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공들인 일회용품 금지 철회

비닐봉지는 사용량 줄며 효과 증명

플라스틱 감축도 세계적인 추세

“소상공인 표 의식한 총선용 정책”

윤석열 정부의 환경 정책 퇴행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에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유해 화학물질 규제 완화에 이어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 금지 조처를 사실상 철회했다. 국제사회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이런 흐름과 정반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상공인 표를 의식해 환경 정책마저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식당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 철회를 발표한 7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 종이컵이 쌓여있다. 환경부는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를 철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2023.11.7. 연합뉴스

환경부는 식당과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방침을 철회 또는 무기한 유보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해도 제재하지 않고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해도 단속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고물가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4년 넘게 추진했던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철회해야 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가 기후 변화 위기 극복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환경 규제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10년 전으로 거들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회용 컵 반출 시 처리비용을 부과하는 보증금제도를 도입했다. 이 규제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폐지됐다. 그러다가 2018년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막았고 2019년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 쇼핑몰,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했다.

일회용품과 비닐봉투 사용 금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한시적으로 중단됐다가 지난해 4월 다시 시행됐다. 7개월 뒤인 11월에는 식품접객업소 내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체육시설 합성수지 응원 용품, 비닐우산, 편의점과 제과점의 비닐봉지 등 규제 품목을 추가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세계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한 환경 정책으로 불가피한 규제로 여겨졌다.

다만 일부 소상공인이 불편과 불만을 호소했는데 규제 자체를 철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추가된 일회용품 규제는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그 결과 편의점과 제과점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가 사라졌고 식당 등 식품접객업 매장에서도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점차 줄고 있다.

 

 일회용품 규제 관련 일지. 연합뉴스
 일회용품 규제 관련 일지. 연합뉴스

환경부는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금지는 현장에서 이행하기 힘든 조처이고 비닐봉지는 이미 쓰지 않고 있으니 규제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면 소상공인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소비자 불편도 크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으니 규제할 수 없고 금지할 필요가 없으니 규제하지 않는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환경 규제는 산업 측면에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이행하기 어렵다고 정부 스스로 환경 규제를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환경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녹색연합은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량이 2017년 3810톤에서 지난해 660톤으로 크게 줄었다”며 “이는 2019년부터 비닐봉지 사용 금지를 위해 법령을 개정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또 “종이컵도 1년에 248억 개씩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규제를 안 하겠다는 건 환경부의 직무 유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 중이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며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철회한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환경연합도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금지의 계도기간 연장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며 “현장에서는 규제에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탄소중립과 기후 위기 대응에 정부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도 크게 해치고 있다. 법령에 맞춰 준비해 온 지방자치단체들은 행정력을 낭비했다.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준비한 사람만 바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환경 정책은 처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킬러 규제 혁파 규제혁신 전략회의’에서 유해 화학물질 피해를 막는 법률을 ‘킬러 규제’로 지목했다. 재계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심사 기준 등을 낮출 것을 지시했다. 그때도 환경부가 총대를 메고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였다.

화평법은 2011년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비극으로 만들어진 법이고 화관법은 2012년 경북 구미공단에서 불산 가스 누출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법률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규제다.

 

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시 한 화학공장에서 유출된 불산으로 인해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일대의 농가 피해가 속출했다. 2012.10.2 ≪대구환경운동연합≫ 연합뉴스
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시 한 화학공장에서 유출된 불산으로 인해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일대의 농가 피해가 속출했다. 2012.10.2 ≪대구환경운동연합≫ 연합뉴스

두 법이 시행 이후에도 위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2023년 9월까지 국내 10대 기업의 화관법 위반 건수는 모두 86건에 달했다. 노 의원은 “관련 규제가 종이호랑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오히려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풀겠다는 현 정부의 시계는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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