 150여 기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6.16. 연합뉴스
미국 7함대 소속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잠수함인 미시간호(SSGN 727)가 16일 오전 해군 부산기지에 입항했다. 길이 170.6m에 배수량 1만8천t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 중 하나다. 사거리 2000㎞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요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 150여 기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6.16. 연합뉴스

윤석열에 '금고아'로 작용할 한미일 안보협력체 가동

문제는 이런 그림이 7개월 전인 올해 1월 1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다 예비됐다는 점이다.

당시 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1월 4일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질문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미·일 양자 군사협력과 미·일·한 3자 군사협력 개선 방안을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상이 없는 자리에서 미·일 정상이 3국 간 군사협력 개선 방안까지 논의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익과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인데도, 바이든과 기시다 '둘이서' 큰 구도를 결정하고 윤 대통령에겐 일방 통보하는 형식이 된 셈이다. 그

둘의 합작품이 바로 18일 공식 출범을 선언한 반중국 한·미·일 안보협력체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윤 대통령의 머리에 '금고아'(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손오공 머리에 씌운 머리띠)를 씌운 격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주문대로 할 뿐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전혀 다른 현실 인식을 보였다. 캠프 데이비드 회동과 관련해 이도운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어느덧 돌아보니 우리가 세상의 맨 앞에 서서 미국, 일본 같은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행동대로서 반중, 반러 전선의 맨 앞에 선 게 아니냐"는 냉소적 목소리들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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