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 배상 판결금 공탁 이의신청 또 기각
법원 "구상권 행사 안 하면 가해 기업에 면죄부"
징용 배상에 '돈만 받으면 되지 않냐'는 윤 정부
회유‧압박도 양금덕, 이춘식 어르신 의지 못 꺾어
"판결금은 미쓰비시 불법행위로 발생한 위자료"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게 된 것은 오랜 기간 교착돼온 한‧일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됐기 때문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8일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18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공식화한 '한‧미‧일 안보협력체' 창설에 이르게 된 데는 한‧일 두 나라를 밀착시킨 '친일 본색' 윤석열 대통령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정상회의에 이어 오찬, 기자회견을 함께 하고 한‧미‧일 새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면서 '축배'를 들었다. 3국의 폭주를 우려하는 한국 내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작년 5월 취임 이후 일본을 위해서라면 윤 대통령은 뭣이든 아낌없이 내줬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한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했음은 물론이다. 대통령의 국적을 묻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
그 신호탄은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 배상과 관련해 일제 전범 기업들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준 '3자 변제 안'이었다. 3월 6일 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 안은 일본 전범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회유‧압박에도 양금덕, 이춘식 어르신 의지 못 꺾어
한국 대법원은 전범 기업들에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1인당 1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불응하는 전범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 명령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7월 말 윤 정부가 개입해 현금화 프로세스를 중단시켰다. '한일관계 파탄'을 경고하며 현금화를 위한 강제집행에 반발해온 일본을 최대한 배려한 조치였다.
그리고 7개월여 만에 내놓은 것이 '3자 변제 안'이다. 한국 기업들의 돈을 받아 기금을 조성한 뒤 징용 피해자와 유족, 총 20명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가관은 윤 대통령이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을 배려해 구상권 포기까지 일본에 약속한 점이다.
재단을 앞세워 윤 정부는 징용 피해자와 유족을 상대로 판결금을 받으라고 집요한 회유와 압박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 등을 요구하며 수용을 거부하는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그리고 작고한 박해옥 할머니와 정창희 할아버지 피해자 유족 7명의 의지까지 꺾지는 못했다.
특히 양 할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굶어 죽어도 일본의 사죄 없이는 윤석열 정부가 주는 그런 돈은 안 받겠다"거나 "사죄 한마디 듣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해왔다.
판결금 공탁 이의신청 또 기각…3자 변제안 '균열'
윤 정부의 총력전에도 '3자 변제 안'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윤 정부가 이들의 손해배상 위자료 채권을 소멸시키고자 지난달 3일 기습적으로 판결금의 법원 공탁을 시도했지만 모두 '불수리' 결정이 났다. 이에 불복해 낸 이의신청들도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되는 중이다.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게 윤 정부의 각오인 만큼 공탁 '불수리 결정'에 대한 최종 판정 결과는 두고봐야겠지만, 3자 변제 안이 '한‧미‧일 안보협력체'의 취약 고리인 한‧일 관계의 아킬레스건이란 점에서 법원들의 이의신청 기각 파장은 예사롭지 않다.
대법원마저 원심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판결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와 유족들은 배상금에 대한 법원의 강제집행 절차를 속행해 압류 상태인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를 통해 강제로 변제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3자 변제 안'은 파탄 나고 폭주하는 한‧일 밀착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윤 정부는 많은 국민의 분노를 사면서까지 사법부와 싸우기 위해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전직 대법관 등 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것도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판결금은 미쓰비시 불법행위로 발생한 위자료"
전주지법에 이어 광주지법도 징용 배상 판결금 '3자 변제' 공탁 불수리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광주지법 민사44단독 강애란 판사는 16일 윤 정부를 대리해 재단이 낸 2건의 공탁 불수리 결정 이의신청을 물리쳤다.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관련 건이다.
강 판사는 이날 "불수리 결정이 공탁관의 형식적 심사 범위에서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공탁 심사는 형식적·기계적 판단해야 한다'는 재단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강 판사는 "피공탁인(피해자)의 반대 의사가 분명한 상황에서 (공탁관이) 민법 제464조 1항을 근거로 불수리 결정한 것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의 단서를 보면 '채무 변제와 관련해 당사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 제 3자가 변제를 할 수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 기업의 불법행위 부정과 함께 윤 대통령의 구상권 포기에 대한 '질타성' 내용도 있었다. 강 판사는 뭣보다 판결금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미쓰비시가 피해자에게 저지른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위자료 청구권'이라는 것이다.
법원 "구상권 행사 안 하면 가해 기업에 면죄부"
그는 "특히 위자료는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받은 인격적 모욕 등 불법적이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피해자를 심리적·감정적으로 만족시키는 기능도 있다"면서 "그러나 가해 기업은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판사는 "이런 상황에서 신청인(재단)이 가해 기업을 대신해 판결금을 제3자 변제를 한 후 가해 기업에 구상권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발생한다"며 "이렇게 되면 결국 채권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채권의 만족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전주지방법원 민사12단독 강동극 판사는 작고한 박해옥 할머니의 자녀 2명 관련 공탁 불수리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현재 수원지법, 수원지법 평택지원과 안산지원 등에서 진행 중인 재판부 심리 결과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일반인의 상식에 반해 현 정부가 내놨던 제3자 변제안이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 것"이라며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 했던 정부가 변제 안의 부당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징용 배상에 '돈만 받으면 되지 않냐'는 윤 정부
한겨레신문의 17일 보도로 뒤늦게 드러났지만, 윤 정부를 대리한 재단은 지난달 20일 법원에 제출한 이의신청서에서 일본의 주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궤변으로 일관해 물의를 빚었다.
먼저 재단은 이의신청서에서 "채무자 본인이 직접 변제하는 경우나 제3자가 변제하는 경우나, 채권자가 동일하게 금전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썼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돼 말 못 할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의 요구를 "금전 채권" 차원으로만 보면서 '돈만 받으면 되지 누가 주던 무슨 상관이냐'는 천박한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
또한 이춘식 할아버지가 요구한 일본 정부의 사과에 관해 재단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어느 누구도 사과를 강제할 수 없다"면서 일본 전범 기업을 방어하고자 우리 헌법까지 소환했다.
이어 재단은 "채무자에게 사과를 받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든지, 판결금을 채무자로부터만 받아야 한다는 건 법 감정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 잔혹했던 일제 식민 통치에서 비롯된 강제동원 문제를 한낱 피해자들의 '감정' 문제로 치부했다.
재단은 나아가 "공탁공무원의 (불수리) 판단으로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이 무용지물이 되는 결과는 국익에도 현저히 반한다"고 윤 정부와 국가를 혼동하는 인식도 들켰다.
한‧미‧일 3국 정상이 이날 미국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군사동맹에 준하는 '3자 안보협력체' 창설 등 '새 시대'를 선언하면서 '축배'를 드는 동안, 이렇듯 한국에서는 그 가장 취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를 겨냥한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반란'이 진행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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