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대통령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물병을 저렇게 내놓고 쓰다니!” 조명래 전 환경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회의석상에 놓인 플라스틱 컵을 보고 SNS에 올린 글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각종 회의에서 일회용품 대신 머그컵이나 텀블러 사용을 권장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기후정책은 성공했는가?”를 묻는 건 악취미다. 기후정책과 텀블러 사용은 무관하다는 걸 문재인 정부가 확인했달까. 안타깝게도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사실 개인이 텀블러를 쓰고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는 일은 기후위기 해결과 무관하다(그 정도로 해결될 위기라면 위기도 아니다). 기후위기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만큼 개인의 노력으로 치유되는 것도 아닌 탓이다. 더욱이 자발적인 기후실천은 ‘소수의 윤리’에 그친다. 소수는 다수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영국의 아동문학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조너선 닐은 “녹색 소비가 대안이라는 주장은 사람들을 진정한 해결책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효과적인 방해 공작이다”라고 말한다. 기업과 정부를 향해야 하는 투쟁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 투쟁의 방향을 오도한다는 것이다. 기후 악당은 따로 있는데 왜 개인이 기후위기의 범인으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똥 싼 놈이 치우라”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기후위기와 자본주의」).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분야별 온실가스 배출을 살펴보면 가정에서 배출하는 양은 4.7%, 3200만 톤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포스코 한 회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만 하더라도 7850만 톤(11.5%), 전국의 가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의 2.5배에 해당한다. 이런 판국에 개인이 종이컵 사용을 자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실천이 모여 정치적인 목소리로 발화되어야

하지만 개인의 실천이 차곡차곡 쌓여 공동체의 노력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개인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기후위기 이야기 퍼뜨리기’ ‘정치를 압박하기’ ‘교통수단 바꾸기’ ‘전력사용 줄이기’ ‘식단 조정하기’ ‘지역의 지속가능한 상품 사기’ ‘음식 낭비하지 않기’ ‘기후친화적 옷입기’ ‘나무심기’ ‘지구친화적 투자’ 등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기’와 ‘정치를 압박’하기다. 나의 소소한 실천이 생태계를 보전하지는 못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가족과 친구, 주위 사람의 관심을 끌어낼 수는 있다. 그것이 성냥불이 되어 기후를 둘러싼 대화를 이끌고 기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토론하는 기회를 만든다. 개인의 실천이 집단화를 통해 ‘정치를 압박하기’로 바뀌는 대목이다.

개인의 실천을 정치적 압박으로 연결하는 것은 시민들의 연대, 즉 조직이다. 조직은 개인의 기후실천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뿐 아니라 공동의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증폭시킨다. 시민들의 연대는 기후위기를 정치의 의제로 선정하고 기후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 정책을 평가한다. 아스팔트 위에서 정부의 기후정책을 비판하는 일도 연대의 몫이다.

개인의 실천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끄는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는 건 일상생활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전면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에 가깝다. 가령 선진국을 대상으로 삼은 한 연구에 따르면 광범위한 리사이클링을 통해 줄일 수 있는 탄소량은 0.2톤 정도다. 소비생활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대표적인 방법은 차를 갖지 않는 일이다. 탄소배출량 감축은 연간 2.4톤. 이어 비행기 여행 안하기(1.6톤), 식물성 식단 짜기(0.8톤) 등이다(Wynes & Nicholas, 2017).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는 건 이른바 ‘제국적인 생활양식’을 버리고 기후위기를 추가로 악화시키지 않을 정도의 물질적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생태경제학자인 김병권(2023)이 말하는 ‘1.5°C 라이프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도 생활 속의 탄소배출을 규제하고 공공서비스를 확충하는 정부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가령 교통수단만 하더라도 자가용과 항공기 이용을 제한하고 친환경 공공 교통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 과시적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빈부격차를 줄여야 하며 이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소비제품에 대해 의무적으로 수리권을 도입하고(유럽연합은 이미 도입했다) 제품의 수명을 고의로 줄여 신제품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하는 ‘계획적 진부화’도 막아야 한다(프랑스는 이를 불법화했다). 프랑스에서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차로 2시간 반을 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지역 간 여객기 운행을 중단시켰다. 우리나라로 치면 육지와 제주도를 잇는 노선을 제외한 전체 국내선 운항이 중단되는 셈이다(대한민국 정부는 하기로 약속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전면 시행조차 미뤘다).

기후단체에 가입하라. 후원이라도 하라

기후정치를 향한 연대와 그 물질적 표현인 조직에 대해 말했다. 온실가스 덩어리인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고 기업의 탄소배출을 규제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정부의 정책으로 향하지 않은 개인의 소소한 실천은 자기만족을 줄지언정 사회의 변화를 담지는 못한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기후행동은 정치적인 무대에서 단합된 행동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할 수 있다. 기후위기의 해결을 원한다면 개인의 실천이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기후환경단체에 가입하라. 기후환경단체에 가입하고 공동으로 행동하라. 최소한 기후생태단체에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기부하라.

기후위기 대응이 지체된 나라, 그리하여 기후절벽에 다다라 급격한 탄소배출 경감을 강제당할 처지에 놓인 나라가 우리나라다. 뒤로 미뤄놓은 기후 폭탄이 터지기라도 하면 기후재난에 더해 수출과 경제성장은 곤두박질치고 사회갈등과 혼란이 나라를 채울 것이다. 기후정치가 후진적이라면 시민이 나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 개인의 실천은 그 출발에 해당된다. 기후실천을 통해 각성된 인식이 공동의 행동으로, 그리고 시민들의 연대로 발전하면서 정치가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와 타협하지 않으므로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달리 선택은 없다”(김병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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