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 곳곳에서 ‘거대한 후퇴’가 벌어진다. 기후정책도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다. 한 마디로 미온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기후정책과 관련하여 정부는 최상위 법정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1월 말 확정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2~’36)」과 3월 21일 발표한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3~’42)」 정부안이 그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21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에 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줄이고 그 공백을 원전으로 벌충했다. 석탄발전은 찔끔 줄이지만 LNG 발전은 대폭 늘려 화석연료의 비중은 되려 높아진다.

탄소중립기본계획안에서는 탄소 발생의 주역인 산업부문의 탄소감축 목표를 3.1%p(14.5%→11.4%) 낮춰 잡았다. “산업부문은 원료 수급, 기술 전망 등 현실적인 국내 여건을 고려하여 감축목표를 완화”했다고 이유를 적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0% 줄이되 윤 대통령의 임기(2022~2027) 동안 목표량의 25%를 줄이고 나머지 75%는 차기 정부가 3년 만에 줄이도록 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폭탄을 다른 나라와 차기 정부에 돌린 채 현 정부는 무임승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이 “탄소중립이 우리 산업에 부담이 되어선 안 된다”면서 “어찌됐든 국제사회에 약속은 했고 이행을 해야 된다”라고 말했을 때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닌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한 발언이고 보면 사실상 탄소중립을 추진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나 진배 없었다. 요는 한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럼 탄소중립을 늦추면 한국 경제는 살아날까.

새로운 국제기후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내남없이 알듯이 한국 경제는 기후위기에 취약하다. 이행 리스크가 크다는 말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은 반도체, 철강, 조선 등 에너지 다소비업종으로 구성돼 있다.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거론되는 IT, 배터리 등도 대규모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들 주력산업은 대외의존도가 높아 국제 통상질서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후위기 대응도 늦게 시동을 건 데다 이제는 대응수준까지 낮춰잡고 있다. 재생에너지도 없어 못 쓸 지경이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인 엠버(EMBER)에 따르면 2021년도 한국의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의 비중은 겨우 4.7%,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11.2%)이나 일본(10.2%), 베트남(10.7%)은 물론 인도(8.0%)에도 뒤지는 수치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국제기후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구적 차원에서 채택한 일련의 협약과 제도, 정책이 포함된다. 협약으로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1992), 교토의정서(1997)에 이어 2015년에는 파리협약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파리협약을 통해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1.5˚C 이하로 제한하고 국가별 이행방안(NDC)의 제출을 의무화했다.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이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는가 하면 탄소국경조정제도도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등 주요 국가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민간영역에서는 RE100이나 ESG 경영이 새로운 무역규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기후체제는 곧바로 국제금융·통상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정부의 압력은 우회한다지만 국제적인 압력까지 우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데다(RE100) 판매를 하더라도 탄소배출량에 따라 관세를 물어야 한다(탄소국경조정제도). 기후안정화를 위협하는 기업은 신규 투자를 유치하는 일도 어려워진다(ESG 경영). “한국의 대기업들은 재생에너지의 공급에서 애로를 겪음에 따라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엠버 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기후 리더십이 비용이 아닌 경쟁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가격이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보다 낮아질 경우 에너지 다소비업종인 우리나라 제조업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전통에너지의 그것과 같아지는 시점을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라고 부른다. 독일이나 호주, 미국, 일본 등은 이미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다고 알려진다. 우리나라도 빠른 시일 내에 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에너지 비용의 증대는 물론 탄소세나 탄소거래권 구입에 따른 비용까지 늘어날 것이다.

각국이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일부 기업들은 국내 투자계획을 철회하면서 해외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모자라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을 걱정해야 할 판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낮춰 잡고 있는 것이 한국 정부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탈석탄동맹을 결성, 2030년까지 석탄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판에 아직도 석탄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기후 감수성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도 돈을 세는 개구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기후위기 대응이 경쟁력이다

세계 경제질서가 출렁이고 있다. 패권국 주도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글로벌 공급망도 교란되고 있다.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이것만으로도 위기 요인인 상황에서 기후위기 요인까지 맞닥뜨리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는 다가온 미래다. 우리나라로서는 기후위기에 더 빨리(rapid), 더 과감하게(radical) 대응하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팔짱을 낀 채 다른 나라의 감축 노력에 기댈 일이 아닐 뿐더러 민간주도적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개별 기업이나 특정 산업에 맡길 일도 아니다. 차기 정부에 떠넘길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후안정화 청사진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청년,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넣어 탄소중립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고 거기서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새로 짜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시간이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기후위기 대응에 이미 30년을 허송한 마당에 얼마를 더 허송해야 할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1차 이행연도로 설정한 2030년까지는 불과 7년 남았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도 기후위기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게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길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윤석열 정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에 둔감한 정부를 일깨우는 묘책은 기후위기를 정권의 위기로 연결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요체는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야말로 기후위기의 본질이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결국 기후정치의 문제이자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통해 권력관계를 바꾸는 문제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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