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한 인하대 의과대 교수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 교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지 13년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다 해결이 된 줄 알지만 피해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피해에 대한 배상과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세계가 놀라는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이런 참혹한 일이 벌어지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최소한의 안전 독성 검사조차도 하지 않고 어린이에게도 무해하다고 광고한 뻔뻔한 기업. 허술한 관리로 화를 자초한 정부. 대형 로펌의 놀이터가 된 사법부. 이런 현실을 방치한다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라고 해도 우리 국민이 행복해할 수 없다.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팔짱 끼고 지켜만 보는 가해 기업과 정부

독성물질을 원료로 만든 분무형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돼 2011년까지 17년간 400여만 명이 무방비로 노출됐다. 현재 피해자가 7848명으로 사망자가 1820명, 생존 환자가 6028명이다. 2021년 보고에 따르면 총 피해신고자의 25%가 사망자이고, 대다수가 영유아였다. 전체의 30%가 현재 청소년이다.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집계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건강이 나빠진 피해자는 약 67만 명, 사망자는 약 1만 4000명으로 추산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지정병원에서 진찰받은 검사와 기록만 인정한다. 그마저도 발급일로부터 최근 10년 이전의 기록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삭제하고 발급해주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가 있음에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조건 때문에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검사 비용이 본인 부담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집단 구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피해자 전체 명단을 환경부가 보유하고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망자 명단조차 없어서 피해자 단체에서 추모조차 할 수 없다. 가해 기업과 정부는 이 상황에 대해 마치 방관자처럼 팔짱만 끼고 지켜보고 있다. 이러고서야 가해 기업이 글로벌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같은 피해를 부른 책임이 있는 정부가 환경 정의에 어긋난 이 사건에 대해 이미 해결된 것처럼 대하는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호흡기질환을 비롯해 이와 동반되는 안질환, 피부질환 등에 대해서만 피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 피해자들은 암뿐 아니라 만성피로증후군, 운동장애, 자가면역질환을 호소한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나노 크기로 폐에서 간·신장·골수 심지어는 뇌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면 미토콘드리아 산화스트레스와 소포체 스트레스가 발생해 폐를 포함해 노출되는 부위마다 심한 염증과 섬유화가 발생한다. 알려진 폐 손상, 간질성폐렴, 폐렴, 천식 외에 신장·간장·면역·근육 손상과 더불어 신경정신질환, 발달장애, 암, 심혈관질환, 운동장애, 에너지대사 이상 등이 보고됐다. 특히 어릴 때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이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영아 때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면 천식, 폐렴을 앓은 후 크면서 호흡기 증상은 좋아져도 만성피로증후군, 운동장애로 일상 활동이 어려운 사례가 많다.

피해구제 공청회 위한 국회 청원 서명 절실

사참위는 정부 각 부처가 원인물질 및 제품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독성 실험도 부실하게 했고, 부당표시 광고도 걸러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SK케미칼은 안전성 검토 없이 원료를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애경산업 등에 판매했다. 유통업체들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취지로 광고해 참사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참사 책임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조정위원회는 조정안을 마련했지만, 가해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은 조정안을 거부했다. 생존자들이 평생 짊어질 고통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에도 거부한 것이다.

이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매듭지을 때가 됐다. 나이 어린 피해자들의 건강 피해가 큰 만큼 국가가 책임지고 환자의 미래 의료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3년으로 기간이 제한된 요양급여에서 기간 제한을 없애거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의료보호 환자로 지정해 치료를 보장해야 한다. 기업은 가습기살균제 조정안을 마련하는 데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연구도 성과를 보여 가습기살균제 피해 기전(현상)인 미토콘드리아 산화스트레스와 소포제 스트레스를 막아주면, 가습기살균제 치료의 길도 열린다는 희망이 생기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공청회 개최 요청에 대한 국회 동의 청원이 8월 4일부터 시작됐다. 청원서 공개 이후 30일 이내(9월 3일)에 5만 명이 청원해야 피해구제 공청회가 열린다. 참사의 실상을 알리고 바로잡는 국회 청원 동의에 많은 이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마을주치의 임종한의 블로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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